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현미경으로 물감 단면 분석… 가짜 작품 골라낸대요

입력 : 2016.06.24 03:10

[미술품 감정]

박수근의 '빨래터' 진품 판정 이유, 평소 그림과 물감 덩어리 유사해
과학 감정 외에도 안목 감정 있어 전문가 경험이 첨단기기 보완하죠
감정 전문가 덕분에 미술품 믿고 사

사진1
사진 1 - 위작 논란으로 소송 중인 ‘미인도’.

최근 검찰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고(故) 천경자 화백 유족들과 국립현대미술관 측의 소송이 진행 중인 '미인도'〈사진1〉를 X-ray·적외선 검사·물감 분석 등을 통해 진품인지, 위작인지 감정해달라"고 의뢰했다는 것이 알려졌어요. 지난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인도'를 천 화백 작품이라면서 공개했는데, 천 화백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고 선언했다고 해요. 그로부터 25년간 미인도 위작 논란이 이어졌죠.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기지 않나요? 국과수라고 하면 범죄로 사망한 피해자들을 부검하는 장면부터 떠오르는데, 어떻게 미술품의 진위 판정 또한 맡게 된 걸까요?

안목 있는 전문가의 판단·정밀 기계의 분석… 함께 결론 내려요

미술품 진위 감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크게 '안목 감정'과 '과학 감정' 두 가지로 나뉜다고 설명할 수 있어요. 안목 감정은 오랜 기간 작품을 접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의 눈으로 기법, 재료, 색채, 서명, 작품 출처, 소장 과정, 전시회 자료 등을 분석하여 진위 판정 의견을 내는 것을 말해요. 과학 감정은 X-ray, 가시광선·적외선 분광분석기, 현미경 등 첨단기계를 동원해 물감, 캔버스 틀 나무의 제작 연대와 성분을 분석해 감정 판정을 내리지요.

일반적으로 안목 감정과 과학 감정을 종합해야 진위 여부를 가려낼 수 있어요. 아무리 안목이 뛰어난 전문가일지라도 개개인의 판단에는 주관적인 시각이 포함돼요.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가 뒷받침될 필요가 있죠. 과학 감정에도 한계는 있어요. 진품에 사용된 것과 같은 물감이나 종이, 캔버스를 구해 위작을 만들었을 경우 최첨단 장비로 조사해도 진위를 가려내기 어렵거든요.

작품 1 사진
작품 1 - 박수근, 빨래터, 1950.

고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작품1〉는 위작 논란으로 법정 소송이 진행됐지만 과학 감정을 통해 진품으로 판정된 사례랍니다. 어떻게 과학 감정을 진행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미술품 감정 전문가인 김주삼 Art 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장은 이 작품에서 아주 작은 그림 조각(시료)을 직접 채취하여 전자현미경과 X선 분광분석기로 분석했다고 해요. 이를 통해 박수근 화백이 흰색 물감 가운데 '징크 화이트(Zinc White)'라는 색상을 다른 물감 대부분에 함께 섞어 사용하는 특징이 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답니다.

또 김 소장은 '빨래터'에서 채취한 미세한 물감 덩어리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하였어요. 김 소장은 지난 1990년에도 호암미술관 연구 논문을 통해 박수근의 다른 작품의 단면을 연구해 발표한 적 있는데, 이것이 '빨래터'의 단면과 비교하였을 때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법원에 정리해 제출하였고요. 그 결과 '빨래터'는 박수근 화백의 평소 그림 특징이 반영된 진품으로 판정되었던 거예요.

17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거장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는 현재 아일랜드국립미술관에서 인기 있는 소장품이에요. 이 작품은 약 200년 동안 다른 작가가 그린 것으로 오인되었다가, 안목 감정과 과학 감정을 통해 카라바조의 진품으로 밝혀졌답니다. 그 과정에서 런던국립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카라바조의 다른 작품 '엠마오에서의 만찬'이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런던국립미술관의 감정 전문가들은 '그리스도의 체포'와 '엠마오에서의 만찬'에서 시료들을 채취한 뒤 X-ray, 적외선 촬영기, 가스크로마토그래프(유기 화합물 혼합체 분석기) 등으로 비교 분석했어요. 그 결과 감정팀은 두 그림에 사용된 물감의 화학 성분이 같고, 카라바조가 물감을 섞을 때 당시 흔하게 사용되었던 호두 기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또한 아일랜드국립미술관 복원가인 베네데티는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생긴 수정 자국인 펜티멘토(완성된 그림 아래 드러나지 않고 있던 것이 위에 덧칠한 물감이 벗겨지면서 드러나 보이는 현상)를 찾아냈지요. 그림 속에 숨겨진 수정 자국은 이 작품이 진품이라는 강력한 증거가 된답니다. 위작은 원본의 윤곽을 그대로 베껴 그리기 때문에, 중간에 형태나 색깔 등을 크게 수정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위작 막기 위해 감정 전문가 길러내야

작품2는 고 이중섭 화백의 진품이고 사진2는 위작이에요. 비교해보면 '물고기와 아이'의 좌우 위치가 바뀌었지요? 이것이 바로 위작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 증거가 됐어요. 김주삼 소장에 따르면,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감정 위원들은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 100인 선집 제44권 이중섭 편'(1977)을 베끼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이라고 판정했대요. 이 책에는 편집자의 실수로 원작이 좌우 반전돼 인쇄되었는데, 원작을 직접 보지 못한 위작자는 뒤집혀 인쇄된 책 속 도판을 본떠 가짜 그림을 그렸고 금방 들통이 난 겁니다.

사진2, 작품2
사진 2 - ‘물고기와 아이’ 위작, 작품 2 - 이중섭, 물고기와 아이, 1953.
위작 논란은 미술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려요. 그러니 과학 감정에 필요한 최첨단 장비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고, 이를 수행할 감정 전문가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이번 위작 논란도 감정의 중요성을 깨우칠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명옥·사비나 미술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