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식물] 도토리부터 땔감까지… '진짜' 아낌없이 주는 나무

입력 : 2016.07.25 03:38

참나무

참나무는 참 재미있는 식물입니다. 우리나라 산 어디서든 참나무를 쉽게 볼 수 있지만, 식물도감에는 참나무란 나무는 없어요. 참나무는 '참나무과'의 '참나무속'에 해당하는 나무를 통틀어 일컫는 이름일 뿐, 한 나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참나무에 속하는 대표적인 나무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등 여섯 가지에요. 모두 도토리가 맺히는 나무라 '도토리나무'라고도 부르지요.

참나무란 이름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어요. 참나무의 '참'은 '진짜'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수만 가지의 나무가 있는데, 왜 하필 참나무과 나무들을 '진짜 나무'라 부르게 되었을까요?

사실 참나무 여섯 종을 아무리 살펴봐도 '진짜 나무'에 걸맞은 모습을 찾기 어려워요.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도 않고, 맛있는 열매를 맺지도 않고, 잎과 가지가 예쁘지도 않아요. 그렇다고 은행나무처럼 수억 년을 견딘 원시 식물도 아니에요.

참나무는 이렇게 산에 올라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나무지만 그 종류는 아주 다양해요.
참나무는 이렇게 산에 올라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나무지만 그 종류는 아주 다양해요. /박중환
그럼에도 참나무가 '진짜 나무'의 명성을 얻게 된 건 각별한 쓰임새가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옛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고 난방을 할 때 필요한 땔감으로 참나무가 나무 중에서 으뜸이었다고 해요. 참나무는 나무치고는 아주 단단하지는 않아서 도끼질하기가 쉽고, 잘 마르는 성질이 있어 불이 잘 붙어요. 그리고 속성활엽수종인 참나무는 잎이 많은 데다가 엄청 빨리 자라요. 몇 년 새 쑥쑥 자라 햇빛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주변에 있는 소나무가 참나무 그늘에 가려 말라죽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매년 가지치기와 솎아내기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참나무는 땔감에 쓸 나무로 제격이었지요.

서양에서도 참나무는 포도주나 위스키 생산에 매우 요긴하게 사용해요. 술통을 참나무 목재인 오크(Oak)로, 술병 마개에 사용되는 코르크는 참나무 껍질로 만든다고 해요. 참나무의 학명인 쿠에르쿠스(Quercus) 역시 라틴어로 '진짜'란 뜻인 것을 보면 참나무는 동·서양에서 두루 '진짜 나무'로 여겨졌던 것이 틀림없어요.

참나무에 맺히는 도토리는 보릿고개 때에는 식량으로, 출출할 때에는 간식거리인 묵을 만들 수도 있었어요. 그 맛이 꿀맛과 같다고 해서 '꿀밤'이란 별명도 얻었답니다.

재미난 건 도토리는 과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씨앗이에요. 사과처럼 열매 가운데에 있는 씨앗을 맛있는 과육이 감싸는 것과 다르죠.

맛있는 과육이 없는 도토리를 누가 좋아할까요? 여러분은 망설임 없이 "다람쥐"라고 답하겠지만 아니에요. 사실은 멧돼지가 도토리를 가장 좋아해요. 가을이면 멧돼지는 참나무 밑동을 머리로 들이받은 뒤 우수수 떨어진 도토리를 먹어 치웁니다. 그리고 멧돼지는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며 제대로 씹지 않고 삼킨 도토리를 똥과 함께 배설하는데, 이렇게 흩어진 도토리는 이듬해 봄 새싹을 돋울 수 있어요. '도토리'란 말도 돼지의 옛말인 '돋'에서 유래했으니 둘 사이가 얼마나 가까운지 짐작이 되지요? '향약집성방'이란 옛 의약서에는 도토리를 '돼지의 밤'이란 뜻의 저의율(猪矣栗)로 기록하기도 했답니다.

참나무 입장에서 다람쥐는 그리 달갑게 여겨지는 동물이 아니에요. 다람쥐는 도토리를 날카로운 앞니로 갉아먹는 통에 씨앗이 죽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람쥐는 겨울 양식으로 숨겨놓은 도토리 100개 중 15개 정도는 어디다 숨겨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대요. 이런 다람쥐의 나쁜 기억력 덕분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도토리는 이듬해 봄 새싹을 틔우게 된답니다.

박중환·식물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