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자유롭게 꿈꾸다, 경계 없는 '호기심 방'에서

입력 : 2016.07.29 03:06

[책거리 그림(책·책장·문구류 등을 그린 그림)]

책장·책 그린 '책거리'와 '책가도'
깃털·잉어·복숭아 함께 넣어 미래의 성공이나 행복 기원해
정조 대왕도 좋아했대요

책장에는 책과 더불어 각자가 특별히 좋아하거나 아끼는 물건이 놓여 있곤 합니다. 흔치 않은 책이나 물건을 방 하나에 가득 모아 두는 습관은 17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유럽에서는 이런 방을 '호기심의 방'이라 불렀는데, 이 호기심의 방에 들어가면 수집된 물건들이 각각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따라 과거로 가보기도 하고, 다른 먼 나라로 가보기도 하며 상상의 여행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하지요.

오늘은 '조선 궁중화·민화 걸작: 문자도·책거리' 전시회의 작품을 보며 우리 조상이 '호기심의 방'에 두었던 그림들을 살펴보도록 해요.

[작품1]‘책거리’, 19세기, 4폭 병풍 중 일부, 종이에 채색, 각 55 x 35㎝. [작품2]‘책거리’, 19세기, 8폭 병풍 중 일부, 종이에 채색, 각 49 x 28㎝. [작품3]‘책거리문자도’, 20세기 초, 8폭 병풍 중 일부, 종이에 채색, 각 95 x 32㎝. [작품4]‘동자문자도’, 19세기, 8폭 병풍 중 일부, 종이에 채색, 각 53.6 x 33.8㎝.
[작품1]‘책거리’, 19세기, 4폭 병풍 중 일부, 종이에 채색, 각 55 x 35㎝. [작품2]‘책거리’, 19세기, 8폭 병풍 중 일부, 종이에 채색, 각 49 x 28㎝. [작품3]‘책거리문자도’, 20세기 초, 8폭 병풍 중 일부, 종이에 채색, 각 95 x 32㎝. [작품4]‘동자문자도’, 19세기, 8폭 병풍 중 일부, 종이에 채색, 각 53.6 x 33.8㎝.
작품1을 보니 소년이 앉은 채로 책 읽기에 푹 빠져 있군요. 이 소년은 소인국에서 온 사람처럼 몸이 작아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몸이 작아져서 책장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보입니다. 옆에 놓인 먹과 벼루가 욕조처럼 크게 보여요. 그림의 위쪽으로 가지 두 개가 접시 위에 나란히 놓여 있고, 더 위로는 활짝 핀 모란꽃도 보입니다. 필통과 붓, 부채도 있지요.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런 그림을 여러 폭 그려 병풍으로 만든 뒤 호기심의 방에 세워 두곤 했어요. 이렇게 책이나 책장을 그린 그림을 '책가도' 또는 '책거리'라고 부릅니다.

조선의 임금 정조는 특히 이 '책가도'를 매우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정조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학문과 지식에도 뛰어나야 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인지 정조는 왕실의 도서관이던 '규장각'에서 책을 읽고 여러 학자와 나랏일을 의논했다고 합니다.

책거리에 그려져 있는 물건 중에는 성공이나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들이 있어요. 작품2는 19세기에 그려진 여덟 폭짜리 책거리 병풍 중 한 폭에 그려진 그림이에요. 책과 더불어 꽃병이 그려져 있네요. 그 안에 공작 깃털 2개와 산호가지가 꽂혀 있는 게 보이지요? 그 어떤 새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공작은 자부심이 대단할 거예요. 그래서 공작 깃털은 '누구나 선망하는 명예로운 위치에 오른 사람'을 상징합니다. 깃털과 함께 병에 꽂혀 있는 산호는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가야 구할 수 있는 진귀한 보물입니다. 즉 그림 속 산호는 "아무나 맘껏 쉽게 닿기 어려운 산호처럼 귀중한 지위에 오르라"는 기원의 뜻을 담고 있지요.

때로는 글자가 책 더미를 대신하는 책거리도 있어요. 사람은 글을 익히면서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고 비로소 좋고 나쁜 것, 옳고 그른 것을 알 수 있게 되지요. 작품3을 보세요. 이 그림 아래에는 '효(孝)'라는 한문이 쓰여 있는데, 그 글씨 안에 잉어 한 마리가 들어 있어요. 왜 효도를 뜻하는 '효'에 잉어가 들어가 있을까요?

옛날 중국에 왕상이라는 유명한 효자가 살았어요. 그는 한겨울에 꽁꽁 언 강을 녹여서라도 살아 있는 잉어를 잡아 어머니께 갖다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옷을 벗고 맨몸으로 차디찬 얼음 위에 누워 얼음을 녹이려고 했답니다. 정말 대단한 효자지요?

그러자 하늘이 왕상의 효심을 어여삐 여겼는지, 잉어가 스스로 얼음을 깨고 불쑥 튀어나와 왕상에게 잡혀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잉어는 효도를 상징하는 동물로 전해졌다고 해요. '효'라는 글씨 속에 잉어 이야기까지 들어 있으니 마치 그림책을 보는 것 같지 않나요?

절묘하게 글씨로도 보이고 그림으로도 보이는 작품4를 보세요. 특이한 모양의 돌이 글자 형태를 이루고 있어요. 생김이 복잡하여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수복(壽福: 장수와 행복)'이라고 쓰여 있어요.

글자 주변으로는 여러 사내아이가 모여 있는데, 이는 자식이 많고 살림이 넉넉하기를 기원하는 것이에요. '수'자 위에 자라 있는 나무는 복숭아나무예요. 신선을 따라다니는 아이가 들고 다니는 과일이 복숭아입니다. 이걸 받아먹으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산다고 전해지지요.

'복'자 위로 자라는 나무는 그 열매가 부처의 손가락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불수감'이라고 불러요. 불수감의 열매는 손으로 무언가를 쥐어 감싸는 듯한 모양이라, 재산을 손으로 모아 부자로 살기를 바란다는 뜻을 지니고 있고요.

영화 '인터스텔라'를 본 적 있나요?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책장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다른 차원에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글자와 책은 지식을 깨닫고 배우는 수단이에요. 우리는 글로 쓴 책을 보면서 다른 세상을 만나고, 상상하며 지식을 쌓아갑니다. 어린이 여러분도 책장에 있는 책을 하나하나씩 꺼내어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달라져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이주은 건국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