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천재들, 숲으로 간 이유 있었네

입력 : 2016.09.27 03:08

[숲의 효과]

숲과 친하게 지낸 초등학생들, 지적 능력·창의력 높아져
실내에서도 식물 곁에 두면 왼쪽 뇌 활동력 증가해요

역사 속 천재들, 숲과 가까이 지내
생각하는 힘 키우려면 산책해봐요

지난 6월 발간된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숲이 가깝거나 나무가 많이 심어진 학교에 다니는 학생일수록 인지능력이 높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어요. 인지능력이란 사물이나 움직임을 가려내고 판단해 기억하는 두뇌 능력을 뜻하지요. 숲의 빛깔인 녹색이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준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실험을 통해 입증되었지만, 숲 자체가 인간의 지적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숲과 나무 가까이 하면 두뇌가 좋아진다?

이 연구를 주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환경전염병학연구소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공공보건과학부는 2012년 한 해 동안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36개 초등학교의 7~10세 학생 259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어요. 숲과 나무로 이루어진 녹지가 학생들의 인지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3개월 단위로 4번에 걸쳐 다각도로 분석을 한 것이죠. 그 결과 학교와 등·하굣길, 그리고 집 주변에 녹지가 많은 학생일수록 지적 능력도 평균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어요. 연구진은 "숲을 가까이 한 학생일수록 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을 보였고, 자제력과 창의력도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어요. 숲이나 나무를 의식하지 않고 그저 가까이 하기만 해도 이런 효과가 있다니 더 놀랍지요.

[재미있는 과학] 천재들, 숲으로 간 이유 있었네
한국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답니다. 지난 1997년 건국대 손기철 교수(원예학)와 이종섭 교수(의학)는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 2곳을 마련하고 한 방에는 잎이 무성한 식물을, 다른 방에는 철제 캐비닛을 들여놓은 뒤 성인 23명을 같은 시간 동안 두 방에 머물도록 했답니다.

연구진이 이들의 뇌파를 검사한 결과 식물이 있는 방에 있을 때 기억력과 사고력을 관장하는 왼쪽 뇌의 활동력이 눈에 띄게 증가했어요. 뇌 질환을 일으키는 델타파는 줄어들었고 뇌 기능을 활성화하는 알파파는 늘어났고요. 실내에서도 식물을 곁에 두면 뇌 기능과 지적 능력이 좋아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지요.

◇녹색 효과를 뛰어넘는 숲의 효과

나무와 숲은 어떻게 인간의 뇌에 이런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걸까요? 색채심리학자들은 녹색이 가진 심리적 안정 효과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과학자들은 녹색 효과만으로는 숲의 효과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녹색 효과는 그저 눈으로 보고 느끼는 시각적 효과에 그치지만, 숲을 가까이 할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는 훨씬 다양하기 때문이에요.

숲에 들어서면 많은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내뿜는 산소와 수분, 향긋한 내음이 우울했던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죠. 바람에 살랑대는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빛도 마찬가지고요. 과학자들은 이런 숲의 모습들이 인간의 지적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숲의 효과를 이룬다고 설명해요.

인류의 먼 조상인 유인원은 적어도 1000만년 이상 숲에서 살았어요. 과학자들은 "숲에서 살았던 유인원에서 진화한 인간의 유전자에는 녹색만 봐도 안정감을 얻고, 숲을 가까이 할 때 뇌 기능과 지적 능력이 활발해지는 본능이 들어 있다"고 말해요.

◇숲을 가까이 한 역사 속 천재들

역사에 등장하는 천재 중에서는 숲의 효과를 받아 더 뛰어난 자질을 발휘하게 된 경우들이 있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살펴볼까요?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 농촌 빈치에서 태어난 다빈치는 학교에 가는 것보다 마을 뒷산에 있는 숲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는 걸 더 좋아했어요. 숲에 있는 동물과 식물을 그리며 쌓은 관찰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다빈치는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켰고, 오늘날 미켈란젤로·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 예술의 3대 거장'으로 불리고 있지요.

만유인력의 법칙 등을 발견해 물리학의 역사를 바꾼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죽고 엄마가 재혼을 하면서 영국 중동부 울즈소프 교외의 농촌에 살던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어요. 뉴턴의 할머니는 과수원 농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뉴턴은 어릴 적부터 과일나무와 함께 자랐답니다. 과수원에 앉아 있던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이야기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죠?

진화론을 창시한 찰스 다윈은 영국 중서부 중심 도시인 슈루즈베리의 손꼽히는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8세 때 어머니가 죽으면서 도시 교외에 있는 기숙학교로 보내졌답니다. 덕분에 다윈은 학교 주변 숲을 다니며 동식물을 채집하며 '숲의 효과'를 듬뿍 받았지요.

독일의 천재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독일 본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살았던 전형적인 도시인이었어요. 하지만 32세의 나이에 청각을 잃고 난 뒤 하일리겐슈타트라는 빈 교외 숲이 무성한 곳에서 전원생활을 하였어요. 숲과 가까이 살며 심리적 안정을 되찾은 베토벤은 청각을 잃은 상태에서도 새로운 영감을 얻어 '운명' 교향곡 같은 명작들을 작곡했어요.

'건축의 성인(聖人)'이란 평가를 받는 안토니오 가우디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북쪽 삼림 지역인 레우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적 자폐증을 앓았던 가우디는 늘 홀로 숲에서 놀았지만 숲에서의 경험을 통해 건축가로서의 천재성을 키웠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같은 위대한 건축물들을 남겼답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상대성이론을 수립한 아인슈타인도 유년 시절 숲과 들을 다니며 숲의 효과를 듬뿍 받았던 위인으로 꼽을 수 있어요.


박중환 식물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