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힐러리보다 표 적은 트럼프… 어떻게 당선된 걸까

입력 : 2016.11.17 03:09

[미국 대선제도의 역사]

주 투표 이기면 선거인단 독차지… 트럼프, 선거인단 더 많이 얻어
1787년 새 헌법 만드는 회의에서 대선 방식·의회 구성 두고 격론
주 상·하원 의원 수만큼 선거인단 뽑는 대타협 이뤘어요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AP 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 시각)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꺾고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어요. 트럼프는 6132만표(47.8%)를 얻은 클린턴보다 약 80만표 적은 6054만표(47.2%)를 받고도 선거에서 승리했답니다. 표를 적게 얻은 트럼프가 이겼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미국은 우리나라와 다른 선거 방식을 갖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50개 주(州)마다 각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인단을 투표로 선출합니다. 48개 주에서는 투표에서 이긴 대선 후보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제로 운영되죠. 트럼프는 총득표수에서는 클린턴에게 뒤졌지만,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절반이 넘는 290명을 차지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이죠. 미국은 왜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대통령을 뽑게 된 걸까요?

◇연합 회의와 셰이스의 반란

미국의 정식 명칭은 아메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입니다. 50개의 주와 1개의 수도구(컬럼비아구·Washington D.C.)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예요. 우리가 '주'라고 부르는 지역은 사실 각각이 하나의 나라랍니다. '주'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모여 공동의 연방정부를 구성하고,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동등하게 국가 권력을 나누어 갖고 있어요.

미국은 원래 대서양 연안에 13개 지역으로 나뉜 영국의 식민지였어요. 이들은 1776년 독립을 선언하고 힘을 합쳐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각각의 독립국가가 되었답니다.

13개 나라는 외국의 침략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 '국가 연합 헌장'을 채택하고 연합 회의를 구성했지만, 연합 회의는 외교·국방 권한 정도만 갖고 있었어요. 미국인들은 연합 회의를 넘어서는 강력한 중앙정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지만, 영국의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 "새로운 중앙정부가 나타나면 또다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더 크게 느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정부의 필요성이 드러난 사건이 벌어졌어요. 1786년에 일어난 '셰이스의 반란'입니다. 매사추세츠 주정부의 과중한 세금에 시달리던 농민 1000여 명이 퇴역 군인인 대니얼 셰이스의 지휘 아래 반란을 일으키고 보스턴으로 진격하다 진압된 사건이었어요.

당시 매사추세츠주뿐 아니라 13개 주 모두 독립전쟁을 치른 여파로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 있었어요. 전쟁 탓에 막대한 빚을 진 주정부들이 과도하게 세금을 걷으면서 많은 시민이 불만에 차 있었는데, 셰이스의 반란은 이런 시민들의 불만을 대변한 것이었죠.

영국·스페인 등 외국 군대가 미국 근처에 있는 상황에서 반란까지 일어나자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미국의 엘리트 지식인들은 경제·안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중앙정부를 만들기로 결심했어요. 1787년 각 주의 대표들은 중앙정부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헌법 제정 회의를 필라델피아에서 열었답니다.

◇새 헌법을 둘러싼 갈등과 코네티컷 타협

매사추세츠 주 지도

하지만 중앙정부를 얼마나 강력하게 만들지를 두고 대표들의 의견이 엇갈렸어요. 제임스 매디슨 등 강력한 중앙정부를 원했던 연방주의자들은 의회로부터 독립된 강력한 권한을 갖는 대통령을 직접 선거로 뽑고, 상·하원으로 이루어진 연방의회를 만들어 각 주의 인구수와 세금 액수에 비례해 상·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방안(버지니아안)을 제시했어요.

강력한 연방정부의 등장을 꺼렸던 반연방주의자들과 인구가 적은 주의 대표들은 버지니아안에 반대했어요. 대신 대통령을 의회에서 선출하고 연방의회를 단원(單院)으로 구성해 인구수와 세금에 상관없이 모든 주가 똑같은 수의 국회의원을 가지는 방안(뉴저지안)을 지지했답니다.

격렬한 토론이 오간 끝에 코네티컷주 대표의 중재로 양측은 타협을 이루었어요(코네티컷 타협). 상원과 하원으로 된 연방의회를 꾸리는 대신 하원 의원은 각 주의 인구수에 비례해 뽑고 상원 의원은 인구수와 상관없이 주마다 2명의 의원을 뽑기로 했어요.

대통령을 뽑는 방식도 절충을 이루었어요.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지 않는 대신 각 주에서 선거인단을 뽑고 선거인단이 주를 대표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접 선거 방식을 채택한 것이죠. 선거인단의 수는 각 주의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 수를 합친 수만큼 뽑기로 했고요.

이런 선거인단 제도는 대통령을 뽑을 때 국민 개개인의 입장보다 주의 입장이 더 강조되도록 한 거랍니다. 대통령 후보들이 드넓은 미국 땅을 돌아다니며 선거 유세를 하기 어렵다는 당시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반영한 결정이었죠.

새 헌법에 따라 1789년 독립전쟁의 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선거인단의 만장일치로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어요. 이로써 13개 나라의 연합체였던 미국이 하나의 연방국가로 거듭나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미국에서는 연방정부의 권한을 늘리려는 연방주의와 연방정부의 권한을 줄이고 주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반연방주의의 갈등이 계속되었어요. 최근에도 미국에서는 연방주의자들을 연방주의를 대변한 정치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이름을 따 '해밀턴파(Hamiltonian)'라고 부르고, 반연방주의자들은 해밀턴과 대립했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이름을 따 '제퍼슨파(Jeffersonian)'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승자독식제란?

투표에서 승리한 후보가 그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방식을 '승자독식제(勝者獨食制·Winner Takes All)'라고 해요. 이긴 사람이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한다는 뜻이지요. 가령 A주에 10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되었는데, A주에서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보다 한 표라도 더 많은 표를 얻었다면 공화당 후보가 A주의 선거인단 10명을 모두 가져가는 거예요.

50개 주 중 48개 주에서 승자독식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 두 곳에서는 각 후보가 얻은 투표수에 비례해 선거인단을 분배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