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초대 교수' 차이콥스키와 150년… 음악가의 고향

입력 : 2016.10.22 03:07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차이콥스키 음악원'이라 불리며 라흐마니노프 등 여러 거장 배출
故 권혁주 바이올리니스트도 졸업
'국민 음악파 5인'과 경쟁하며 러시아 음악 발전 이끌어왔죠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Moscow state Conservatory)이 세워진 지 올해로 정확히 150년이 되었어요. 러시아 음악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모스크바 음악원의 대강당(Grand Hall of Moscow Conservatory)입니다. 이 음악회장은 뛰어난 음향 시설이 갖춰져 있고, 건물 벽 양쪽으로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멋진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어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내요. 러시아의 주요 음악회와 콩쿠르 등이 이곳에서 열리는데, 특히 4년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의 피아노 부문 본선이 열려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의 대강당은 뛰어난 음향 시설과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초상화가 양쪽 벽에 걸려 있는 걸로 유명해요. 이곳에서는 4년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본선 대회가 열린답니다.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의 대강당은 뛰어난 음향 시설과 세계적인 작곡가들의 초상화가 양쪽 벽에 걸려 있는 걸로 유명해요. 이곳에서는 4년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본선 대회가 열린답니다.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모스크바 음악원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이 설립했어요. 이후 라흐마니노프, 스크랴빈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을 배출했지요. 20세기 이후로는 모스크바 음악원의 졸업생들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연주자로 인기를 얻게 되면서 모스크바 음악원의 명성도 더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회복한 이후에는 한국의 클래식 유망주들도 이곳에 유학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죠.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 임동민·임동혁 형제, 그리고 얼마 전 아까운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도 이 모스크바 음악원 출신입니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으로도 불러요

차이콥스키, 발라키레프 사진

모스크바 음악원은 '차이콥스키 음악원'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어요. 모두가 사랑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이 학교의 초대 교수였기 때문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세르게이 타네예프 등 뛰어난 음악가들을 이곳에서 길러냈어요. 라흐마니노프 역시 차이콥스키에게서 화성학을 배웠고요.

모스크바 음악원은 이런 공로를 인정해 1940년부터 차이콥스키의 이름을 학교에 붙였습니다. 지금도 모스크바 음악원 앞에 가면 편안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의 차이콥스키 동상이 사람들을 맞아주고 있어요. 차이콥스키 동상은 학교의 명성을 알리는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발라키레프가 주도한 '국민음악파'

모스크바 음악원이 문을 열었던 186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또 다른 음악학교가 문을 열었어요. 차이콥스키와 니콜라이 루빈시테인, 니콜라이의 형 안톤 루빈시테인 등을 비난했던 작곡가 발라키레프가 세운 '무료음악학교'였습니다.

발라키레프는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발라키레프, 큐이, 보로딘,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으로 불리는 음악가 모임을 주도했던 인물이에요.

이들은 차이콥스키와 루빈시테인 형제를 향해 "당신들은 서유럽의 음악과 스타일을 흉내 내기 급급하다"고 비판했어요. 차이콥스키 등과 달리 클래식 음악에 러시아 고유의 정서를 담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답니다.

발라키레프가 '무료음악학교'를 세운 것도 차이콥스키 등이 주도하는 모스크바 음악원이 오직 상류층 학생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적인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발라키레프는 실제로 학생들에게 학비를 받지 않고 이 학교를 운영했답니다. 하지만 곧 재정난을 겪다 문을 닫고 말았어요.

그럼에도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은 독특한 개성과 아이디어로 이후 러시아 음악에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선의의 경쟁을 한 러시아 음악가들

故 권혁주 바이올리니스트
故 권혁주 바이올리니스트. /연합뉴스
차이콥스키와 루빈시테인 형제도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을 "아마추어 음악가의 모임"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두 음악가 모임은 서로 진심 어린 충고와 협력을 통해 명작을 탄생시키기도 했답니다.

일례로 차이콥스키의 유명한 관현악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탄생한 것도 발라키레프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차이콥스키에게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발라키레프는 오래전부터 셰익스피어의 걸작을 음악으로 옮겨보려는 구상을 하고 있었는데, 차이콥스키가 자신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차이콥스키에게 양보한 것이죠.

반대로 차이콥스키파의 안톤 루빈시테인은 '러시아 국민음악파 5인'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자신이 세운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교수로 초청했어요. 덕분에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오랫동안 이 음악원의 교수로 활동하며 여러 제자를 길러냈답니다. 비록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은 달랐지만,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은 같았기에 하나로 힘을 합칠 줄도 알았던 것이죠.

21세기에도 러시아 음악가들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러시아 음악계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여러 지식과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