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체조 요정도 등 돌린 동유럽 최악의 독재자

입력 : 2016.08.04 03:51

[차우셰스쿠]

소련 등에 업고 루마니아 통치
비밀경찰 조직 세쿠리타테 만들어 300만대 도청기 설치·시민 학살
퇴진 원하는 루마니아 혁명 일어나 북한 망명 실패하고 사형당했죠

루마니아 지도

오는 5일(현지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하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려요. 올림픽 종목 중 여자 체조 종목에서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에 10점을 받은 선수가 있어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 출전한 루마니아 소녀 나디아 코마네치예요. 그는 완벽한 기술과 연기로 금메달을 3개나 땄고, '인간의 몸을 빌려 나타난 요정'이라는 찬사를 받았어요.

그런데 나디아 코마네치의 나라 루마니아에는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인물이 있었어요. 바로 희대의 공산주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18-1989)예요. '동유럽 최악의 독재자'로도 불리는 차우셰스쿠가 루마니아를 통치한 25년은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지옥 같은 시절'로 기억되고 있어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아내 엘레나 차우셰스쿠와 함께 기괴한 악행(惡行)을 벌였답니다.

◇전국 도청기 300만대 설치하고, 부인을 권력 2인자 삼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구두 공장 직공이었어요.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소련이 루마니아를 점령하자,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로서 소련군을 기쁘게 맞이했어요. 소련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차우셰스쿠를 루마니아 공산당의 간부로 임명해줬고요. 차우셰스쿠는 소련의 후원을 등에 업고 승진을 거듭했고 1964년 루마니아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어요.

1981년 겨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인민궁전에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엘레나 차우셰스쿠가 만찬을 즐기고 있어요. 당시 동유럽 최빈국이었던 루마니아에서 사과(사진 오른쪽 아래)는 매우 구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답니다.
1981년 겨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인민궁전에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엘레나 차우셰스쿠가 만찬을 즐기고 있어요. 당시 동유럽 최빈국이었던 루마니아에서 사과(사진 오른쪽 아래)는 매우 구하기 어려운 음식이었답니다. /AFP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었어요. 그 후 차우셰스쿠는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이라고 부르듯 자신을 '카르파티아 산맥의 천재'로 칭송하게 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아내 엘레나 차우셰스쿠를 '자애로운 어머니'라고 부르게 하며 권력 2위 자리에 임명했죠. 그때부터 루마니아에는 "차우셰스쿠가 북한에 다녀온 뒤로 기괴한 악행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말이 퍼졌다고 해요.

차우셰스쿠는 모든 루마니아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했어요. 고아 출신을 불러모아 자신의 친위대인 세쿠리타테(보안대)를 만들었어요. '차우셰스쿠의 아이들'이라고 불린 세쿠리타테 대원들은 사회주의 체제였던 루마니아에서 남들보다 높은 월급을 보장받고 최신식 무기를 지급받았다고 해요. 그 대가로 이들은 차우셰스쿠가 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모조리 죽였다고 해요.

세쿠리타테 대원들은 도청기 300만대를 루마니아 전역에 설치했지요. 당시 루마니아의 인구가 2000만명 정도였다고 하니 도청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 없었던 셈이에요. 심지어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집에서 부모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적어서 담임 선생님에게 제출하라"고 시켰어요. 가족끼리도 서로를 감시하게 했으니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참혹한 사회였죠.

◇루마니아 혁명으로 허망하게 몰락

1977년 루마니아 전역에 지진이 발생하자 차우셰스쿠는 "시가지를 재건축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사치스러운 '인민궁전'을 건설했어요. 전통 있는 문화재들을 마구 파괴한 뒤 34만~36만㎡ 넓이 땅에 거대한 궁전을 짓기 시작했는데, 잠실야구장 26개를 붙인 면적과 같다고 해요. 게다가 엘레나 차우셰스쿠가 "궁전 설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지은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면서 1984년부터 5년간 루마니아 국민총생산의 30%가 궁전 공사에 낭비됐어요.

부쿠레슈티에 있는 인민궁전.
부쿠레슈티에 있는 인민궁전. /블룸버그
이 궁전은 현재 루마니아 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데, 미국 펜타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공공 건물이랍니다.

이런 차우셰스쿠의 사치와 기괴한 악행으로 루마니아는 동유럽 최빈국으로 전락했어요. 1980년대 루마니아 주민들의 생활은 궁핍하기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루마니아의 체조 영웅 나디아 코마네치도 청소년 때 올림픽 금메달을 땄지만 성인이 된 후 궁핍한 생활을 하며 사회주의 체제를 선전하는 꼭두각시 노릇을 했다고 해요. 결국 나디아 코마네치는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망명했지요.

차우셰스쿠의 종말은 어떻게 왔을까요? 1989년 루마니아의 도시 '티미소아라'에서 차우셰스쿠는 대중 연설을 하게 되었어요. 들끓는 민심도 모르고 있던 차우셰스쿠는 연설에서 자화자찬만 늘어놓았어요. 그러자 화가 난 군중이 반(反)공산당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어요. 성난 군중 앞에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엘레나 차우셰스쿠 부부는 "시끄러워! 조용히 해!"라고 소리쳤어요. 이 모습은 그대로 루마니아 전국에 생중계로 방송되었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분노한 루마니아 국민들은 용기를 내어 차우셰스쿠의 퇴진을 요구하는 '루마니아 혁명'을 일으켰어요. 공산주의 정권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차우셰스쿠 부부는 북한으로 망명을 시도하다 실패해 재판에 넘겨졌어요.

1989년 성탄절인 12월 25일, 루마니아의 재판관들은 '시민들에 대한 대량학살과 국가 경제 파탄죄'로 차우셰스쿠 부부에게 만장일치로 사형을 선고했어요. 시민들의 혁명으로 법의 처단을 받은 차우셰스쿠의 종말은 독재자의 최후는 결코 좋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답니다.



김지영·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