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인물] 조선 중기 천재적 화가… 풀·곤충 그린 초충도 등 30여 점 남아

입력 : 2016.07.18 03:40

신사임당

신사임당은 조선 중기인 1504년 강원도 강릉의 오죽헌(보물 제165호)에서 신명화의 둘째 딸로 태어났어요. 원래 이름은 신인선이랍니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로 유명한 신사임당은 사실 조선 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뛰어난 예술가였어요. 오늘은 천재적 화가로서 신사임당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도록 해요.

신사임당은 22세에 이원수와 결혼해 한양으로 가기 전 줄곧 외가인 오죽헌에 살았어요. 이때 외할아버지 이사온과 외할머니 최씨 부인, 어머니 이씨 부인으로부터 사서삼경과 서예, 그림을 배웠다고 해요. 이때부터 신사임당은 예술가로서의 천재성을 보였다고 해요. 신사임당은 일곱 살 때 외할아버지가 가져다준 조선 전기의 뛰어난 화가인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똑같이 그려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답니다. 자라면서 그렸던 포도 그림이 특히 유명했었다고 전해져요. '신사임당의 포도화와 산수화는 아주 뛰어나서 안견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라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랍니다. 5만원권 지폐를 자세히 보면 신사임당과 함께 신사임당이 그린 포도 그림이 들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신사임당의 그림 실력이 금세 소문나면서 당시 조정의 높은 관리들까지 "신사임당의 그림은 하늘의 능력을 빼앗아 이룬 신필이다"라든지 "천지의 이치를 깨달은 표현"이라는 극찬을 남겼어요.

현모양처이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유명한 신사임당(왼쪽)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화가였답니다. 오른쪽 그림은 신사임당이 식물과 곤충을 함께 그린 초충도예요.
현모양처이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유명한 신사임당(왼쪽)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뛰어난 화가였답니다. 오른쪽 그림은 신사임당이 식물과 곤충을 함께 그린 초충도예요. /위키피디아

훗날 숙종 임금도 신사임당이 남긴 초충도를 보고 "풀, 벌레 모두 아주 똑같다. 부인의 그림이 참으로 묘하다"는 칭찬을 했다고 해요.

아쉽게도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신사임당의 작품은 시 2편, 서예 9점, 풀과 곤충을 그린 초충도 등 30여 점 정도랍니다. 신사임당의 그림은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요? 당시 화가들은 산과 강을 그릴 때 '떠오른 생각을 그린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산과 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 그림에서 충성, 정의, 예절과 같은 가치가 잘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과장이 심한 비현실적인 그림들을 그렸답니다. 하지만 신사임당의 '월하고주도'를 보면 자연에 가까운, 그것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는걸 알 수 있어요.

특히 예술가로서 신사임당의 특별한 창의성은 풀과 곤충을 그린 초충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요. 그림의 소재부터 독특했어요. 당시 화가들은 화려하거나 향기가 강한 장미, 모란, 작약 등을 그리거나 호랑이, 소, 고양이 같은 동물을 그렸어요. 그런데 신사임당은 초충도에서 개달개비, 물봉선화, 쑥부쟁이 등 소박한 꽃을 그렸고, 들쥐, 도마뱀, 쇠똥벌레 등 소소한 동물과 곤충을 그렸어요. 오이, 가지 등 채소를 그리기도 했답니다.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과 정서적인 교감을 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소재들을 그린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림을 그릴 때에는 아주 단순하게 대상을 배치했는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그림의 품격을 끌어올려 준다는 평가를 받아요. 신사임당은 초충도를 그릴 때 중앙에 식물을 그리고 땅에 해당하는 부분을 3대1 정도의 비율로 나누어 식물 주위에 동물과 곤충들을 그려 넣었어요. 땅 위에 기어가고 있는 개미까지 그려 넣은 것을 보면 신사임당은 세심한 관찰력을 가졌던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답니다.

오랫동안 신사임당은 지혜로운 어머니이자 좋은 아내로 널리 알려지면서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부분이 있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창조적 도전 정신을 가지고 한국인의 정서와 창의성이 담긴 훌륭한 작품을 남긴 화가로 평가받고 있답니다.

 

박영대 전 문화재청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