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 이야기] 한국 풍습·정서 잘 녹여내, 독일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렸어요

입력 : 2016.06.30 03:10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해 화제가 됐지요. 그런데 70년 전 독일에서 한국 출신 작가가 쓴 책이 큰 인기를 얻었던 적이 있답니다. 그 작품은 바로 1946년 이미륵이 독일에서 독일어로 발표한 책 '압록강은 흐른다'예요. 당시 "올해 독일어로 쓰인 가장 훌륭한 책"으로 선정되며 독일 중·고등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영어와 우리말로 번역되었지요. 이 작품의 어떤 점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압록강은 흐른다'는 작가 이미륵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인 소설이랍니다. 작가를 투영한 주인공 '나'는 1900년대 조선에 사는 어린아이예요. 사촌과 함께 뒤뜰에서 알몸으로 뛰놀고, 잠자리를 잡고 꿀을 훔쳐 먹다 들켜서 혼나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죠. '중용''맹자' 같은 고전도 읽고, 아버지의 권유로 신식 학교에도 입학해 다니게 돼요.

[고전 이야기] 한국 풍습·정서 잘 녹여내, 독일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렸어요
/그림=이병익
그러던 중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는 일이 벌어졌고, 주인공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급격히 몸이 나빠진 주인공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어요. 하지만 주인공의 마음 한편에는 새로운 학문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어느 날에는 답답한 마음에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떠날 생각을 했어요. 이러한 주인공의 심적 갈등은 전통과 변화, 동양과 서양의 가치가 뒤섞인 당시 시대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겨울 동안 나는 지난 학교 시절과 학우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이야기해 준 신세계 유럽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적에 모아 두었던 사진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사진 속에는 화려한 집들과 장엄한 성들이 있었다. 나는 먼 서구의 건물들과 그 안을 드나드는 갈색 머리의 키가 큰 사람들을 상상해 보았다."

고민 끝에 주인공은 일단 어머니의 말을 따라 서울에 있는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했어요. 서울에 가서 배우는 새로운 학문은 흥미로웠지만, 식민지 학생으로서 암울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 했죠. 그러던 1919년 주인공은 친구들과 함께 3·1 운동에 참여했어요. 그리고 거사가 끝난 뒤 일본 경찰에 쫓기는 처지가 되었지요. 주인공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압록강 상류는 경계가 심하지 않으니 그곳에서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가라"고 조언했어요. 어머니도 마음을 바꿔 유럽에서 주인공이 공부를 계속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죠. 주인공은 고향을 떠나기 두려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주인공은 국경 지대에서 압록강을 건넜어요. 그 후에도 여러 나라를 거쳐 독일에 도착했어요. 낯선 이국땅에서 잔잔히 흘러가는 강물을 볼 때면 늘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그가 후일 전달받은 편지에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어 있었죠.

어떤 학자는 "가장 한국적인 상황에서 살아 온 보통 한국인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이 작품이 세계 독자들의 주목을 끌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해요. 설날에 친척과 이웃이 함께 어울리는 풍경, 3·1 독립 운동을 하는 장면 등에는 한국의 풍습과 따뜻한 정서가 잘 녹아 있어요. 작품의 제목도 유유히 흘러가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요.

이 작품은 세계인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감성도 담았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전통적인 삶이 변화하면 큰 혼란을 느끼거든요. 주인공이 부모님과 이별하며 느끼는 아픔도 누구나 안타까워할 만한 것이지요. 한국적인 이야기와 보편적인 내용을 두루 갖춘 '압록강은 흐른다'는 이런 이유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읽히고 있답니다.

양미연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