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아프리카의 엘도라도… 찬란했던 역사 잊힌 이유
[반달리즘과 말리 왕국]
세계 황금 70% 생산했던 말리 왕국
전성기 이끈 통치자 '만사 무사'… 건축가·학자 데려와 문명 꽃피워
문화유산 파괴하는 '반달리즘', 유적 일부 훼손… 지금도 계속 자행
지난 22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는 세계문화유산인 아프리카 말리의 팀북투 유적을 파괴한 이슬람 극단주의자 알마디에 대한 재판이 열렸어요.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범죄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재판이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알마디처럼 고의적으로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를 반달리즘(vandalism)이라고 합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교회의 건축물과 예술품을 파괴하는 군중을 본 가톨릭 주교 투르 앙리 그레구아르가 "마치 고대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Vandals)이 고대 로마 문명의 유적을 파괴한 것과 같다"며 반달리즘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한번 파괴된 문화유산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어요. 알마디가 파괴한 팀북투 유적도 아프리카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말리 왕국의 문화유산이기에 많은 사람이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어요.
◇'아프리카의 엘도라도' 말리 왕국
아프리카에도 이집트 외에 찬란한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아프리카 서쪽에 사하라사막을 끼고 있는 말리 공화국의 자리에는 13~17세기 '황금의 나라'로 불린 말리 왕국이 있었어요. 당시 전 세계 황금의 70%가 말리 왕국에서 생산될 정도로 말리 왕국에는 엄청난 양의 금이 매장되어 있었답니다. 게다가 말리 왕국 북쪽에는 암염(돌소금)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어 소금 무역으로도 막대한 수익을 거뒀어요. 말리의 상인들은 낙타에 금이나 소금을 싣고 사하라사막을 건너는 목숨을 건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고 해요. 말리 왕국의 수도 팀북투는 당시 사하라사막을 가로질러 아프리카의 서쪽과 북쪽을 연결하던 서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였답니다.
- ▲ 말리의 고대 도시 팀북투에 있는 징게르베르 사원의 모습이에요. 지난 2012년 말리의 이슬람 반군은 이 사원의 내부에 있는 이슬람 성자들의 무덤을 파괴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어요. /Flickr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것은 14세기 말리 왕국을 통치한 만사 무사였어요. 만사 무사가 통치하던 시기 말리 왕국은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동시에 영토도 방대하게 넓었어요. 아라비아의 탐험가 이븐 바투타는 자신의 여행기에 "말리 왕국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여행하는 데 4개월이 걸렸다"고 적었답니다. 만사 무사가 소유한 재산도 어마어마했는데, 오늘날 기준으로 그의 재산을 환산하면 4000억달러(약 455조원)라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나온다고 해요.
◇만사 무사의 호화로운 성지순례
만사 무사가 당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호화로운 여행으로 꼽히는 그의 성지순례 때문이에요. 열렬한 이슬람교 신봉자였던 만사 무사는 1324년 이슬람교의 성지인 메카를 향해 성지순례에 나섰는데 노예 1만2000명과 아내 800명, 그리고 황금 11t을 실은 낙타 100여 마리와 만사 무사를 호위할 5만여 명의 군대가 동원됐어요. 말을 탄 만사 무사 앞에는 금장식의 지팡이를 든 노예 500명이 앞장섰다고 합니다. 이 거대한 행렬이 니제르 강가를 출발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까지 장장 4000㎞를 이동했다고 상상해보세요. 정말 장관이었겠죠? 번쩍이는 황금과 페르시아 비단옷으로 치장한 만사 무사의 일행은 어디서나 이목을 집중시켰고,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만사 무사를 '아프리카의 태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만사 무사의 성지순례는 말리 왕국이 문화적 번영을 이루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만사 무사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수많은 건축가와 예술가, 학자를 팀북투로 데려왔기 때문이죠. 이후 팀북투는 신학과 법학, 의학, 수사학, 논리학, 천문학 등이 활발히 연구되는 세계적인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어요. 당시 세계 각지에서 팀북투에 모여든 학생만 2만5000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반달리즘은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
하지만 만사 무사가 죽은 뒤 말리 왕국은 점점 쇠퇴했고 17세기 무렵 송가이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말았어요. 말리 왕국의 찬란한 역사가 잊힌 것은 말리의 자연환경이 급속도로 사막화된 영향도 있지만 말리 왕국의 유적에 대한 반달리즘이 여러 흔적을 지웠기 때문이에요.
우리 민족도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 문서가 소실되거나 약탈돼 반달리즘 피해를 겪었어요. 유럽에서는 종교개혁 후 신교도들이 가톨릭 성당의 조각과 벽화를 파괴하거나 이슬람 국가가 그리스 정교의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반달리즘이 끊이지 않았고요. 200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이 파괴됐고, 지난해에는 시리아의 팔미라 고대 유적이 훼손되는 등 최근에도 반달리즘은 계속되고 있답니다. 세계의 문화유산은 인류 공동의 재산이며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반달리즘은 전쟁범죄와 같은 행위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