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휘이이이익, 호르륵" 울음소리에 사투리 섞여 있대요
[휘파람새]
휘파람새, 지역마다 울음소리 달라
해안에서는 두 가지 소리 함께 내고 내륙에서는 한 가지 소리 주로 사용
겨울에는 중국 남부·필리핀 갔다가 태어난 지역으로 다시 돌아와
- ▲ 강원 원산에 서식하는 휘파람새의 모습이에요. /김창회 국립생태원 책임연구원
"휘이이이익…호르륵!" 하고 우는 휘파람새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 휘파람새는 매년 4월쯤 우리나라에 찾아와 봄·여름을 보내고 겨울에는 따뜻한 중국 남부와 필리핀으로 떠나는 여름 철새예요. 주로 논 근처 물가나 야산의 덤불, 호수나 하천 주변 갈대밭 근처에서 찾아볼 수 있답니다. 수컷은 몸길이가 16㎝, 암컷은 13㎝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새지만, 울음소리가 크고 아름답기로 유명해요. 휘파람새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동남부와 일본, 사할린섬 등 동아시아 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제주휘파람새와 숲새, 개개비 같은 휘파람새가 전국 곳곳에 퍼져서 살고 있고요.
일본에서는 휘파람새를 제비와 함께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여긴다고 해요. 휘파람새 똥이 피부를 깨끗하게 해주고 주름 제거에 좋다며 화장 재료로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재미난 점은 휘파람새가 사람과 비슷하게 사투리를 쓴다는 사실이에요. 휘파람새 울음소리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것이죠. 대체 어떤 이유로 휘파람새는 사투리를 쓰게 된 것일까요?
◇휘파람새가 사투리를 쓰는 이유는?
휘파람새는 보통 뿔뿔이 흩어져 지내다 짝짓기 철이 되면 수컷이 울음소리를 내어 짝짓기할 암컷을 찾은 뒤 둥지를 짓고 알을 낳아요. 수컷들은 이렇게 짝짓기할 암컷을 찾거나 자기 영역에 들어온 다른 수컷을 내쫓기 위해 동네가 쩌렁쩌렁할 정도로 크고 맑은 울음소리를 내요.
수컷 휘파람새의 울음소리는 "휘이이이익" 하는 길고 가는 소리와 "호르륵" 하고 짖는 소리로 구성되어 있어요. 20여 년 전부터 경기도 가평에서 제주도까지 우리나라 20여 지역에 사는 휘파람새 86마리의 소리를 녹음해 분석한 결과 지역에 따라 수컷들이 가는 소리와 짖는 소리를 내는 방식이 제각각 다른 것으로 나타났어요. 제주도나 한반도 남쪽 해안에 사는 휘파람새는 가는 소리와 짖는 소리를 상황에 따라 섞어 울음소리를 내요. 반면 내륙에 사는 휘파람새는 짖는 소리로만 노래를 부르는 특징이 있답니다.
물론 이런 차이만 있는 건 아니에요. 해안 지역에 사는 휘파람새도 사는 곳에 따라 가는 소리가 조금씩 달라요. 짖는 소리도 마찬가지로 같은 내륙이라고 해도 경남 거창에 사는 휘파람새와 충북 청주에 사는 휘파람새 소리가 제각기 다르답니다.
같은 휘파람새인데도 지역마다 울음소리가 다른 까닭은 그 지역에 얼마나 많은 휘파람새가 사는지와 관련이 있어요. 휘파람새가 많이 모여 사는 제주도와 한반도 남쪽 해안 지역에서는 수컷 휘파람새들이 각자 50~60m 반경의 좁은 영역을 차지하고 암컷과 짝짓기하고자 경쟁을 벌여요. 그러다 보니 평소에도 자기 영역을 다른 수컷에게 알리기 위해 가는 소리와 짖는 소리를 섞어 울음소리를 낸답니다. 그러다 다른 수컷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면 '호르륵' 하고 짖는 소리만 내어요.
- ▲ 휘파람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울음소리를 내고 있어요. 휘파람새의 울음소리는 사는 곳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요. /위키피디아
내륙에 사는 수컷 휘파람새는 300~500m의 넓은 반경을 차지하며 살아갑니다. 짝짓기 경쟁도 덜하기 때문에 해안에 사는 휘파람새처럼 굳이 '휘이이이익' 소리를 섞어가며 쉼 없이 울어댈 필요가 없어요. 그저 다른 수컷이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을 때에만 짖는 소리로 경고를 보내는 것이죠.
이러다 보니 제주도와 해안 지역에 사는 휘파람새는 자연스레 두 가지 소리를 두루두루 듣고 배우게 돼요. 반면 가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없는 내륙 지역의 휘파람새들은 자연히 짖는 소리 위주로 울음소리를 배울 것이고요.
◇태어난 곳을 떠나지 않는 휘파람새들
휘파람새의 사투리가 심한 또 다른 이유는 휘파람새가 태어난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에요. 휘파람새의 다리에 고리를 달아 관찰한 결과 중국과 필리핀에서 겨울을 보낸 휘파람새는 암수 상관없이 자기가 번식한 지역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죠.
한곳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그 지역 사투리를 심하게 쓰듯이, 고향을 떠나지 않는 휘파람새도 늘 같은 울음소리만 듣기 때문에 사투리가 점점 심해지는 것이에요. 암컷 역시 고향의 울음소리에 익숙해져 태어난 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고요. 만약 해안 지역에서 태어난 휘파람새가 다음 해에는 내륙으로 가고, 내륙에서 태어난 휘파람새가 다음 해에는 해안 지역에서 번식한다면 지금처럼 사투리가 심하지는 않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럼 우리나라에 사는 휘파람새들은 다른 지역 사투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실험 결과 서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투리가 심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충청북도에 사는 휘파람새에게 경기도에 사는 휘파람새 울음소리와 제주도에 사는 휘파람새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제주도 새의 울음소리에 더 격렬한 반응을 보였어요. 더 멀리 떨어져 사는 휘파람새의 울음소리에 더 강한 경계심을 보인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사투리가 점점 심해지면 먼 훗날 제주도에 사는 휘파람새와 경기도에 사는 휘파람새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질 가능성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