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맛 좋은 가을철 과일에 숨어있는 원리는?

입력 : 2016.09.20 03:09 | 수정 : 2016.09.20 09:55

[과일의 맛]

단맛·신맛의 황금비율 '당산비'… 과일마다 가장 맛있는 비율 있어
종이 봉지 씌우면 광합성 감소… 엽록소 줄어 과일 색 선명해져요

가을은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여문 밤이 땅으로 떨어지는 수확의 계절입니다. 특히 사과·배·감·포도 같은 과일들이 풍성하게 수확되는 시기예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과일은 껍질이 윤택하고 색이 선명해야 맛도 좋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런데 한 번쯤 먹음직스럽게 생긴 과일이 예상보다 맛은 별로였던 경험들이 있지 않나요? 이런 일은 단지 운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랍니다. 한국식품연구원에서 최근 3년간 일반인 500여명과 전문가 30여명을 대상으로 수천 개 사과를 먹게 하면서 정말로 사과 맛과 겉모양이 상관 있는지 조사했다고 해요. 조사 결과, 놀랍게도 사과의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색이나 크기 같은 과일의 형태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윤택하고 색이 선명하다고 해서 반드시 맛있는 과일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달다고 무조건 맛있지는 않아요

과일이 얼마나 달아야 맛있다고 느껴질까요? 일반적으로 사과는 당도가 12°Bx(브릭스·1°Bx는 과일 100g에 녹아 있는 당분 1g) 이상이 돼야 '특' 등급 당도로 평가돼요. 배는 11~12°Bx, 귤은 13°Bx, 포도는 18°Bx 정도일 때 사람들이 가장 맛있다고 느끼게 된답니다.

[재미있는 과학] 맛 좋은 가을철 과일에 숨어있는 원리는?
/그래픽=안병현
하지만 과일이 무조건 달기만 하다고 해서 맛있는 건 아니에요. 단맛에 적당한 신맛이 조화를 이뤄야 가장 맛있답니다. 과일에 들어있는 신맛과 단맛의 비율을 당산비(당 함량÷산 함량)라고 하는데, 과일마다 각자 맛이 가장 좋은 당산비가 있다고 해요. 예를 들어 사과는 당산비가 평균 41 이상일 때 가장 달고 맛있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후지 품종 사과의 당산비는 보통 36 정도라고 알려져 있어요.

당산비는 과일이 익어가는 과정에서 계속 변해요. 과일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산이 많고 당분은 거의 없기 때문에 신맛이 아주 강해요. 하지만 과일이 익어갈수록 산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당분은 수확기가 가까워질수록 그 양이 급격히 늘어나 맛이 좋은 과일이 된답니다.

과일에 든 당분은 씨앗이 있는 열매의 중심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점차 껍질이 있는 가장자리로 퍼져 나갑니다. 과일나무들이 단것을 좋아하는 해충을 막기 위해, 과일이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는 떫은맛이 나도록 열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천천히 당도를 높여가는 거지요. 그래서 풋사과를 베어 먹으면 바깥쪽보다 안쪽의 과육이 더 달게 느껴진답니다.

◇외모가 맛의 전부는 아니다

가을이 되어 사과가 붉은색으로 변하는 원리는 단풍잎이 붉게 물드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단풍나무와 사과나무 모두 햇빛이 풍부한 여름에 활발하게 광합성하며 양분을 만들어 내는데, 그 결과로 열매와 잎에는 녹색을 내는 엽록소가 풍부해진답니다. 그러다 가을이 되고 광합성이 줄어들면 잎과 열매의 엽록소가 점차 파괴되면서 엽록소에 가려 있던 붉은색이 드러나게 됩니다. 즉 사과가 붉게 익고 단풍이 물드는 건 엽록소가 파괴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과수원에서는 이런 원리를 이용해 과일을 시장에 내놓을 시기에 맞춰 가장 예쁜 색을 띠도록 할 수 있답니다. 과일마다 종이 봉지를 씌워 햇볕에 너무 많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죠. 가령 사과에 봉지를 씌워두지 않아 햇볕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껍질 표면에 엽록소가 많아지겠죠? 이렇게 되면 사과가 충분히 익더라도 껍질에는 녹색이 많이 남아 있게 됩니다. 맛은 좋아도 붉은색은 선명하지 않은 사과가 되는 것이죠.

하지만 봉지를 씌워두면 광합성이 줄어들어 사과 열매의 광합성 작용도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면 엽록소가 적게 생성되어 수확 시기에는 선명한 붉은색을 띠는 사과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해 붉은색은 선명해도 열매 속이 잘 익지 않는 사과도 생길 수 있답니다. 같은 과수원에서 같은 시기에 수확된 사과라면 녹색이 섞여 있는 과일이 오히려 햇빛을 잘 받아 맛은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맛있는 과일을 만드는 비법은?

과수원에서는 맛있는 과일을 만들기 위해 과일의 당도를 높이는 여러 방법을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중 하나는 과일나무 줄기의 껍질을 일정한 두께로 벗겨 내고, 그 둘레를 플라스틱 띠로 묶는 것이에요. 이 방법은 가을이 오기 전 나무들이 잎에서 생성된 당분을 뿌리로 이동시키는 특성을 역이용한 것이랍니다.

가을철 낙엽이 지기 전 잎에 있는 당분을 미리 옮겨놓지 않으면 낙엽과 함께 당분도 땅으로 떨어져 사라져 버리겠죠? 그래서 대부분 과일나무는 낙엽이 지기 전에 잎에 있던 당분을 뿌리 쪽으로 미리 옮겨 추운 겨울철을 버티는 에너지로 활용해요.

그런데 낙엽이 지기 전 나무 줄기의 껍질을 벗긴 뒤 플라스틱 띠로 그 둘레를 묶으면 과일나무들은 뿌리 쪽으로 당분을 이동시키지 못하게 돼요. 그럼 나무는 잎에서 가져온 당분을 잎이 아닌 과일로 이동시켜 저장해요. 덕분에 과일의 당분은 더 풍부해진답니다.

과일의 당도를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은 봄·여름에 피는 꽃의 개수를 조절하는 것이에요. 과수원에서는 봄·여름에 꽃이 핀 과일나무의 가지를 솎아내요. 이렇게 꽃의 수를 줄이면 가을에 맺히는 과일의 수는 줄어들지만, 과일 하나하나에 나무가 나누어 주는 양분의 양은 늘어나 맛도 더 좋고 크기도 큰 과일을 수확할 수 있답니다.


서금영 과학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