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터키 민족의 아버지 케말 파샤, '라이시테'를 외치다

입력 : 2016.07.21 03:09

[터키 쿠데타와 세속주의]

'정교일치' 오스만 제국 쇠퇴하자 정치·종교 분리된 나라 꿈꿔… 1923년 지금의 터키 공화국 수립
최근 쿠데타 일으킨 터키 군부 "세속주의 지키자" 주장했대요

지난 15일 터키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을 몰아내려는 쿠데타가 일어났어요. 터키 군부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의 세속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군대를 일으켰지만 6시간 만에 시민과 정부군에게 진압당했다고 해요. 세속주의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종교가 정치나 사회, 교육 등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예요. 프랑스어로는 '라이시테'라고도 하죠.

에르도안 대통령은 세속주의와 반대되는 이슬람주의자로 알려졌어요.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슬람 학교를 늘리고 중학교에서도 이슬람 교육을 강화하자 터키에서는 "세속주의가 무너진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답니다. 오늘은 세속주의를 바탕으로 터키 공화국을 세운 '터키 공화국의 아버지' 케말 파샤(Kemal Pasha·1881~1938)에 대해 알아보아요.

◇술탄이 통치한 오스만 제국의 쇠락

터키 공화국의 전신은 오스만튀르크족이 1300년경에 세운 오스만 제국(오스만튀르크)이에요. 오스만 제국은 아랍어로 권력을 뜻하는 '술탄'이 통치했다고 해요.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는 종교적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가 나뉘어 있지요? 하지만 술탄은 오스만 제국의 왕과 이슬람교의 최고 지도자를 겸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이 합쳐진 것을 '정교일치'라고 해요. '정교일치'에 따라 오스만 제국의 고위 관료는 모두 이슬람 성직자로 임명됐고, 나라의 법도 모두 이슬람 교리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해요.

1926년 케말 파샤가 이스탄불에 있는 학교를 방문하고 있어요.
1926년 케말 파샤가 이스탄불에 있는 학교를 방문하고 있어요. 케말 파샤는 이슬람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로 터키를 개혁한 지도자예요. /Getty Images 이매진스
오스만 제국은 16세기 북아프리카와 유럽 일부, 서남아시아를 거느리는 대제국을 이루기도 했어요. 하지만 자만심에 빠지면서 17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답니다.

반면 서유럽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힘을 키워 17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을 침공하기 시작했어요. 서유럽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하자 오스만 제국 안에서도 "서유럽의 힘을 따라잡으려면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을 분립하고 군대도 서유럽식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개혁파가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술탄과 성직자들은 이슬람교와 맞지 않는 서유럽식 개혁을 꺼리면서 오스만 제국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됐답니다.

◇애국심으로 개혁 운동에 나선 케말 파샤

케말 파샤는 이렇게 개혁을 반대하는 술탄과 개혁파의 갈등이 한창이던 1881년에 태어났어요. 사관학교에 입학해 서유럽의 문물을 공부한 케말 파샤는 '오스만 제국이 강해지려면 정치와 종교를 나누는 세속주의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그래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개혁파 군인들과 함께 비밀 조직인 '청년 튀르크당'에 들어가 개혁 운동에 나서게 되었답니다.

당시 술탄인 압둘 하미드 2세는 청년 튀르크당을 가혹하게 탄압했지만, 케말 파샤와 청년 튀르크당은 굴하지 않고 개혁 운동을 펼치며 국민의 지지를 조금씩 얻어 나갔어요. 1908년 케말 파샤와 청년 튀르크당은 마침내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을 점령하고 압둘 하미드 2세를 술탄에서 퇴위시켰어요. 대신 그의 동생 메흐메트 5세를 술탄으로 앉혔답니다. 명성을 쌓은 케말 파샤는 1차 세계 대전 도중인 1915년 갈리폴리 반도를 공격한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물리치면서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게 되었답니다.

◇'터키의 아버지', 세속주의를 선언하다

터키
하지만 이런 케말 파샤의 활약도 오스만 제국의 쇠락을 막을 수 없었어요. 갈리폴리 전투에서의 승리도 1차 세계 대전의 흐름을 바꾸지 못했고, 오스만 제국은 1918년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했어요. 이어 1919년에는 그리스와 아르메니아가 침공하면서 오스만 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답니다.

결국 케말 파샤는 "세속주의를 바탕으로 터키 공화국을 세워야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선언해요. 술탄이 이끄는 오스만 제국을 없애고 터키 공화국을 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죠. 술탄은 분노했지만, 국민적 영웅이 된 케말 파샤는 거리낌 없이 지지자들과 함께 터키 공화국을 수립했어요. 케말 파샤가 공화국 군대를 이끌고 그리스와 아르메니아의 공격을 막아내자 터키 국민은 모두 케말 파샤를 지지하게 되었답니다.

의회로부터 '터키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Ataturk) 칭호를 받은 케말 파샤는 1921년 세속주의 원칙을 담은 공화국 헌법을 제정해 선포하고 1922년 술탄제를 폐지한다는 개혁안을 통과시켜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고, 종교가 정치와 사회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세속주의가 터키 공화국의 대원칙으로 자리 잡은 것이죠.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인 터키는 이 원칙에 따라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지 않고 있어요. 다른 이슬람주의 국가와 달리 여성에게도 남성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인정하고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답니다.

1923년 케말 파샤는 터키 공화국 수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어요. 대통령이 된 케말 파샤는 이후 세속주의를 부정하는 고위 성직자나 정치 지도자들을 잔인하게 숙청하고, 정부에 반대하는 언론을 폐간해버리는 독재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케말 파샤는 세속주의 공화국을 세운 업적으로 오늘날에도 '터키 공화국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며 터키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답니다.


기획·구성=배준용 기자 |
기획·구성=김지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