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샌드위치 가게에서 당긴 방아쇠, 세계를 전쟁터로…

입력 : 2016.08.11 03:09

[사라예보 사건]

19세기 제국주의에 빠진 강대국들… 식민지 확대하려 동맹 맺으며 대립
오스트리아 프란츠 황태자 부부, 세르비아계 프린체프에게 살해당해
4000만명 피해 본 전쟁 시작됐죠

최근 유럽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추종하는 세력의 연이은 테러가 벌어졌어요. 지난달 프랑스 휴양지 니스에서는 테러범이 트럭을 몰고 해변가에 있던 관광객과 시민을 덮쳐 84명이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있었어요. 지난해 11월에는 파리에서도 대규모 테러로 130여 명이 사망하기도 했고요. 프랑스 외에도 벨기에나 터키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테러가 이어지고 있어요.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해치고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테러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돼요. 역사를 돌이켜보면 테러는 심지어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을 낳기도 합니다. 약 4000만명의 인명 피해를 남겨 인류 역사의 비극으로 꼽히는 제1차 세계대전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벌어진 테러로 시작되었어요.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

사라예보 위치 지도

19세기 말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당시 유럽과 발칸반도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지금의 유럽은 지도자들이 화약 창고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과 같다. 단 하나의 불씨가 우리 모두를 태워버릴 만한 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폭발은 발칸반도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면서 시작될 것이다."

당시 발칸반도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간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 발칸반도 국가들은 이런 강대국들의 갈등 속에서 독립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고요. 강대국과 발칸반도 국가들의 갈등이 뒤섞인 상황을 비스마르크는 아주 위험하다고 본 것이죠.

발칸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갈등은 점점 커져갔지만,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제국주의에 빠진 강대국들은 그저 발칸반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는 데에만 골몰했기 때문이었죠.

러시아와 대립하던 오스트리아는 1908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병합해요.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게르만족의 나라인 오스트리아가 슬라브족이 사는 자신들의 나라를 빼앗은 데 깊은 분노를 느꼈어요. 이 중 과격한 젊은이들은 '젊은 보스니아' '검은 손'과 같은 비밀단체를 만들어 오스트리아에 맞서기로 했어요.

◇사라예보, 그날의 이야기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아내 조피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중심지인 사라예보를 방문했어요. 황태자 부부라지만 이들은 역경과 고통을 많이 겪었답니다.

페르디난트는 원래 황태자가 아니었어요.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카였죠. 그런데 요제프 1세의 유일한 아들 루돌프 황태자가 사랑하던 연인과 함께 자살하면서 페르디난트가 황태자 자리를 물려받게 되었어요. 페르디난트는 당시 시녀 출신인 조피와 사랑에 빠져 있었는데, 페르디난트가 황태자가 되면서 둘의 사랑에도 문제가 생겼어요. 오스트리아 황실에는 황태자가 시녀와 결혼할 수 없다는 금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결혼을 반대하는 압박과 멸시 속에서 두 사람은 '조피가 낳은 자녀가 황위를 계승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간신히 결혼할 수 있었어요.

1914년 비밀단체 ‘검은 손’의 단원 프린체프가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살해한 사라예보 사건 당시의 모습이에요.
1914년 비밀단체 ‘검은 손’의 단원 프린체프가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를 살해한 사라예보 사건 당시의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불행히도 사라예보에는 오스트리아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검은 손' 단원들이 황태자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자동차를 타고 거리 퍼레이드를 하는 황태자 부부를 향해 샌드위치 가게에 숨어 있던 검은 손 단원 가브릴로 프린체프가 뛰어나와 총격을 가했어요. 프린체프가 쏜 두 발의 총알은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목과 아내 조피의 배에 맞았고, 축복받지 못했던 부부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어요. 당시 19세의 나이로 황태자 부부를 살해한 프린체프는 경찰에 체포된 뒤 징역 20년 형을 받고 감옥에 갇혔고, 4년 뒤 폐결핵에 걸려 감옥에서 목숨을 잃었어요.

◇제1차 세계대전의 교훈은…

사라예보 사건은 비스마르크의 예언대로 발칸반도에 묻혀 있던 강대국 간의 갈등에 불을 질렀어요. 먼저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 정부가 '검은 손'의 테러를 지원했다"고 주장하며 세르비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언했어요. 그러자 세르비아와 가까운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돕겠다고 나섰고요. 이것을 본 오스트리아의 동맹국 독일은 러시아와 러시아의 동맹국 프랑스에 전쟁을 선언합니다. 영토를 넓히기 위해 여러 동맹 관계로 얽혀 있던 유럽 강대국들은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전쟁 속으로 휘말렸어요. 제1차 세계대전의 막이 오른 것이죠.

전쟁은 크게 오스트리아-독일-이탈리아의 삼국동맹과 영국-프랑스-러시아로 이루어진 삼국협상 간의 대결로 이뤄졌어요. 이 나라들의 식민지와 동맹국 간에도 전쟁이 벌어지면서 전 세계는 전쟁터로 변했어요.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진 독가스, 탱크, 폭격기, 기관총 등 대량 살상 무기들이 모두 투입되었고요.

1918년 독일이 항복하면서 4년 만에 끝난 제1차 세계대전에서 군인만 900만명, 민간인은 11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돼요. 황태자 부부를 암살했던 프린체프도 자신의 테러가 이런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다고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책임을 모두 프린체프에게 물을 수는 없어요. 제1차 세계대전의 근본적인 원인은 강대국들이 평화와 번영이 아닌 이익과 영향력만을 좇아 서로 충돌했기 때문이에요.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는 IS의 테러도 중동의 불안한 정세와 쏟아지는 난민이 근본적인 원인이에요.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는 테러를 막기 위해선 사라예보 사건과 제1차 세계대전을 교훈으로 삼아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합니다.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