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이들이 없었다면… 앤디 워홀과 세잔도 없었다

입력 : 2016.10.14 03:09

[화랑과 화가]

그림 상인으로 이름났던 카스텔리, 워홀 등 팝아트 대표 작가들 육성
세잔·피카소 전람회 열어준 볼라르, 인상주의 작품 최초 유통한 폴까지
화랑, 유망한 미술가 발굴·후원

최근 정부는 위조된 미술품을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술품 유통에 관한 법률(가칭)'을 제정해 내년 하반기부터 시행하기로 했어요. 이 법률에는 예술가들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화랑(畵廊)을 운영하려면 의무적으로 미술품 위조를 막을 대책과 화랑에서 육성·관리하는 작가의 명단을 제출하라는 내용이 담긴다고 합니다.

보통 화랑은 돈을 벌기 위해 미술품을 판매·중개하는 일을 하는데, 문화 선진국에서는 화랑이 미래의 거장이 될 작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미술을 창조할 혁신적인 예술가를 정신적·물질적으로 후원하는 역할도 맡고 있답니다.

작품1
작품1 -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뒤랑-뤼엘의 초상, 1910, 캔버스에 유채, 65 x 54㎝, 개인 소장

작품 1은 인상주의 화가 르누아르가 그린 폴 뒤랑 뤼엘의 초상화입니다. 르누아르는 예술적 동반자인 폴과 그 가족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렸어요. 화랑 주인인 폴이 르누아르의 그림을 1500여 점이나 사들일 만큼 그의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죠.

폴이 프랑스 파리에서 운영한 '폴 뒤랑 뤼엘' 화랑은 인상주의 계열의 미술 작품들을 미술 시장에 최초로 유통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폴은 당시 미술품 수집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마네와 모네,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등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유독 많이 사들였어요. 당시 인상주의 작품은 잘 팔리지 않았지만, 폴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죠. 인상주의 화가들은 폴이 정기적으로 그림을 사준 덕분에 계속해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어요.

폴은 프랑스뿐 아니라 외국에도 인상주의 그림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미국 뉴욕에서도 인상주의 전시회를 열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지요.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파리 룩상부르미술관에서 열린 '뒤랑-뤼엘의 컬렉션전'은 인상주의를 발굴한 폴의 뛰어난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답니다.

작품2
작품2 - 폴 세잔,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 1899, 캔버스에 유채, 100 x 81㎝, 프티팔레미술관 소장

작품 2는 화가 세잔이 그린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화입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프랑스의 그림 상인이자 출판업자로 활동한 볼라르는 회고록에 '이 그림을 위해 매일 아침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꼬박 네 시간 반 동안이나 사과처럼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어야만 했다'고 밝혔어요.

볼라르는 115번이나 이 자세를 유지해야 했지만 세잔은 겨우 "셔츠의 앞부분은 나쁘지 않군"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세잔이 한 가지 주제를 끈질기게 파고드는 연구자형 예술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화지요.

볼라르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초상화로 남은 남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어요. 세잔, 피카소, 마티스, 르누아르 등 볼라르의 도움을 받은 많은 화가가 고마움의 표시로 그의 초상화를 그려주었기 때문이죠. 볼라르가 발굴하고 후원한 작가들은 대부분 훗날 미술사의 거장이 되었어요.

볼라르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잔과 피카소, 마티스의 첫 번째 전람회를 열어주었고 당시 무명화가였던 루소, 보나르, 루오, 르동, 드랭, 블라맹크와 조각가 마욜 등 훗날 대가가 될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렸어요.

볼라르는 자신이 후원한 화가들의 그림을 출간하고 이에 관한 에세이와 회고록을 썼는데, 이는 현대미술의 발전을 알려주는 중요한 학술·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특히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세잔의 작품 세계와 독특한 창작 방식을 기록한 자료들은 그의 큰 공적으로 남아있지요.

작품3
작품3 - 앤디 워홀, 레오 카스텔리의 초상, 1963, 캔버스에 아크릴 실크스크린, 110 x 110㎝, 소장처 불명

작품 3은 '팝아트(pop art)'의 거장 앤디 워홀이 그린 레오 카스텔리의 초상화입니다. 미국 뉴욕의 레오 카스텔리 화랑은 작품 보는 안목과 비즈니스 감각에 관해서는 어느 화랑보다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지요.

이 화랑의 주인이었던 레오 카스텔리는 1960년대 뉴욕 최고의 그림 상인이자 전시 기획자로 명성을 떨쳤어요. 재스퍼 존스, 릭턴스타인, 앤디 워홀 등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내고 전속 작가로 육성했어요.

워홀은 대중에게 친숙한 유명 인사들을 작품에 담았는데, 레오 카스텔리의 초상화를 그린 것도 레오가 화랑계의 전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워홀도 레오 카스텔리 화랑의 전속 작가로 뽑히고 난 후 인기 작가의 대열에 들어섰고, 이후 '팝아트의 황제'로 불리게 되었죠.

이렇게 화랑은 단순히 작품을 파는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일으키고 세상을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답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