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주머니 털어 산 13대의 '바보상자'로 거장이 되다
입력 : 2016.08.19 03:12
[백남준]
텔레비전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비디오 아트' 창시자로 명성 얻어
TV 3대 연결해 만든 첼로·거북이 헤엄치는 광경 등 전통과 기술의 조화 보여줬어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이 노래처럼 스스로 TV에 자신을 등장시킨 예술가를 보여 드릴게요(작품1). 화면이 떨어져 나간 고장 난 TV를 손으로 받쳐 들고 뒤에서 장난스러운 표정의 얼굴을 살짝 내민 이 사람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백남준(1932-2006)입니다.
사람들은 TV를 '바보상자'라 부르기도 합니다. TV는 우리가 하는 말을 듣지도 않고, 알아듣지도 못해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TV에 나오는 말만 듣고, 믿게 되는 '바보'가 되기도 해요. 그런데 백남준은 달랐어요. TV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대신 강력한 자석을 이용해 화면을 바꾸어 버리기도 하고, 코일에 전류를 통하게 해 TV에 나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기도 했어요. TV를 보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TV를 다양하게 활용해 새로운 예술을 만든 것이죠.
사람들은 TV를 '바보상자'라 부르기도 합니다. TV는 우리가 하는 말을 듣지도 않고, 알아듣지도 못해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TV에 나오는 말만 듣고, 믿게 되는 '바보'가 되기도 해요. 그런데 백남준은 달랐어요. TV 앞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대신 강력한 자석을 이용해 화면을 바꾸어 버리기도 하고, 코일에 전류를 통하게 해 TV에 나오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기도 했어요. TV를 보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TV를 다양하게 활용해 새로운 예술을 만든 것이죠.
백남준이 어릴 적에는 우리나라에서 TV를 구경하기 어려웠어요. 선진국에는 1950년대에 각 가정에 TV가 보급됐지만, 우리나라는 6·25전쟁의 여파로 TV 보급이 늦었기 때문이죠. 대신 백남준은 전쟁을 피해 한국을 떠나 외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TV를 만났어요. 일본에서는 음악과 예술을 공부하고, 독일에서는 여러 혁신적인 예술가와 어울리며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얻었답니다. 바이올린을 서서히 머리 위에 올렸다가 바닥에 내리쳐 깨부수는 행위 예술을 기획하기도 했어요. 틀에 박힌 전통에서 음악을 해방시킨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죠. 이렇듯 세상을 놀라게 하는 아이디어로 조금씩 유명해질 무렵, 백남준은 TV로 예술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해요.
이후 백남준은 TV와 관련된 전자·물리 공부에 푹 빠졌고, 당시 자신이 갖고 있던 돈을 몽땅 털어 TV 13대를 구입했어요. 그리고 하루 종일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TV를 뜯었다, 붙였다 하며 연구에 몰두했어요. 작품3은 1963년 백남준이 TV를 활용한 첫 비디오 전시회에서 선보였던 작품인데, TV 3대를 연결해 만든 첼로랍니다. 각각의 화면에는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고, 연주 소리의 크기에 따라 영상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해요.
이 작품은 기술 문명을 상징하는 TV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음악의 세계와 아름답게 만났다는 점에서 예술사에 아주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답니다. 앞서 시대가 달라져도 변화할 줄 모르는 예술의 전통을 깨기 위해 악기를 깨부순 백남준은 이 작품으로 파괴가 아닌 조화를 찾아낸 것이죠. 'TV 첼로'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예술은 전통과 기술이 즐겁고 아름답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자신의 새로운 신념을 보여준 거예요.
현재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진행되고 있는 '백남준 쇼' 전시장의 하이라이트는 시시각각 바닥의 모습이 달라지는 둥근 모양의 방이에요. 방 가운데에는 백남준이 TV 166대로 만든 아주 커다란 거북을 볼 수 있어요(작품4·5). 백남준의 거북이 2016년의 최첨단 전시 기술과 만난 거예요. TV로 만든 거대한 거북 한 마리가 빛의 파도를 울렁울렁 넘으며 헤엄치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죠.
"언젠가는 모두가 각자의 TV 채널을 갖게 될 것이다." 2006년 세상을 떠난 백남준이 남긴 말입니다. 그의 말대로 오늘날 많은 사람은 인터넷에서 자기만의 채널을 가지고 다양한 사진과 영상, 음악을 서로에게 보여주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어요. 그런 의미에서 세상 사람들은 'TV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백남준은 이미 TV라는 영상과 기술 문화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될지 일찌감치 내다보았던 거예요. 백남준의 TV는 그냥 네모난 바보상자가 아니라, 손과 머리와 마음을 다해 기술 문화를 즐기는 인간의 모습 그 자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