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희망·축복·영혼… 다양한 의미 품은 명화 속 촛불
[촛불]
어둠 속에서 촛불 들고 있는 예수, 세상 비추는 '희망의 빛' 상징
화려한 샹들리에에 켜진 촛불, 결혼한 부부 축복하는 의미
죽음·고민하는 영혼 뜻하기도 해요
최근 서울 광화문 일대와 전국 곳곳에서 주말마다 시민들의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어요.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들고 있는 촛불의 의미가 무엇인지 혹시 알고 있나요? 촛불이 자기 몸을 불태워 어둠을 밝히듯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뜻을 갖고 있답니다.
촛불은 그림에서도 여러 의미를 상징하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어요. 촛불이 등장하는 명화를 감상하며 그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헤아려봅시다.
- ▲ 그림1 - 조르주 드 라투르, ‘목수 성 요셉’, 루브르 박물관 소장.
그림 1에는 노인과 소년이 등장합니다. 노인은 예수의 아버지 요셉이고 소년은 예수예요. 목수인 요셉이 어둠 속에서 열심히 목공 일을 하고 있고, 예수는 그런 아버지를 돕기 위해 촛불을 들어 어둠을 밝혀주고 있어요.
소년 예수가 들고 있는 촛불은 두 가지 의미를 지녔어요. 하나는 현실의 어둠을 밝혀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인류 구원을 뜻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는 세계의 어둠을 몰아내는 희망의 빛을 상징하는데, 촛불을 든 예수 모습으로 이 의미를 부각한 것이죠.
이 그림을 그린 17세기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는 '촛불의 화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요. 촛불이 등장하는 그림을 많이 그렸기 때문이랍니다.
조르주 드 라투르가 촛불을 즐겨 그린 이유는 빛과 어둠을 그림 속에 대비해 극적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서였어요. 그림을 보면 극히 일부분만 밝고 나머지는 전부 어둡게 그렸지요? 가장 밝은 부분은 촛불을 들고 있는 예수의 얼굴과 손입니다.
조르주 드 라투르는 이렇게 빛과 어둠을 대비해 촛불을 든 예수가 어두운 세상에 빛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것을 표현했어요.
- ▲ 그림2 - 얀 반 에이크, ‘지오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부인의 초상’,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가 그림 속에 그린 촛불은 '결혼의 신성함'을 상징합니다. 그림 2는 네덜란드 루카시에 사는 상인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장면을 그린 거예요. 당시는 카메라가 없었기 때문에 결혼 기념사진 대신 그림을 그려 남겼답니다.
화가는 이 작품이 결혼 기념용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를 그림 속에 넣어두었어요.
천장에 달려 있는 화려한 황동 샹들리에(chandelier·가지가 여럿 달린 방사형으로 천장에 매다는 등)를 살펴보세요. 촛대 7개 중 하나에서 촛불이 타고 있지요? 그림 왼쪽 창문을 통해 실내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데도 왜 촛불을 켜놓았을까요?
이 촛불은 바로 결혼식에 쓰는 축복의 촛불입니다. 우리가 흔히 화촉(華燭)이라고 부르는 혼례용 촛불이지요.
또 이 촛불은 '신이 이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도 갖고 있어요. 신의 은총이 부부에게 내려지길 기도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죠.
- ▲ 그림3 - 바르텔 브륀 1세, ‘제인-로이즈 티시에르의 초상화 뒤편에 그려진 바니타스 정물’, 크뢸러 뮐러 미술관 소장.
그림 속 나무 선반 한가운데 해골이 있고, 그 오른쪽에는 해골에서 떨어져 나온 것처럼 보이는 턱뼈가 놓여 있어요. 턱뼈에는 이가 몇 개 붙어 있고요. 왼쪽 선반 앞 촛대에는 불이 꺼져 있는 초가 보입니다.
해골과 꺼진 촛불은 '죽음'을 상징해요. 인간은 되도록 오래 살기를 바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어요.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이죠.
이런 맥락에서 화가는 욕망을 줄이고 늘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해골과 꺼진 촛불로 전해줍니다.
정보영 작가는 명상과 사색의 촛불을 그림에 표현했어요. 그림 4의 배경은 누군가의 방입니다. 하지만 방 주인은 보이지 않고, 책상 위에 놓인 양초 한 개만이 조용히 몸을 불태우며 홀로 방을 지키고 있네요.
- ▲ 그림4 - 정보영, ‘Lighting Up’
작가는 양초가 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이 그림을 그린 것 같아요. 양초의 변형된 모양과 촛농이 흘러내린 자국도 실감 나게 표현했거든요.
정보영 작가는 왜 촛불이 주인공인 그림을 그렸을까요? 방 안의 어둠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촛불은 '빛을 갈망하는 영혼'을 상징합니다. 방과 촛불을 의인화(擬人化·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에 비기어 표현)한 것이죠.
촛불이 살아 있다고 가정하면 촛농이 녹아내리는 순간만큼만 살 수 있을 거예요. 촛불의 생명과 촛농이 떨어지는 시간은 반비례(反比例·한쪽의 양이 커질 때 다른 쪽 양이 그와 같은 비로 작아지는 관계)하지요. 인간도 촛불처럼 생명을 불태우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점점 녹아내려 마침내 사라지고 맙니다. 인간의 영혼을 촛불에 비유한 이 그림은 촛불이 삶을 통찰하는 사색과 명상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답니다.
명화에 등장하는 촛불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촛불을 즐겨 쓰는 이유를 잘 알려주는 듯해요. 이번 기회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촛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친구들과 함께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