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전기 없이 움직이는 말랑말랑한 로봇이 있다?

입력 : 2016.09.06 03:08

생물 본뜬 옥토봇·가오리 로봇 등 형체 부드러워 유연한 동작 가능
공기 압력·빛 이용해 움직여요
충격에 강하고 몸 크기 조절 가능해 구조·의료용 등 활용 무궁무진

로봇(robot)이라는 말을 들으면 강철로 만들어진 딱딱하고 각진 몸매가 떠오르지 않나요? 그런데 최근 이런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새로운 로봇들이 등장하고 있답니다. 실리콘이나 고무처럼 부드러운 재료로 만들어진 '소프트 로봇(soft robot)'이 그 주인공이에요. 소프트 로봇은 문어나 가오리, 애벌레 같은 생물의 움직임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형체도 말랑말랑하고 움직임도 기존 로봇들보다 더 유연하답니다.

이런 소프트 로봇이 개발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최근에는 전기에너지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도 등장하고 있답니다.

◇공기의 압력으로 움직이는 문어 로봇

지난달 2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미국 하버드대 제니퍼 루이스 교수팀이 개발한 '옥토봇(Octobot)'이 공개돼 화제가 됐어요. 옥토봇이라는 이름은 문어를 뜻하는 영어 'octopus'와 로봇(robot)을 합성해 지은 거예요. 옥토봇은 이름 그대로 연체동물인 문어와 생김새도 닮았을뿐더러 몸 전체가 말랑말랑하답니다. 실리콘 재질의 부드러운 물질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심지어 로봇 내부에 내장된 제어장치도 모두 말랑하게 만들어졌어요.

이 옥토봇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전기에너지 없이 화학작용을 이용해 몸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옥토봇은 과산화수소수가 백금(白金·약한 회색을 띠는 백색 금속)에 닿았을 때 산소와 수증기로 분해되는 성질을 이용해요. 옥토봇의 몸 안 회로에는 과산화수소수가 흐르는데, 이 과산화수소수가 백금을 만나면 산소와 수증기로 변해요. 이 산소와 수증기로 로봇 내부의 공기 압력이 커지면 부드러운 옥토봇의 다리도 팽창해 움직이게 되는 것이죠.

기사 관련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이렇게 화학작용을 이용한 소프트 로봇의 움직임은 아직 초기 단계라 개선할 부분이 많아요. 하지만 '전기에너지 없이도 스스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이 개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커요.

지난 7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된 '가오리 로봇'도 자체 에너지로 움직이는 소프트 로봇이에요. 서강대 최정우 교수팀이 개발한 가오리 로봇은 유전자조작 기술을 활용했답니다. 실험용 쥐의 유전자를 조작해 심장근육세포가 빛을 받으면 저절로 줄어들었다 펴지도록 만든 것이죠. 이렇게 만들어진 실험용 쥐의 심장근육세포를 가오리 로봇의 뼈대에 정교하게 결합해 지느러미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 가오리 로봇에 빛을 비추면 심장근육세포가 저절로 움직이고, 덩달아 지느러미도 움직이면서 가오리 로봇이 물속을 헤엄치게 된답니다. 비추는 빛의 양을 조절하면 가오리 로봇이 헤엄칠 방향도 조절할 수 있어요. 가령 왼쪽보다 오른쪽에 강한 빛을 비추면 오른쪽에 있는 세포들이 더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가오리 로봇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요.

가오리 로봇은 생물의 세포를 이용해 로봇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어요. 이런 로봇들이 발전하면 언젠가 사람이나 동물의 세포를 활용한 '바이오 로봇'도 등장할 수 있을 거예요.

◇재난 구조·의료·우주탐사에 활용될 듯

소프트 로봇은 외부 충격에 부서지지 않고 여러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어요. 말랑말랑한 몸을 갖고 있기 때문에 딱딱한 사물과 부딪혀도 파손될 위험이 적고, 부드러운 물체를 들거나 쥐어도 물체가 망가지지 않는답니다. 뻣뻣한 기존 로봇들과 다르게 환경에 맞게 몸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여러 가지 움직임을 취할 수 있어요.

지난 4월에 열린 '제1회 로보소프트 그랜드 챌린지'에서 우승한 조규진 서울대 교수팀의 '스누맥스(SNUMAX)'는 이런 소프트 로봇의 장점을 잘 보여줬답니다. 아르마딜로의 모습을 본떠 만든 스누맥스는 접었다 펴기를 반복할 수 있는 종이접기의 원리를 활용했어요. 스누맥스는 주변 공간에 따라 접었다 펴기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바퀴를 갖고 있답니다. 그래서 좁은 공간은 바퀴를 접어 통과할 수 있고, 울퉁불퉁한 장애물도 바퀴의 모양을 바꾸어 넘어갈 수 있죠. 심지어 계단도 올라갈 수 있답니다. 스누맥스는 미래의 소프트 로봇이 험난한 재난 현장에서 탐사·구조 활동을 펼치고 외계 행성에서도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었어요.

소프트 로봇은 의료용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커요. 딱딱한 로봇이 우리 몸 안에 들어가면 딱딱한 외형으로 인해 몸속 내장이 다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부드러운 형체를 가진 소프트 로봇은 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우리 몸 안으로 들어가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치료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수술실에서 수술 장비를 세척해 의사에게 건네주고 사람의 장기를 다치지 않게 다루는 '소프트 로봇 간호사'도 등장할 수 있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딱한 로봇이 아예 필요 없게 되는 건 아니에요. 강한 힘을 들이거나 고도의 정밀함이 필요한 작업은 여전히 딱딱한 형태를 띤 로봇들이 훨씬 능숙하게 해낸답니다. 당분간 두 모습의 로봇은 각자의 장점을 살려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줄 가능성이 커요. 소프트 로봇과 기존의 로봇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세요.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