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동심 잃지 않은 추상화의 대가… 종이에 화려함을 수놓다

입력 : 2016.07.15 03:07

[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

대상의 내면 경쾌하게 그린 예술가… 선·도형·색채 자유롭게 활용해
두 가지 색으로 표현한 자연풍경·무용수의 우아한 발레 동작… 아름다움과 감동 주는 걸작이에요

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1893~1983)는 현대미술, 특히 추상화의 거장이에요. 추상화는 인물, 자연 풍경, 사물 등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 숨겨진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특성을 뽑아내 표현하는 그림이에요. 사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생각이나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하지요.

기본적 요소들의 아름다운 조화

작품1은 한눈에도 단순한 그림으로 보이죠?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림의 위아래를 나누고 하양과 빨강, 두 가지 색만을 칠했어요. 오른쪽 위에는 작은 검정 타원 두 개, 파랑 얼룩을 그렸고요. 무엇을 그린 그림일까요? 바로 자연이랍니다. 미로는 자연 풍경이 겉으로는 복잡하게 보여도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하늘과 땅 두 가지일 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평선을 경계로 하늘에는 하얀색, 땅에는 빨간색을 칠한 거지요. 검은색 타원과 파란색 얼룩은 해와 달, 별을 상징해요. 이 그림은 현실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린 풍경화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줘요. 선과 도형 그리고 색채의 조화만으로도 생동감, 아름다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추상화가 가진 매력이에요.

작품1~4
작품2는 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에 갔다 온 미로가 예술적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이에요. 구엘 공원에는 물결 모양 벤치, 구름 모양 다리, 도롱뇽 모양 분수대가 있지요. 이러한 건축물은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던 미로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어요. 이 그림에서 커다랗게 그려진 숫자 '8' 모양은 개미를 상징해요. 그 오른쪽에 있는 부메랑 모양은 초승달을 상징하고요. 빨강, 파랑, 노랑, 초록, 검정으로 칠한 바둑판 같은 바닥은 구엘 공원의 모자이크 타일을 표현한 거예요.

미로는 기호와 상징으로 그림을 그려 찬사받은 현대화가예요. 개미 안에는 빨간색의 부리부리한 눈과 알쏭달쏭한 기호가 그려져 있어요. 전문가들은 그림 속에 그려진 커다란 눈이 태양, 영혼, 깨달음 등을 상징한다고 해요.

음악처럼 경쾌하게, 놀이처럼 즐겁게

미로 화풍의 또 다른 특징으로 음악적 리듬감과 율동감을 꼽을 수 있어요. 작품3을 약간 상상력을 가미해 바라보면, 하얀 발레복을 입은 무용수가 감미로운 음악에 맞추어 우아한 발레 동작을 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어요. 배경에 자유롭게 떠다니는 여러 기호를 찾아보세요. 마치 오선지를 타고 흐르는 경쾌한 음표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선, 형태, 기호, 색채를 화면에 조화롭게 배치한 덕분에, 그림과 춤 그리고 음악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죠.

작품4는 미로가 종이로 만든 장난감 새입니다. 이 작품에는 강렬한 원색을 즐겨 사용하는 그의 화풍이 잘 나타나 있어요. 화려한 색깔, 풍성한 깃털, 동그란 눈동자, 새초롬한 부리, 귀여운 녹색 꼬리에서 마치 진짜 살아 있는 새처럼 생기가 느껴져요. 미로처럼 유명한 예술가가 장난감을 만들었다니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미로는 세계적 거장이 된 후에도 "진정한 예술가는 어른이 되어서도 천진난만한 아이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믿었답니다. 로버트·미셸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베스트셀러 '생각의 탄생'(1999)에도 "창조적인 생각은 놀이에서 나온다"는 구절이 나오지요.

지금까지 추상, 기호와 상징, 리듬감과 율동감, 놀이 등 네 가지 키워드로 스페인 화가 호안 미로의 작품을 감상해보았어요. 키워드와 중심 소재에 집중하는 감상법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비교하는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작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답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