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임경업 장군의 삶에 허구 더해 백성의 분한 마음 달래주다

입력 : 2016.07.28 03:06

임경업전

조선시대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놓고 책을 읽어 주는 전기수(傳奇叟)란 직업이 있었어요. 청중을 불러 모아 재미나게 책을 읽어 주고 돈을 받았는데, 1700년대 백성들 사이에서 전기수가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해요.

그런데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시문집 '아정유고'에 따르면 1790년 8월 10일 한양 종로의 한 담배 가게 앞에서 소설 '임경업전'을 낭독하던 한 전기수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해요. 전기수가 간신 김자점이 충신 임경업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죽게 만드는 대목을 들려주는 순간 한 청중이 "네가 김자점이더냐?" 라고 분노하며 그 전기수를 죽인 거예요.

이렇게 책을 읽기만 한 전기수가 변을 당할 정도로 조선 백성은 임경업 장군을 '우리 민족의 수호자'라고 여기며 사랑하고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조선시대의 명장 임경업을 다룬 역사소설 '임경업전'을 읽어 보도록 해요.

[고전 이야기] 임경업 장군의 삶에 허구 더해 백성의 분한 마음 달래주다
/그림=이병익
실제 임경업(1594~1646)은 인조 임금 때 뛰어난 장군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었어요. '임경업전'은 임경업의 일대기를 다룬 작자 미상 소설로 '허구'가 많이 더해진 작품이에요. 소설 속 임경업은 열여덟 살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관리로 임명돼요. 경북 문경에 있는 천마산성을 재건하라는 명을 받은 임경업은 8~9년은 걸릴 재건 사업을 불과 일 년 만에 완수하며 인조의 총애를 받게 돼요.

어디 이뿐인가요? 호국(胡國·'북방의 오랑캐 나라'라는 뜻으로 당시 후금을 낮추어 부른 말)이 압록강변에 진을 치고 조선을 쳐들어와 정묘호란을 일으켰을 때, 의주의 장군으로 있던 임경업은 미리 잘 훈련시킨 군사들을 이끌고 호국의 침입을 막아내요.

호국은 더 힘을 키워 청나라로 이름을 바꾼 후 또다시 조선을 침략하는 병자호란을 일으켜요. 하지만 임경업을 두려워한 청나라 군대는 그가 있던 의주를 피해 동해안 쪽으로 멀리 돌아 한양을 공격해요.

이후 임경업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조선으로 돌아오게 하여 조선 왕실의 대를 잇도록 만든 영웅으로 그려진답니다. 소설 속 임경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능한 신하들이 판치는 당대 현실에서도 묵묵히 나라와 백성을 지킨 인물로 묘사되어 있어요.

실제로 임경업은 당시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에도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뛰어난 장수였다고 해요. 하지만 소설의 여러 부분은 실제 역사와 많이 달라요. 소설에서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임경업 장군이 있는 의주를 피해서 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의주를 거쳐 한양을 공격했어요. 임경업이 소현세자를 조선에 데려오지도 않았고요. 김자점이 임경업을 처형하라고 인조에게 아뢴 것은 사실이지만, 그전까지 김자점은 임경업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였다고 해요.

그럼 '임경업전'에서는 왜 이런 허구들을 소설에 넣었던 것일까요? 학자들은 '임경업전'이 무능했던 조선 조정에 대한 백성들의 울분을 반영한 작품이라고 말해요. 인조가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한 병자호란은 당시 백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어요. '만주에 살았던 야만족'이라 여긴 청나라 군대가 온 국토를 휩쓸었고, 세자까지 볼모로 잡혀갔기 때문이었죠.

당시 백성들은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한 무능한 신하들이 이런 굴욕을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임경업전'은 허구를 더해 명성 높던 임경업을 '민족과 나라를 지킨 수호자'로 더욱 부각시켜 실망감에 빠진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던 것이에요.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임경업전을 읽으며 조선 백성들이 느꼈을 통쾌함을 상상해 보는 건 어떤가요? 책 속의 임경업과 실제의 임경업은 어떻게 다른 지도 비교해 보세요.

정다운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