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종교 이야기] 히틀러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평화의 메시지 전했어요
아우슈비츠의 가톨릭 성인(聖人)
죄 없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희생시킨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기 전까지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바로 '십자가의 성녀' 테레사 베네딕타(1891~1942) 수녀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1894~1941) 신부예요. 가톨릭에서는 이 두 사람을 성인(聖人)으로 추대해 공경하고 있어요.
독일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테레사 베네딕타 수녀의 본명은 에디트 슈타인이에요. 무신론자로서 철학을 공부하던 슈타인은 1차 세계대전에서 남편을 잃은 가톨릭 신자를 남편 친구들이 위로하는 모습을 보며 신의 존재를 느끼고 가톨릭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답니다. 서른한 살 때 세례를 받은 후 수녀회 여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가톨릭 철학을 연구했어요.
- ▲ 테레사 베네딕타(왼쪽 사진) 수녀와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오른쪽 사진) 신부는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죄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려 했어요. /위키피디아
1933년 수녀회에 들어가 '베네딕타 수녀'가 된 그는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교황에게 "유대인을 위한 문건을 발표해달라"고 간청했어요. 이후에도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 나간 베네딕타 수녀는 1942년 8월 2일 결국 나치 비밀경찰에 체포되고 말았어요. 닷새 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옮겨진 베네딕타 수녀는 8월 9일 수용소 안 가스실에서 숨졌답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베네딕타 수녀는 수용소 안에서도 평온한 자세로 아이들과 여성·장애인을 돌보았고,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성인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는 폴란드 출신으로 이탈리아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했어요. 신부가 되어 귀국한 그는 '성모의 기사'라는 잡지를 출간하고 '성모의 마을'이라는 종교 공동체를 만들었어요. 폴란드 국민은 사랑과 자비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콜베 신부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해요.
하지만 콜베 신부도 나치의 탄압을 받는 유대인 2000여 명을 수도원에 숨겨주었다가 1941년 독일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히고 말았어요. 수용소에서 콜베 신부는 남들보다 더 혹독한 강제 노동을 강요당했지만, 다른 수용자들을 위한 설교와 고해성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5개월 정도가 지난 1941년 7월 한 사람이 수용소를 탈출하는 일이 일어났어요.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한 명이 도망치면 도망친 사람과 같은 감방을 쓴 열 명을 모두 굶겨 죽이는 잔인한 규칙이 있었어요. 이때 콜베 신부는 "열 명 가운데 한 사람을 대신해 죽겠다"고 자청해 지하 감옥에 갇혔어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콜베 신부는 다른 수용자들과 손을 맞잡고 계속 기도했다고 해요. 그렇게 3주가 지났고 콜베 신부와 세 수용자가 살아남았어요. 하지만 8월 14일, 콜베 신부는 나치의 독극물 주사를 맞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성인이 세상을 떠난 날을 천국에 들어간 날로 기념하고 있어요. 베네딕타 수녀와 콜베 신부가 희생된 8월 9일과 8월 14일도 기념일로 지정돼 있어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두 성인이 실천한 고귀한 희생은 지금도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