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빙글빙글 팽이 의자·공룡 꼬리 다리… 상상이 현실로

입력 : 2016.09.09 03:08

[헤더윅 스튜디오]

디자이너 180여 명 함께 어우러져 끊임없이 소통해 새 작품 탄생시켜
혁신·상상·재미·아름다움 갖춘 매력적인 디자인 적용한 버스·전시관 등 선보이고 있어요

디자인이란 옷이나 물품, 건축물처럼 실용적 물체의 형태를 구상하고 설계하는 것을 뜻합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 형태를 그려내는 일이지요. 주변을 둘러보세요. 건물, 전등, 의자, 가방, 필통, 과자 봉지…. 이 중 어떤 것도 디자인 없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은 없어요.

디자이너가 만든 물건 형태가 사용하기 쉽고 튼튼하며 안전하고 실용적이라면 좋은 디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답니다. 그런데 디자인은 단지 실용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에요. 사람을 끄는 매력이 더해지면 디자인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기도 하죠. 영국의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과 그의 작업실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품을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어요.

헤더윅이 여러 디자이너와 함께하는 '헤더윅 스튜디오'는 여러 디자이너가 함께 어우러져 예술적 상상을 바탕으로 디자인하는 곳이에요. 1994년에 헤더윅이 설립한 이래 180여 명의 디자이너가 함께하고 있답니다. 여럿이서 머리를 맞대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해결하며 독특한 디자인의 완성품을 만들어내죠. 20여 년간 이들이 여러 규제와 골치 아픈 조건들을 극복하며 디자인이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켜온 과정 자체가 흥미로운 관람거리랍니다.

작품1~4
매력 넘치는 디자인은 어떤 요소를 갖춰야 할까요? 첫째는 혁신입니다. 디자이너는 혁신을 좋아해요. 원래 쓰던 물건을 개선해 이전보다 더 편리하고 멋지게 바꾸어 놓으니까요.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헤더윅은 런던의 명물인 대중 버스를 새롭게 디자인해 선보였어요(작품 1). 런던의 버스 디자인은 1950년대 중반 이후 50여 년이 되도록 바뀌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부 구조는 복잡했고 승객들도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답니다. 그런데도 쉽게 이 버스의 디자인을 바꾸지 못한 이유는 '런던' 하면 누구나 이 빨간 이층 버스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죠.

헤더윅은 '빨간 이층 버스'라는 특징을 살리면서도 디자인으로 혁신을 추구했어요. 장애인도 타고 내리기 편하고 운전기사도 사방을 잘 볼 수 있게 버스 구조를 바꿨어요. 동시에 연료까지 아낄 수 있는 기능성을 더했고요. 헤더윅의 새로운 런던 버스는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 보아도 1층과 2층 연결이 깔끔하고 단순해 탁 트인 기분을 줍니다. 이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런던 거리가 한결 산뜻하고 경쾌해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해요.

둘째는 상상이에요. 디자이너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발명가이기도 합니다. 작품 2는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만든 발명품으로 사람들이 건너다니는 다리인 동시에 조각 작품이기도 하답니다. 평평하던 다리가 둥글게 말려 올라가 둥근 쳇바퀴 모양의 조각 작품으로 변해요. 헤더윅은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공룡의 긴 꼬리가 말려 올라가는 모습에 영감을 얻어 이런 다리를 만들었다고 해요.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는 것은 영국 다리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죠. '전통에서 우러나온 새로움'이 바로 영국식 발명의 핵심이니까요.

셋째는 재미입니다. 디자이너는 일상 속에서 재미를 선물하죠. 작품 3은 사람이 앉으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예요. 매력 있는 디자인을 접하면 마치 유머 넘치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일상에 활력을 얻어요. 온종일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일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얼굴 표정이 시큰둥하게 굳어 있을 때가 있는데, 이런 팽이 의자에 앉아보면 한 번쯤 미소를 띠게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은 가장 중요한 아름다움입니다. 디자이너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직업이에요. 디자인된 물건이나 건물이 아무리 쓰임새가 훌륭해도 아름답지 않다면 매력이 있을까요? 작품 4를 보세요. 보송보송한 민들레 꽃씨처럼 생긴 이것은 2010년 상하이 박람회장에 지었던 영국 전시관이랍니다. 헤더윅은 '전시장 건물은 벽이 매끈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투명한 은색 머리카락이 수북하게 솟아난 듯한 모습의 전시관을 지었어요. 유리로 된 머리카락의 끝부분에는 어여쁜 씨앗 25만 개가 들어 있는데, 미래의 희망이 될 생명체처럼 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답니다.

헤더윅은 "혼자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생각한다고 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나는 스튜디오 사람들과 논의와 논쟁을 거듭하면서 아이디어를 가꿔나간다"고 말했어요.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품들은 세상을 매력 넘치는 곳으로 변화시키고픈 사람들이 예술적 상상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 잊지 마세요.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