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반짝' 떠오른 악상으로 걸작 빚어냈어요

입력 : 2016.09.30 03:07

[환상곡과 즉흥곡]

손 푸는 곡으로 시작한 환상곡, 상상대로 자유롭게 써 화려해
그 자리에서 연주한 즉흥곡은 작곡가 나름의 규칙 따라 표현
슈만의 환상곡·슈베르트의 즉흥곡… 대중에 많은 사랑받고 있어요

평생 피아노곡만 작곡했다는 쇼팽(1810 ~1849)의 '즉흥환상곡'이라는 작품은 쇼팽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곡이에요. '작품번호 66'의 이 곡은 쇼팽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친구 폰타나가 유작으로 세상에 내놓은 작품이랍니다. '즉흥환상곡'의 원제목은 독일어로 'Fant asie-Impromptu'로 엄밀히 해석하면 '환상-즉흥'이라고 부를 수 있죠. 재미난 건 쇼팽의 곡 중에는 그냥 '환상곡'도 있고 '즉흥곡'도 있는데, 이 곡의 제목은 둘의 제목을 합친 '즉흥환상곡'이라는 거예요. 환상곡과 즉흥곡의 내용과 분위기는 각각 어떻게 다를까요? 쇼팽의 '즉흥환상곡'은 어떤 곡일까요?

◇환상곡과 즉흥곡이란?

내 눈앞에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볼 때 우리는 흔히 '환상을 본다'고 말하죠. 꿈에서 본 내용을 얘기할 때도 이렇게 표현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환상곡은 "실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작곡가의 상상에 따라 쓴 자유로운 분위기의 곡"이라는 뜻이랍니다. 현실에 없는 것을 작곡가 마음대로 생각하거나 꿈속에서 나온 줄거리나 영상을 음악으로 만든 것이니, 어떤 규칙이나 틀에 매여 있지 않아요.

환상곡은 원래 바로크 시대 건반악기인 '클라브생'이나 '쳄발로'를 위한 곡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어요. 이 악기들은 피아노와 달리 연주자가 본격적으로 연주하기 위해 손을 푸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답니다. 연주자들은 손을 풀기 위해 여러 화음을 눌러 조율 상태를 점검하고, 빠른 속도로 음계를 연주하기도 해요.

이렇게 손 풀기를 위한 연주가 점점 청중에게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작곡과 연주를 동시에 했던 바로크 시대 연주자들이 손 풀기를 위한 연주를 독립적으로 발전시켜 하나의 곡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환상곡의 기원이었지요. 손을 푸는 곡으로 시작한 만큼 환상곡 중에는 기교적으로 화려한 곡이 많았어요.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파에 들어서 환상곡의 규모는 점차 커졌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즉흥곡은 무엇일까요? 사전에 나오는 즉흥곡의 의미는 '그 자리에서 생각나는 악상으로 연주하는 곡, 또는 그와 유사한 기분을 담은 곡'입니다. 과거 작곡가 대부분은 악상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피아노로 쳐 보고 오선지에 그리며 작곡했어요. 그러니 즉흥적인 연주를 잘하는 사람이 좋은 곡을 쓸 확률도 높았죠. 작곡가가 즉석에서 생각난 악상을 그대로 연주하듯이 쓴 곡이 바로 즉흥곡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멜로디나 리듬을 제멋대로 쓴 곡은 아니에요. 작곡가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규칙에 따라 악보를 정리해 즉흥곡으로 발표하였지요. 그 자리에서 한 번에 모든 것을 완성하는 즉흥곡도 있고 오랜 시간을 두고 쓰는 즉흥곡도 있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악상을 표현해냈다'는 느낌이 들면 어느 것이든 잘 만들어진 즉흥곡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차르트부터 슈베르트까지… 대표적인 환상곡과 즉흥곡

환상곡의 대표작들은 바로크 시대부터 등장했어요. 본 작품을 연주하기에 앞서 서두에 연주됐기 때문에 '환상곡과 푸가' 같은 제목이 주로 붙어 있어요. 'G선상의 아리아'로 유명한 독일의 작곡가 바흐의 건반악기 작품 중에 환상곡이 여럿 있답니다. 대표적으로 '환상곡과 푸가'와 'BWV542'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BWV903' 등이 있죠. 고전파 작곡가 모차르트의 '환상곡 C단조 K475'도 환상곡 중에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지요.

슈베르트(큰 사진)와 바흐(왼쪽 작은 사진), 평생 피아노곡만 작곡한 쇼팽(오른쪽 작은 사진)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영감을 정리한 ‘즉흥곡’과 ‘환상곡’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슈베르트(큰 사진)와 바흐(왼쪽 작은 사진), 평생 피아노곡만 작곡한 쇼팽(오른쪽 작은 사진)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영감을 정리한 ‘즉흥곡’과 ‘환상곡’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위키피디아

자유로운 분위기의 환상곡이 많이 나온 것은 낭만주의 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로베르트 슈만은 여러 종류의 환상곡을 만들었는데 이 중 '환상곡 C장조 작품 17'이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세 악장으로 되어 있는 이 곡은 열정적이고 흥분이 넘치는 악상과 사색과 명상의 분위기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즉흥곡 애호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은 역시 슈베르트의 즉흥곡입니다. 모두 8곡이 남아있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악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쉬지 않고 곡을 써내려갔던 슈베르트의 특징이 잘 담겨 있어요. '작품 90'과 '작품 142'에 각각 네 곡씩 담겨 있는 그의 즉흥곡은 모두 서로 다른 개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어요. '작품 90의 2'는 물 흐르듯 맑고 경쾌한 악상이 담겨 있는 반면 '작품 90의 3'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영화 음악으로 자주 등장하지요. 우아한 느낌의 변주곡인 '작품 142의 3'도 아주 인기있는 곡이랍니다. 가곡의 왕이었던 슈베르트는 이미 만들어 놓은 노래의 멜로디를 이용해 피아노곡을 쓰기도 했는데, 가곡 '방랑자'를 소재로 만든 피아노곡 '방랑자 환상곡'도 걸작으로 꼽힌답니다.

쇼팽은 즉흥곡 4곡을 남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이 앞서 언급한 '즉흥환상곡'으로 4곡 중 가장 마지막에 작곡된 작품이에요. 곡의 제목은 1835년 쇼팽이 직접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음악계에서는 이 곡이 쇼팽의 즉흥곡 중 가장 자유롭고 환상곡의 느낌이 강해 이런 제목을 붙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환상곡과 즉흥곡은 작곡가의 능력이 잘 드러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특히 순간적으로 떠오른 악상을 정리해 멋진 음악으로 빚어내는 솜씨를 가장 잘 엿볼 수 있지요. 위대한 예술 작품은 뛰어난 영감에서 탄생하는데, 잘 만들어진 환상곡과 즉흥곡을 들으면 위대한 작곡가들이 떠올렸을 신비로운 영감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답니다. 이번 주말은 음악 천재들의 환상곡과 즉흥곡을 감상하며 그들의 영감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김주영 피아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