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인물] 노비제 폐지 등 파격적인 개혁 주장한 실학자
입력 : 2016.09.12 03:08
반계 유형원
'한국학의 대가'로 불리는 미국의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이스는 지난 1996년 조선 중기 실학자 반계 유형원(1622~1673)의 책 '반계수록'을 분석한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조선 건국에서 후기까지 나온 경세론(세상을 다스리는 이치) 중에 유형원의 반계수록이 가장 위대하다"고 말했어요. 조선시대 실학자 이익은 "시대적 과제를 이해하고 해결법을 알았던 조선시대의 인물은 율곡 이이와 유형원 둘뿐"이라고 말했답니다. 이렇게 유형원은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서도 '조선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개혁 방향을 제시했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유형원이 쓴 20여 편이 넘는 책 중 지금까지 온전하게 전해지는 건 '반계수록' 1편밖에 없어요. 조선 영조 때 총 26권으로 구성된 반계수록을 목판본으로 만들어 인쇄한 것이 남아 오늘날에도 그의 사상과 철학 일부를 엿볼 수 있답니다.
- ▲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반계 유형원 선생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32호)예요. /문화재청
이런 상황에서 유형원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개혁 정책을 주장했답니다. 우선 극소수의 양반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토지를 농민들이 공유하도록 해 누구나 일정한 땅을 경작할 수 있게 하는 '공전제'를 제시했어요. 또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100여 개의 서원을 폐지한 뒤 나라에서 3단계(소학·중학·대학)로 나누어진 공립학교로 운영하고, 여기서 배출된 학자들을 지역별 인구 수로 비례해 관리로 등용하는 교육개혁을 제안했어요. 서원과 과거제도를 통해 임용된 관리들이 민생을 외면한 채 땅을 독점하고 당파의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유형원은 또 노비 제도를 폐지하고 사람을 고용한 대가로 임금을 주는 고용임금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어요. 철저한 신분 사회였던 당시 조선에서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운 개혁안이었죠. 하지만 유형원은 경작할 땅을 잃은 농민들이 노비가 되어 비참한 삶을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조선 사회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지방의 관서와 궁궐의 조직을 대대적으로 축소하는 방안도 내놓았어요.
유형원의 개혁안은 당시 여러 학자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로 시행에 옮겨지지 못했어요. 당시 관리들이 실학을 바탕으로 한 그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고, 유형원도 스스로 벼슬에 올라 자신의 철학을 정책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죠. 33세에 과거에 합격하고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유형원은 자신의 책에 "군자가 선을 행하는 것은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늘의 이치가 마땅히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썼어요. 벼슬에 올라 권력과 부를 얻는 것보다 어려운 백성의 삶을 바꾸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삶을 택한 것이죠. 유형원이 생전에 체계적으로 정리한 실학은 이후 이익·안정복·정약용 등이 발전시켰고, 실학은 정조 시대에 이르러 조선이 재차 번영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