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기계 두더지'로 거대한 지하 공간 만든대요

입력 : 2016.11.09 03:11

[지하 도시]

미국·캐나다, 지하 도시 유행… 서울 광화문에도 만들어질 예정
폭약 없이 암반 깎는 TBM으로 지하에 넓은 공간 쉽게 만들어
거울접시·강화 유리 이용해 자연광으로 도시 내부 밝혀요

지난 9월 서울시가 종각~광화문~시청~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잇는 길이 4.5㎞의 'ㄷ'자형 지하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서울 도심에 축구장 면적의 4배에 가까운 3만1000㎡ 규모의 지하 도시가 들어서게 된다는 거죠.

지하 도시는 공상 과학(SF)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세계 곳곳에 이미 지하 도시가 건설되어 있답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는 길이 32㎞, 면적은 여의도의 4배(약 12㎢)에 달하는 '언더그라운드 시티'가 있죠. 미국 뉴욕시도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세계 최초의 지하 공원을 만들고 있고요. 멕시코에서는 지하 300m, 65층 규모의 거대한 지하 도시가 설계되기도 했답니다.

이런 지하 도시를 만드는 데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한번 알아볼까요?

◇땅 파는 기계 두더지, TBM

다이너마이트가 개발되면서 지하 공간을 만들 때는 '나틈 공법(NATM·New Austrian Tunneling Method)'이라는 방법이 사용됐어요. 나틈 공법이란 암벽에 구멍을 뚫어 폭약을 넣고 폭파한 뒤 암반에 시멘트를 뿌려 굳히는 방법이죠.

[재미있는 과학] '기계 두더지'로 거대한 지하 공간 만든대요
/그래픽=안병현
많은 작업자와 중장비가 동원돼 바위틈에 폭약을 설치하고, 폭파 뒤 부서진 돌덩이와 흙을 꺼내고 새로 만들어진 공간에 기둥을 세우는 것과 같은 방식이에요.

그런데 TBM(Tunnel Boring Machine)이라는 거대한 터널 굴착 장비가 개발되면서 이 모든 과정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됐어요. 기계 두더지에 비유할 수 있는 TBM은 영국의 발명가 마크 이점바드 브루넬이 개발했답니다. 더 쉽게 터널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브루넬은 1803년 조선소에서 목재를 파먹고 사는 '배좀벌레조개'를 보고 TBM이라는 기계를 착안했어요.

배좀벌레조개는 목재를 파고 들어가면서 기다란 굴을 만드는데, 파낸 나무 조각은 몸 뒤편으로 보내면서 파낸 동굴 표면에는 체액을 발라 동굴의 표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요. 이 원리를 이용해 브루넬은 암반을 깎아내면서 돌과 흙 등의 잔해는 뒤로 보내고 동시에 벽면을 단단하게 지지하는 TBM을 개발해 영국 템스강 밑을 지나는 터널 공사를 완공했답니다.

TBM은 오늘날 성능이 월등히 개선되어 머리 부분에 둘레를 따라 작은 실린더(펌프나 엔진에서 피스톤이 왕복운동을 하는 부분) 수십 개가 붙어 있어요. 실린더 한 개당 200t의 힘을 견디는 유압잭(기름 같은 액체를 이용해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거나 받치는 기계)이 TBM이 뒤로 밀려나지 않게 지탱해줘요.

TBM은 땅을 파낸 뒤 애벌레처럼 유압잭을 벽면으로 밀면서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요. 보통 1.5m가량 땅을 파면 TBM의 뒤쪽 기계장치가 앞쪽으로 끌려오지요. 이때 새로 생긴 1.5m의 빈 공간에 미리 만들어놓은 콘크리트벽 조각을 붙여 천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요.

◇'물길'은 막고 '빛길'은 열고

쾌적한 지하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땅속에 흐르는 물이 지하 도시로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야겠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는 암반 기둥을 보강해 물이 지하 도시로 흘러들지 않게 막아주는 기술을 개발했어요. 시멘트와 고분자 유기화합물을 섞어 만든 재료를 강한 압력으로 암반 표면에 뿜어 지하 도시의 벽면을 튼튼하게 만드는 기술이죠.

이 방법은 콘크리트로 만든 벽면보다 훨씬 높은 압력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지하수가 새어 들어오지 않게 잘 막아주지요.

지하 도시에는 불빛도 필요하겠죠? 캐나다 언더그라운드 시티는 일부 공간을 지상으로 노출시켜 자연광이 유리창을 통해 지하 도시로 들어오게 설계됐답니다.

뉴욕시가 건설 중인 지하 공원은 지상의 오목한 모양 거울접시를 이용해 햇빛을 모아 지하로 빛을 들여요. 지금도 지하 10m 깊이에서 자연광을 이용해 식물을 기르고 있답니다.

이 거울접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각도를 조절해 많은 햇빛을 모을 수 있어요. 모인 햇빛은 광섬유를 따라 지하 도시로 옮겨진 뒤 전등을 통해 여러 방향으로 반사되어 도시 안을 환하게 밝혀준답니다.

[지하 도시와 싱크홀]

지하 도시는 그동안 방치되었던 폐광산이나 지하구조물을 다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싱크홀(sinkhole)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를 미리 막아야 합니다.

싱크홀은 지하에 있는 암석이나 동굴이 무너지면서 땅이 갑자기 원통이나 원뿔 모양으로 푹 꺼지는 현상이에요. 도시에서는 주로 과도하게 지하수를 사용하면서 싱크홀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지요. 지하로 2.5m를 내려갈 때마다 위에서 누르는 압력은 1기압씩 증가하는데, 지하수가 메마르면 지하수가 흐르던 공간이 이 기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서 싱크홀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하 도시를 만들 때에는 싱크홀을 막기 위해 지하로 땅을 파고 들어가면서도 주변 흙이 무너진 곳을 다시 흙으로 메워 넣어 지반을 튼튼하게 다진다고 해요.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