신문은 선생님

[핫 피플] 카스트로의 동지, 저항 문화의 상징으로

입력 : 2016.12.02 03:09

체 게바라

지난 25일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했어요. 동시에 그의 동지인 체 게바라(Ché Guev ara·1928~1967)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혁명가와 독재자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는 카스트로와 달리 체 게바라는 저항적이고 자유로운 청년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지요.

아르헨티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입니다. '체(Ché)'는 '어이! 친구'와 같은 친근한 호칭이랍니다.

1959년 체 게바라(왼쪽)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쿠바 혁명군 사령관과 함께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이에요.
1959년 체 게바라(왼쪽)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쿠바 혁명군 사령관과 함께 쿠바의 수도 아바나 시내를 행진하는 모습이에요. /AFP
성실한 학생이었던 체 게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대에 입학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 대륙을 여행하며 고통받는 빈민들 삶을 보고 사회주의 혁명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멕시코로 건너간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를 만나 쿠바에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기로 뜻을 모으고 군사훈련을 받았어요. 게릴라군을 조직해 쿠바로 침투한 두 사람은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자 체 게바라는 쿠바 중앙은행 총재와 공업 장관 등을 맡으며 명실상부한 '쿠바의 2인자'가 되었어요. 하지만 '화폐·기업·국가는 필요 없다'는 과격한 생각을 가졌던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달리 소련과 번번이 충돌했고, 결국 1965년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새로운 사회주의혁명에 뛰어들었어요. 아프리카 콩고와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펼친 체 게바라는 1967년 볼리비아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붙잡혀 죽음을 맞았어요.

다른 공산주의 독재자들과 달리 권력과 부에 집착하지 않고 혁명에 뛰어들었던 체 게바라는 사후에도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졌어요. 하지만 실제 그의 행적보다 외형에서 풍기는 이미지 때문에 과도하게 영웅시됐다는 평가도 있어요. 게다가 쿠바는 그의 이상과는 거리가 먼 나라가 되었어요.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된 후 6년 동안 쿠바인 35만명이 카스트로의 강압 통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지난해까지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만 약 200만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배준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