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닮은 듯 다른 '만종'… 왜 그린 걸까요
입력 : 2016.08.26 03:08
[위작, 모작 그리고 패러디]
고흐·달리, 존경의 뜻으로 '모작'… 비슷하지만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
'모방은 제2의 창조'인 셈
명작 남용 비판한 권여현은 패러디… 사람들 속이는 '위작'과 달라요
최근 한국을 대표하는 이우환,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두고 위작(僞作) 논란이 일면서 미술 작품의 위작과 모작(模作), 패러디(parody)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위작은 다른 사람을 속일 의도로 원작을 베낀 작품을 말해요. 한마디로 '짝퉁'인 것이죠. 위작을 원작처럼 속여 비싼 가격에 파는 사기 범죄도 종종 벌어진답니다.
모작과 패러디는 이런 위작과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어요. 오늘은 프랑스의 유명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걸작 '만종(晩鐘·원어명 L'Angelus)'을 예로 들어 모작과 패러디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도록 해요.
모작과 패러디는 이런 위작과 비슷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어요. 오늘은 프랑스의 유명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걸작 '만종(晩鐘·원어명 L'Angelus)'을 예로 들어 모작과 패러디는 어떤 것인지 알아보도록 해요.
당시 프랑스 농민들은 하루에 세 번 교회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기도를 하는 '삼종기도'라는 풍습이 있었어요. 그림의 제목 '만종'은 종소리 세 번 중 해질 무렵 울리는 종소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밀레는 한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만종'을 그리게 된 배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만종은 나의 옛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린 그림이네. 예전에 우리가 밭에서 일할 때 저녁 종이 울리면 우리 할머니는 한번도 잊지 않고 우리의 일손을 멈추게 하고는 삼종기도를 올리게 했네. 우리는 모자를 손에 꼭 쥐고서 경건한 마음으로 저세상으로 떠난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곤 했지."
농민들의 소박한 일상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종교적인 분위기로 담아낸 밀레의 '만종'은 네덜란드의 화가 반 고흐에게도 강한 영감을 주었어요. 작품2는 반 고흐가 밀레의 '만종'을 모방한 모작입니다. 모작은 원작을 그대로 본뜬 작품을 말해요.
그렇다고 해서 위작이랑 모작이 똑같다고 생각해선 안 돼요. 위작과 달리 모작은 원작자에 대한 존경과 배움의 뜻이 담겨 있답니다. 밀레를 숭배한 반 고흐는 밀레의 그림들을 따라 그리면서 그의 예술 세계와 인생관을 본받으려 했어요. 반 고흐가 밀레의 작품을 모방해 스케치한 그림이 무려 300여 점이나 됩니다.
무엇보다 모작은 자신이 원작을 모방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는 점에서 위작과 큰 차이가 있어요. 모작은 화가 지망생들이 그림을 배우는 방법이기도 하답니다. 훌륭한 화가의 그림을 그대로 그리면서 그림 실력을 쌓아나가는 것이죠.
작품3 역시 '만종'의 모작이지만 반 고흐의 모작과는 달라요.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밀레의 만종에 대한 고고학적 회상하기'라는 이 작품은 원작 '만종'의 주제와 구도는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달리만의 스타일로 '만종'을 바꾸어 모방한 작품이에요. 원작의 들판은 달리의 고향인 스페인 '포르트 리가트' 해변으로, 농민 부부는 바위 모양으로 변했지요. '괴짜 예술가'라는 별명답게 톡톡 튀는 달리의 방식이 잘 드러나 있어요.
달리는 반 고흐와는 다르게 '만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원작을 모작했어요. 달리는 "'만종'에 나오는 감자 바구니는 사실 아기 시체를 담은 관짝"이라는 충격적인 주장을 내놓았답니다. 평화로운 농촌의 삶과 경건한 종교심을 보여주는 원작 '만종'이 사실은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농민 부부가 눈물의 기도를 올리는 슬프고도 무서운 그림이라는 것이죠.
처음엔 이런 달리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요. 그런데 훗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원작 '만종'을 복원하기 위해 그림을 X-ray로 촬영한 결과 감자 바구니 아래 다른 밑그림이 그려졌던 흔적이 발견되었답니다.
그러자 "달리의 말대로 밀레가 원래는 아기의 시체를 담은 관을 그렸다가 감자 바구니로 바꾼 게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지요. 지금도 감자 바구니 아래 나타난 밑그림의 정체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답니다.
작품4는 우리나라 작가 권여현이 '만종'을 패러디한 작품이에요. 패러디는 위작, 모작과 달리 원작을 흉내 내어 익살스러운 표현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을 말해요.
권여현은 이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 명작 '만종'이 저렴한 판매용 그림처럼 이곳저곳에 남용되는 현실을 풍자하려고 했답니다. 이 작품에서 권여현은 자신의 제자와 함께 직접 명화 속 농민 부부로 변신했어요. 두 사람은 원작 '만종'에 나오는 농민 부부와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동작을 취한 뒤 사진을 찍었어요. 그 사진을 캔버스에 복사해 물감을 칠해서 그림을 완성했고요.
재미난 점은 권여현과 그의 제자 두 사람은 작품 속 자신의 모습을 직접 그리는 공동 작업을 했다는 거예요. 왜 스승과 제자가 공동 작업으로 패러디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이 작품은 사실 미술사 수업에서 화가가 직접 명화 속 주인공이 되어보는 패러디를 통해 원작이 그려진 시대적 배경과 작품의 의미를 체험한 것이랍니다. 이렇게 패러디를 이용하는 수업 방식은 이론 수업보다 명작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요. 더불어 이 작품은 화가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직접 명화 속 인물이 되어보면서 스스로 어떤 모습의 사람이 되고 싶은지 깨달아 가는 것이죠. 이렇게 반 고흐와 살바도르 달리, 권여현은 모작과 패러디를 통해 '모방은 제2의 창조'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