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굴뚝으로 뜨거운 공기 내보내… 폭염에도 11℃ 유지
입력 : 2016.08.02 03:08
[조선시대 얼음 창고 '석빙고']
무거운 찬 공기는 가라앉고 더운 공기는 올라가는 성질 이용… 반지하 구조로 석빙고 만들었죠
얼음, 열 차단하는 짚에 싸서 보관… 화강암으로 담 쌓아 외부 열기 막아
최근 대전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석빙고의 구조를 참고해 지하 동굴식 저장 시설을 만들었다고 해요. 석빙고(石氷庫)란 돌로 만든 조선시대의 얼음 창고지요. 냉장고 없이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조상의 지혜가 녹아있어요. 이번에 만들어진 저장 시설도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석빙고 구조를 참고한 거예요. 조선시대에 얼음을 녹지 않게 보관할 수 있었던 석빙고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전기 없는 냉장고, 비밀은 굴뚝에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금의 서울 용산구에 있던 '서빙고'는 두께 약 12㎝, 둘레 약 180㎝ 크기인 얼음덩어리 13만4974개를 보관했던 조선 최대의 얼음 창고였대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얼음을 한꺼번에 녹지 않게 보관할 수 있었을까요? 바깥에서는 단순한 돌무덤처럼 보이는 석빙고는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는 과학 저장 시설이랍니다.
◇전기 없는 냉장고, 비밀은 굴뚝에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금의 서울 용산구에 있던 '서빙고'는 두께 약 12㎝, 둘레 약 180㎝ 크기인 얼음덩어리 13만4974개를 보관했던 조선 최대의 얼음 창고였대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얼음을 한꺼번에 녹지 않게 보관할 수 있었을까요? 바깥에서는 단순한 돌무덤처럼 보이는 석빙고는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는 과학 저장 시설이랍니다.
- ▲ /그래픽=안병현
석빙고에서는 공기의 순환이 잘 일어나지 않아요. 원래 자연 상태에서는 지표면에서 데워진 따뜻한 공기가 상승하고, 높은 해발고도에서 차갑게 식은 공기는 가라앉거든요. 이를 대류 현상이라고 부르지요. 석빙고의 경우 이미 차가운 공기가 아래에 있으니, 대류가 일어나지 않지요. 그러다 보니 가끔 석빙고를 관리하던 주채관들은 얼음에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했어요.
그 외에도 석빙고에는 여러 지혜가 더해졌어요. 얼음 틈새에는 작은 얼음 부스러기를 채우고, 짚이나 왕겨처럼 열 차단 효과가 높은 재료로 얼음을 싸서 보관해요. 석빙고 돌담은 화강암으로 쌓았는데,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암석은 외부의 뜨거운 공기를 막아주는 성질이 있어요. 또 지붕은 신라 고분처럼 둥근 모양으로 만들어 비가 내려도 물이 고이지 않아요. 전체적 모양은 더운 바람이 불어와도 쉽게 석빙고의 벽을 타고 넘어가도록 설계돼 있고요. 32도를 웃도는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도 석빙고 내부의 온도는 20도가량이 낮은 11.5도에 불과했다고 해요.
◇찬 공기가 돌 틈에 스며든 자연의 얼음골
그런데 우리나라 곳곳에는 석빙고 말고도 저절로 얼음이 어는 자연 냉장고가 있어요. 산기슭에 생기는 자연 얼음 지형인 '얼음골'이랍니다. 얼음골은 경남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경북 청송군 부동면 내룡리, 충북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강원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등에 있어요.
얼음골은 화산암이 경사가 급한 지형에 쌓여 만들어져요. 20~30㎝ 크기의 화산암이 깔려 있는 산비탈을 '너덜지대'라고 하는데, 겨울철에 차갑게 식은 공기가 무거워지면 너덜지대의 돌 틈으로 스며들어요. 얼음골에 스며든 찬 공기는 봄이 되고 여름이 되어도 변함없이 얼음장 같아요. 열 차단 효과가 뛰어난 화강암 덕분이지요. 너덜은 찬 공기가 더워지지 않게 유지해요. 그러다 무더위가 계속되면 더운 공기가 너덜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너덜 위쪽에 저장된 공기를 아래쪽으로 밀어내요. 이때 너덜 위쪽에서 밀려 내려온 찬 공기가 산비탈 아래에서 얼음을 얼게 하지요.
단순히 찬 공기가 노출된다고 얼음이 어는 것은 아니고, 너덜 지형의 위치가 북향일 때 얼음이 생겨요. 즉,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곳에 너덜 지형이 위치할 때 자연 얼음이 만들어지는 셈이에요.
◇서늘한 얼음굴
또 얼음골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얼음굴도 있어요. 산비탈에 위치한 바위계곡이 얼음골이라면 얼음굴은 경사진 산비탈 아래 지하 동굴이 외부와 연결된 통로가 있을 때 만들어져요. 겨울에는 차가운 공기가 지하 동굴 안으로 밀려와 굴 안을 식히고, 여름에는 석빙고처럼 굴 내부 공기가 차갑고 무거우니 공기의 이동이 없지요. 겨울철 굴 안으로 들어온 차가운 공기가 계속 머물러 있는 상태인 거죠.
얼음굴은 경기도 연천군의 풍혈, 양평군 단월면 석산리 소리산의 바람굴, 울릉도의 나리분지 또는 에어컨 굴이라고 하는 곳과 경북 의성군의 빙혈 등이 있어요. 특히 밀양 얼음굴은 조선시대 한의학을 집대성한 허준이 스승인 유의태의 몸을 해부하고 시신을 저장했던 장소로 전해지고 있어요.
얼음이 얼 정도는 아니지만 항상 10~15도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나오는 구멍이나 바위틈인 '풍혈'이라는 지형도 존재해요. 이렇게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에도 석빙고의 얼음으로 더위를 이기거나, 자연에 있는 냉각 지형을 찾아다니며 피서를 할 수 있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