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미술관에 온 관객, 예술 작품이 되다

입력 : 2016.10.07 03:21 | 수정 : 2016.10.07 03:22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특별전]

작품 감상하는 모습 사진으로 찍어 관객을 작품의 위치로 옮겨
현대미술, 익숙한 관점 벗어나게 해 새로운 면 발견하는 재미 느껴봐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지난 8월부터 현대미술 작품의 탄생과 소멸, 재탄생의 과정을 주제로 한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어요. 이번 특별전에서 우리는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익숙했던 관점에서 벗어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답니다.

심청이 주인공인 '심청전'에서 눈먼 심봉사를 속이던 뺑덕어멈을 주인공으로 바꾼다면 이야기의 내용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백설공주가 아닌 일곱 난쟁이나 질투 많은 왕비가 주인공이 된 동화 '백설공주'는 어떻게 변할까요? 주인공에 가려져 있던 조연들이 주인공이 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바뀝니다.

작품1
작품1 - 토마스 스트루스, 〈관람객 07 피렌체〉, 2004, C-프린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30주년 기념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展

이번 특별전에도 주인공을 완전히 뒤바꾼 작품들이 있어요. 작품1을 보세요. 여기 나온 사람들은 미술관에서 어떤 유명 작품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인지 몹시 궁금했는데, 왜 작품은 보여주지 않고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만 보여주고 있을까요?

흔히들 미술관은 관객이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곳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토마스 스트루스가 찍은 이 작품은 이런 생각을 뒤집어버립니다. 관객을 작품의 위치에 놓는 것이죠. 지금 우리는 이 미술관에 온 관객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대미술은 작품과 관람자의 위치와 역할을 바꾸어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죠.

작품2
작품2 - 질 아이요, 〈샤워 중인 하마〉, 1979, 캔버스에 유채.

주인공이 누구인지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 작품도 있어요. 작품2의 화면 왼쪽에 있는 덩어리는 분명 이 작품의 주인공 같은데, 과연 이 덩어리는 무엇일까요? 바위일까요, 아니면 커다랗게 확대시킨 벌레일까요? 이렇게 보아서는 덩어리의 정체를 알 수가 없는데, 작품의 제목을 읽고 나면 비로소 덩어리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머릿속에서 둥둥 떠 있던 수많은 가능성이 '하마'라고 정해지는 순간이지요.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야 누가 진정한 주인공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한 편의 동화처럼, 이 그림도 제목을 보고 나서야 뒤늦게 하마가 샤워하는 중인 걸 알게 되는 작품이에요. 예술 작품을 볼 때에도 제목을 알게 되면 그 제목에 맞게 작품을 이해하도록 우리의 뇌가 작동한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작품3은 이명호의 '나무2'라는 작품이에요. 작가는 신분증을 만들 때 필요한 증명사진을 사진관에서 찍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나무의 사진을 찍어보기로 합니다. 사진관의 사진사가 증명사진을 촬영할 때 필요한 장비를 들고 일부러 나무를 찾아간 것이죠.

그는 나무 뒤에 커다란 흰 천막을 드리웠어요. 증명사진을 찍을 때에도 단색의 배경을 놓고 촬영하듯, 증명사진의 주인공이 될 나무의 뒤에 다른 나무나 하늘이 사진에 찍히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자 자연의 일부이던 나무 한 그루는 갑작스럽게 무대 위를 지배하는 주연배우로 변합니다. 사람이 있는 사진 속에서 나무와 숲은 늘 배경의 역할을 하지요. 하지만 이 사진은 아무리 봐도 나무가 주인공인 게 확실하군요.

작품3 - 이명호, 〈나무2〉, 2006, 종이에 잉크 / 작품4 - 코디 최, 〈생각하는 사람〉, 1996, 화장
작품3 - 이명호, 〈나무2〉, 2006, 종이에 잉크 / 작품4 - 코디 최, 〈생각하는 사람〉, 1996, 화장 지, 펩토비스몰(소화제), 나무.

작품4는 위대한 주인공을 한낱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려요. 이 작품의 제목은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사실 '생각하는 사람'은 19세기 말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으로 아주 유명하지요.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변화하는 시대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말해주는 로댕의 대표작입니다.

그런데 이 분홍색 조각상은 로댕의 작품처럼 진지해 보이지 않아요. 두루마리 휴지를 물풀에 적신 후 붙여서 만들었는데, 분홍색을 띠는 것은 외국에서 흔히 먹는 분홍색의 소화제를 섞어 휴지를 반죽했기 때문이에요.

재료가 소화제와 휴지여서 그런지, 속이 안 좋아 소화제를 먹고 휴지를 들고 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치 '생각하는 사람'이 '배가 아픈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아요.

이렇게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다른 관점에서 관찰하면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답니다.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