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우리 손가락은 왜 다섯 개일까

입력 : 2016.11.23 03:11

[진화의 비밀]

물고기 유전자 두 개 조작하자 지느러미가 손 모양으로 변해
지느러미 유전자 이식받은 쥐, 발가락 일곱 개 갖고 탄생
유전자 돌연변이로 손가락 수 감소한 개체들이 많이 살아남아

손가락이 왜 하필 다섯 개인지 궁금한 적이 있나요? 네 개가 될 수도 있고, 여섯 개가 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이 문제를 두고 과학자들은 그동안 여러 가지 추측과 가설을 내놓았답니다. 인간이 바다 생물에서 진화해 육지로 올라오면서 그렇게 되었다거나 손가락이 다섯 개여야 생존에 가장 유리하다는 얘기도 있었지요.

최근 과학자들이 이러한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인 단서를 찾아냈어요. 척추동물의 조상은 원래 다섯 개보다 많은 손가락을 가졌으나 진화를 거치면서 손가락 개수가 줄어들면서 다섯 개가 되었다는 것이죠. 수억~수천만 년이 걸린 진화의 비밀을 어떻게 찾아낸 것일까요?

◇지느러미 유전자가 손가락 만든다

닐 슈빈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지난 8월 국제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진화해 사람의 손이 되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어요. 논문에 따르면 슈빈 교수가 제브라피시라는 실험용 물고기의 'hoxa-13' 'hoxd-13' 두 유전자를 조작하자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발달하지 않거나 지느러미 대신 손목뼈가 생성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진화의 비밀
/그래픽=안병현
이는 'hoxa-13' 'hoxd-13' 두 유전자가 물고기의 몸에서는 지느러미를 만들고, 네발 동물의 몸에서는 손목뼈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줘요.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포유류의 손과 발이 만들어지는 건 동일한 유전자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증명한 거예요.

이는 인간과 물고기가 같은 조상에서 진화한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4억3000만년 전에 살았던 물고기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3억6500만년 전에 척추를 가진 네발 동물이 되어 육지로 올라왔다고 추정하고 있었어요. 이 네발 동물이 양서류로 진화했고, 양서류에서 일부가 포유류로 진화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인간이 가진 손은 진화를 거쳐서 만들어졌다고 하기엔 생김새가 너무 달라 과학자들을 헷갈리게 했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이번에 해결된 것이죠.

이에 앞서 슈빈 교수는 3억7500만년 전에 살았던 물고기 '틱타알릭'의 화석을 발견했답니다. 틱타알릭은 물고기처럼 비늘로 덮여 있고 지느러미가 있지만 양서류나 포유류처럼 두개골과 목, 갈빗대 같은 골격을 갖추고 있지요. 그래서 틱타알릭은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포유류의 팔과 다리로 진화한 근거로 여겨졌답니다.

슈빈 교수는 화석을 발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새로운 근거를 발견한 것이죠.

◇손가락은 원래 일곱 개?


최근에는 '인간의 손가락이 다섯 개인 것도 진화의 결과'라는 과학적 근거가 드러났답니다.

틱타알릭이나 이크티오스테가 같은 인류의 아주 먼 조상의 화석을 보면 발가락이 다섯 개보다 더 많아요. 마리 크미타 캐나다 몬트리올대 교수는 손가락 개수가 줄어든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역시나 유전자 조작을 이용했답니다.

크미타 교수는 실험용 쥐와 실험용 물고기가 하나의 세포에서 몸의 부위를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차이점을 살펴보았어요. 그 결과 물고기와 쥐에 있는 두 개의 유전자 'hoxa-11' 'hoxa-13'이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을 발견했답니다. 물고기는 두 유전자가 함께 지느러미를 만들도록 작동한 반면 쥐의 경우에는 'hoxa-13'이 'hoxd-13'이라는 유전자와 함께 발목뼈를 만들도록 먼저 작동하고 그 이후에 'hoxa-11'이 작동되어 발가락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크미타 교수의 연구팀이 쥐의 'hoxa-11'을 물고기처럼 'hoxa-13'과 함께 작동되도록 조작하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어요. 유전자를 조작한 쥐가 발가락 일곱 개를 갖고 태어난 것이죠.

이는 'hoxa-11'이라는 유전자가 활발하게 작동하는 식으로 생물이 진화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답니다. 어류에서 양서류, 양서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hoxa-11'이 유독 활발하게 작동하는 녀석들이 나타났고, 이를 통해 발가락의 개수가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지요. 만약 'hoxa-11'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통해 진화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많은 손가락을 가졌을지도 몰라요.

슈빈 교수와 크미타 박사가 이런 진화의 비밀을 밝힐 수 있었던 건 근래에 유전자를 정확하게 조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앞으로도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해 수억 년에 걸쳐 이루어진 진화의 비밀이 속속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진화 비밀 밝힌 '유전자 가위']

유전자 가위란 유전자의 일부를 잘라내는 단백질입니다. 그중에서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는 과학자들이 원하는 유전자의 일부를 정확히 잘라낼 수 있어 오늘날 과학 발달에 큰 기여를 하고 있어요.

유전자는 수십억 쌍의 염기서열로 이루어져 있어서 원하는 부분을 잘라내기가 쉽지 않아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크리스퍼 유전자가 공격할 염기서열을 정확히 집어서 알려주면 세포 안에 들어간 Cas9 단백질이 그 염기서열을 정확히 잘라낸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농작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도 잘되는 품종을 개발하는 데 활용되는 등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