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세쌍둥이가 태어나면 곡식을 내리거라"

입력 : 2016.09.05 03:10

[쌍둥이 이야기]

쌍둥이 낳으면 축복했던 신라·조선
인구 늘면 나라 살림 늘어난다 여겨 출산 장려 정책처럼 큰 상 내렸어요

신라 벌휴왕 때 다섯 쌍둥이 태어나
조선, 세쌍둥이 탄생기록 90번 넘어

지난달 17일 충북 청주에서 네쌍둥이가 태어나 각계각층에서 축하 인사가 쏟아졌어요. 네쌍둥이를 낳은 부모에게 분유와 출산용품을 지원하겠다는 회사도 있었고 격려금을 준 병원도 있었죠. 네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100만분의 1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드문 일이기 때문이에요.

네쌍둥이는 물론 쌍둥이가 태어나는 일도 드물지요. 그런데 최근 쌍둥이 수가 늘어나고 있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출산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한 쌍둥이는 1만5774명으로 2014년보다 6.5%(876명) 늘었다고 해요. 쌍둥이 출산이 늘어난 이유는 인공수정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에요. 자연 임신이 아닌 인공수정으로 임신할 경우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번에 여러 개 난자가 배란되도록 하고 2개 이상 수정란을 이식하기 때문이죠.

요즘과는 형편이 달랐던 옛날에는 쌍둥이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조상들이 남긴 여러 역사서에는 세쌍둥이와 네쌍둥이가 태어난 일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답니다.

◇신라에 태어난 다섯 쌍둥이

우리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 중 한 번에 가장 많은 쌍둥이가 태어난 것은 다섯 쌍둥이예요. 고려 때 학자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는 "신라 벌휴왕 10년 3월에 한기부(지금의 경주 부근) 여자가 한 번에 아들 넷, 딸 하나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어요. 벌휴왕은 신라의 제9대 임금으로 184년부터 196년까지 왕의 자리에 있었으니, 벌휴왕 10년이면 193년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는 신라 문무왕 때 세쌍둥이와 네쌍둥이가 태어난 일이 적혀 있어요. 기록에 따르면 666년 3월 10일에 '길'이라는 이름의 종이 한꺼번에 세 아들을 낳았고, 670년 1월 10일에는 한기부에 살던 한 여종이 한꺼번에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낳아 나라에서 곡식 200석을 상으로 주었다고 합니다. 곡식 200석이면 약 2만8800㎏이니 엄청나게 큰 상을 여종에게 내려준 것이죠.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나라 살림이 늘어나자 네쌍둥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며 크게 한턱낸 것으로 짐작돼요.

◇세쌍둥이 낳으면 쌀과 콩을 준 조선

조선 시대에도 세쌍둥이 이상을 낳으면 나라에서 곡식을 상으로 내렸던 일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답니다. 조선 제13대 왕 명종 때 일이에요.

[뉴스 속의 한국사]
/그림=이병익
"전하, 한 번에 세 아이를 낳은 자에게는 쌀과 콩 10석을 나라에서 내려주는 전례가 있습니다. 원주에 사는 평민 '사월이'가 세쌍둥이를 낳았고, 양산에 사는 '명지'라는 노비가 네쌍둥이를 낳았으니 마땅히 곡식을 내려야 하옵니다. 그러나 근래에 흉년이 들어 비축된 곡식이 거의 떨어졌으니 곡식의 양을 줄여 내려주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임금의 비서기관이던 승정원에서 이렇게 아뢰자 명종은 "비록 전례에 따라 준다 한다고 해서 어찌 국고가 줄어들겠는가"라고 말하며 사월이와 명지에게 전례대로 쌀과 콩 10석씩 내려주라고 지시했어요. 세종 때 종9품 관리가 1년간 받는 월급이 쌀과 콩 10석이라고 하니, 세쌍둥이와 네쌍둥이를 낳은 사월이와 명지는 양반집 1년치 양식을 상으로 받은 것이죠.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부터 고종 때까지 어디에 사는 누가 세쌍둥이를 낳았다는 기록이 90번이나 넘게 등장하고, 이들에게 쌀이나 콩을 내려주었다는 기록도 계속해서 나온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쌍둥이를 낳은 사람의 신분이 대부분이 평민이나 천민으로 나와 있어요. 반면 양반이 세쌍둥이를 낳았다는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답니다. 일반 백성인 평민들에 비해 양반의 숫자가 적은 탓도 있겠지만, 양반들은 세쌍둥이 이상을 낳아도 나라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짐작돼요.

그렇다고 해서 조선 시대 양반들이 쌍둥이에 대한 나쁜 편견이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여요. 양반 중에서도 세쌍둥이는 아니라도 쌍둥이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에요. 조선 후기 숙종 때 좌찬성이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던 민점에 대해 이런 기록이 남아있어요.

"좌찬성 민점이 세상을 떠나니, 나이가 64세이다. 민점은 민희의 아우인데, 민희와는 쌍둥이다."

민점은 숙종 때 오늘날 장관급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형조판서와 이조판서, 좌찬성이라는 높은 벼슬에 올랐던 인물이에요. 민점의 쌍둥이 형인 민희도 예조판서와 우의정, 좌의정 등 아주 높은 벼슬에 올랐답니다. 이를 통해 양반이 쌍둥이라고 해서 차별을 하거나 불이익을 주지는 않았다고 미루어볼 수 있어요.

◇인구는 나라의 힘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쌍둥이나 세쌍둥이, 네쌍둥이가 태어난 일을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겨두었어요. 삼국 시대나 조선 시대에도 세쌍둥이나 네쌍둥이를 낳은 것을 크게 축하해줄 일로 여겼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죠.

우리 조상들도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곧 나라의 힘이 커지는 것으로 여겼어요. 백성이 내는 조세로 나라 살림을 꾸린 만큼 인구가 늘어나면 나라 살림도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죠. 세쌍둥이 이상을 낳으면 큰 상을 내렸던 것도 나라 살림을 늘리기 위한 일종의 출산 장려 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인구가 국력이라는 점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답니다. 최근 정부와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산 장려 정책을 시행하는 것도 저조한 출산율을 높여야 장래 우리나라의 국력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