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남과 북 이렇게 달라요] '장마당'에서 사고팔 때 중국·미국 돈도 사용한대요

입력 : 2016.09.28 03:11

북한의 시장(市場)

최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북한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김정일 시대에 200곳 정도 있었던 장마당(북한의 시장)이 김정은 집권 이후 400여 곳으로 배 정도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어요. 최근 북한의 장마당을 이용하는 북한 주민의 수는 하루 180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북한 주민 대부분이 장마당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장은 물론 대형마트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장마당을 찾아보기 어려웠답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국가가 식량과 생필품을 주민들에게 직접 배급하는 공산주의 경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이에요.

1950년대 북한을 장악한 공산주의 정권(북한 노동당)은 "개인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은 공산주의 경제 질서와 맞지 않다"며 시장을 활발하게 열지 못하도록 했어요. 물론 시장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는 농민들이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나 집에서 기른 가축 등을 사고팔 수 있는 농민시장을 10일에 한 번씩 열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함경북도 무산군의 한 골목에 들어선 장마당의 모습이에요.
함경북도 무산군의 한 골목에 들어선 장마당의 모습이에요. /조인원 기자
이후 북한 주민들은 국가의 배급을 통해 쌀·옥수수 같은 기본 식량을 받고, 농민시장에서 반찬거리를 구했다고 해요. 생활필수품은 국가가 운영하는 상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었고요.

이런 공산주의 경제가 계속되자 일할 의욕이 떨어진 농민들은 농사를 열심히 짓지 않게 되었고, 1990년대 들어 큰 홍수 등 자연재해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북한의 농산물 생산량은 급속히 줄어들었어요. 급기야 식량 배급이 끊어지면서 수많은 북한 주민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끔찍한 상황까지 벌어졌어요.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르는 이 시기부터 북한 주민들은 배급 대신 스스로 농사를 짓거나 시장에서 파는 식량을 구입해야 했답니다. 시장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자 10일에 한 번 열리던 농민시장은 점점 상설시장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이런 상설시장을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장마당이 늘어나면서 그 규모도 점점 커지게 되었어요. 100명 정도의 상인이 있던 북한의 한 장마당은 '고난의 행군' 시기가 끝난 뒤에는 상인의 수가 2000여 명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물건의 종류도 다양해졌어요.

채소와 가축은 물론 국가가 배급하던 쌀이나 옥수수, 옷과 신발도 거래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냉장고와 TV 같은 가전제품과 화장품과 술, 자전거, 학생들의 교복과 학용품도 살 수 있어요.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 중국의 위안화나 미국의 달러도 사용된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시장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 장마당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장소가 되었어요. 최근 북한에서는 "지금 북한에는 장마당과 노동당이라는 두 개의 당이 있는데, '장마당'은 주민들을 먹여 살리지만 '노동당'은 주는 게 없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고 합니다.

장마당이 확대되면서 최근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장마당에서 일을 하는 북한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장마당에서 돈을 잘 버는 상인들이 생겨나면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장마당에서 돈을 버는 법을 익히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북한 주민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해요.



김지수 KEDI 통일교육연구실 부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