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종교 이야기] 공산 정권 박해·한국전쟁 겪으며 사라져… 현재 '장충성당'만 남아
북한의 '가톨릭 성당'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한국 가톨릭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달'로 기려요.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인 6월 25일 전 일요일인 오는 19일에는 전국에서 남북통일 기원 미사를 하지요. 현재 북한의 가톨릭 성당은 1988년 평양에 세워진 장충성당뿐이에요. 그러나 남북 분단 직전에는 북녘에도 성당 57곳에 신자 5만2000명이 있었답니다. 19세기 말부터 지금의 북한 지역에 성당들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가톨릭 신자가 늘어나면서 함경도와 평안도 지역이 교구(敎區·가톨릭 행정구역)로 지정됐었죠. 당시 새로 설정됐던 함경도·평안도 교구들은 미국에서 온 메리놀 외방전교회, 독일에서 온 베네딕도 수도회가 관할하게 됐었어요. 중국에서 활동하던 메리놀회 선교사들은 남으로 내려와 평안도에 자리를 잡고, 서울에서 활동하던 베네딕도회 수사들은 북으로 올라가 함경남도에 신학교를 세웠대요.
- ▲ 지난 2015년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교들(뒷줄)이 미사를 봉헌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어요. /연합뉴스
해방 무렵 한반도 신자 수의 27%를 차지했던 북녘 교회는, 공산 정권의 박해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5년 만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어요. 교회 지도자들은 행방불명되거나 살해되었고, 교회 재산은 북한 공산당 정권에 몰수됐어요. 1949년에는 고위 성직자인 독일인 사우어 주교가 체포돼 이듬해 평양 감옥에서 순교했어요. 사우어 주교의 체포에 항의하던 홍용호 주교는 납치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뒤 행방이 묘연해졌대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패트릭 번 주교와 신부, 수녀들은 인민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여러 지역으로 끌려다니는 '죽음의 행진' 중에 목숨을 잃었어요. 북한의 57개 성당은 사진만 남았을 뿐 모두 파괴되고 숨은 신자들과 조직에 대한 이야기도 소문만 들려올 뿐이에요. 하지만 남한 가톨릭교회는 지금도 통일이 되면 북한 교회를 재건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지금 북한에 상주하는 성직자는 없지만,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 활동할 사제 지망생을 미리 뽑아 양성하고 있어요. 그래서 남한에도 평양, 함흥 교구 신학생이 있답니다. 교황청은 북한과 관계있는 남한 교구의 대표들에게 북한 교구의 직무 대행(서리)을 맡겼어요. 그래서 평양교구장 서리는 서울대교구장이, 함흥교구장 서리는 춘천교구장이, 덕원자치수도원구장은 한국 베네딕도회 대수도원장이 맡고 있죠.
최근 남북한 교회의 만남을 보여준 두 가지 사건이 있어요. 2013년 6월 25일, 경기도 파주에서 남과 북이 함께 힘을 합쳐 지은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 문을 열었어요. 이 성당은 외관은 평안북도 진사동 성당을, 내부는 함경남도 덕원의 수도원 성당을 본떠 지었대요. 성당 천장에 설치된 모자이크화는 북한의 평양 만수대 소속 작가들이 만들었고요. 2015년 12월에는 남한 주교단이 북한의 공인 가톨릭 단체인 조선가톨릭교협회의 초청을 받아 평양을 방문하고,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며 북한 신자들을 축복해 주었어요. 최근에는 사우어 주교, 홍용호 주교 등 남북 분단 시기 순교자들을 교회가 공경하는 사람을 뜻하는 '복자(福者)'로 추대하기 위한 절차들이 진행 중이에요. 국내 예비 심사가 잘 마무리되면 교황청 심사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해요. 북한의 57개 성당을 알고 기억하자는 '내 마음의 북녘 본당 갖기' 캠페인도 있답니다. 건물은 사라졌어도 실향민 신자들이 생생하게 증언하는 북녘 성당의 역사 역시 한국 가톨릭의 소중한 발자취이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