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동물 이야기] 자기 몸무게 반만큼 해충 먹는 '대식가'예요

입력 : 2016.07.06 03:11

[박쥐]

박쥐, 머리 뒤에서 초음파 생성
사람이 못 듣는 높은 소리 뿜어내 수㎜ 크기 벌레를 귀로 식별
귀가 얼굴의 반 정도만큼 발달해 0.1초의 오차도 없이 먹잇감 사냥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학자들이 지난 2008년 영국 런던에 모여 '지구 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물'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어요. 이 과학자들은 우선 영장류와 박쥐, 벌, 균류, 플랑크톤 등 5종(種) 생물을 '중요한 생물'로 꼽았답니다. 그러고선 왜 지구에서 이 생물들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지 의견을 주고받았어요.

"영장류가 과일 등을 따 먹고 배설하는 방식으로 씨를 퍼뜨려야 지구의 허파인 열대우림이 보존된다" "균(菌)이 없으면 식물이 흙에서 영양분과 수분을 섭취할 수 없다"는 등 다양한 이유가 거론됐지요. 벌은 꽃가루를 퍼뜨려 열매를 맺게 한다는 이유로, 플랑크톤은 수십억 마리에 이르는 해양생물의 먹이라는 이유가 꼽혔답니다. 그런데 박쥐는 도대체 어떤 일을 하기에 지구에서 반드시 필요한 생물로 꼽혔는지, 박쥐의 정체를 알아볼까요?

밤하늘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동물

박쥐는 낮에 벌레를 잡아먹는 새와 교대해 밤에 해충(害蟲)을 잡아먹고 산답니다. 경제적 가치로 따지면 "수십억원어치 살충제를 뿌리는 효과와 맞먹는다"는 분석이 런던 회의에서 제시됐지요. 국내에 사는 박쥐도 매일 밤새 모기와 나방 등을 자기 몸무게(16~18g)의 절반 정도나 잡아먹어 '대식가'라는 별명이 붙었지요. 열대지방에 사는 박쥐들은 망고나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의 꽃가루를 수정해 열매를 맺도록 돕는 역할까지 한답니다.

몸길이 6~7㎝·무게 18~20g의 관박쥐가 나방을 사냥하고 있어요. 관박쥐는 직경 4㎜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초음파 능력을 가졌어요.
몸길이 6~7㎝·무게 18~20g의 관박쥐가 나방을 사냥하고 있어요. 관박쥐는 직경 4㎜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초음파 능력을 가졌어요. /토픽이미지

'밤하늘의 곡예사'라고도 불리는 박쥐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장애물을 피하고 먹이를 잡을 수 있어요. 매·독수리·뱀 같은 적들이 어디에서 다가오는지 완벽하게 분간할 수도 있지요. 박쥐의 어떤 능력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이처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까요?

약 200년 전 이탈리아의 동물학자 스팔라차니 박사는 박쥐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했어요. 우선 박쥐의 두 눈을 가린 뒤 컴컴한 방에서 날게 했는데, 박쥐는 장애물을 거뜬하게 잘 피했고, 모기 같은 벌레들도 아주 잘 사냥했답니다. 이번엔 박쥐의 두 귀를 막아 소리를 듣지 못하게 했어요. 그랬더니 정반대 결과가 나왔어요. 먹이를 잡지 못한 것은 물론 장애물도 피하지 못해 날자마자 곧바로 벽에 부딪혔던 거지요. 박쥐의 눈은 대단히 작고 빛을 겨우 느낄 정도의 시력만 가지고 있는 반면, 중요한 기능을 가진 귀는 얼굴의 반 정도 크기나 돼요. 자신의 생존 능력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 귀를 발달시킨 것이지요. "박쥐의 귀를 차단하면 제대로 날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스팔라차니 박사의 발견은 당시로써는 아주 획기적인 발견이었답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는 과일박쥐가 무화과를 먹고 있어요(왼쪽 사진, 몸길이 5~10㎝·무게 10~85g). 지난 2015년 충북 진천군의 한 폐금광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452호인 붉은박쥐가 발견됐어요.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현장조사팀이 붉은박쥐의 입에 면봉을 대 유전자를 채취하고 있어요(오른쪽 사진, 몸길이 4.3~5.7㎝·무게 15g).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는 과일박쥐가 무화과를 먹고 있어요(왼쪽 사진, 몸길이 5~10㎝·무게 10~85g). 지난 2015년 충북 진천군의 한 폐금광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452호인 붉은박쥐가 발견됐어요.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현장조사팀이 붉은박쥐의 입에 면봉을 대 유전자를 채취하고 있어요(오른쪽 사진, 몸길이 4.3~5.7㎝·무게 15g). /토픽이미지·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이후 현대과학에 의해 박쥐가 소리로 사물을 파악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지요. 머리 뒷부분에서 초음파(超音波·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매우 높은 주파수를 가진 소리)를 만들어 입이나 코를 통해 발사한 뒤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어 오는 메아리를 귀로 받아 분석하는 것이지요. 주파수가 높을수록 작은 물체에 부딪혔을 때 잘 반사돼 되돌아온답니다. 박쥐가 발사하는 초음파는 주파수가 높아 크기가 1.7㎝보다 작은 물체도 선명히 식별할 수 있어요. 심지어 숲속에서 벌레를 사냥하는 관박쥐는 주파수가 매우 높아 수㎜에 불과한 모기 같은 아주 작은 벌레도 잘 잡아먹지요. 관박쥐보다 낮은 주파수를 내는 집박쥐의 경우 나방 같은 조금 더 큰 벌레를 잘 잡아먹는 것도 바로 주파수 때문이랍니다.

0.1초의 오차도 없이 먹잇감 추적해

박쥐는 레이더처럼 먹잇감뿐 아니라 모든 주변 정보를 소리로 탐지해요. 임신부 태아 등을 탐지하는 초음파 의료기계는 바로 이 같은 박쥐의 능력을 인간이 모방한 것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어두운 밤이 되면 박쥐는 자기가 살고 있는 굴이나 지붕 기와 밑에서 나와 먹이를 찾아 나섭니다. 만약 벌레를 발견하면 박쥐는 계속 초음파를 보냅니다. 초음파가 벌레에 부딪혀 다시 박쥐의 귀에 전달되면 박쥐는 벌레에 부딪혀 들리는 메아리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있던 나뭇가지와 나뭇잎들도 한꺼번에 메아리로 듣게 돼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때 박쥐의 감각기관에서는 먹잇감인 벌레의 모양은 선명하게 들리는 반면 그 주위의 배경인 나뭇가지와 잎들은 희미하게 들린답니다. 사냥할 먹이의 모양과 크기, 위치 등을 정확하게 판단한 뒤 박쥐가 날쌔게 공격 대상으로 돌진할 수 있는 건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랍니다. 박쥐가 장착한 고성능 레이더의 판단이 단 0.1초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 박쥐는 어김없이 먹이 사냥에 성공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멋진 박쥐들이 점차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고 있어요. 사람들이 숲에 농약을 많이 사용하자, 박쥐의 먹이가 되는 모기와 나방이 줄어들어 박쥐들의 생명도 위협받게 된 거예요. 유럽과 미국에서는 박쥐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박쥐 연구자가 거의 없는 형편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박쥐는 유럽과 북미에서보다 더 빨리 사라져가고 있답니다. 박쥐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박시룡·한국교원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