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남과 북 이렇게 달라요] 세종대왕 소개 않고 이성계 '배신자'로… 北 학생들, 조선 왕 나쁜 줄 알아요

입력 : 2016.06.08 03:11

[북한의 역사박물관]

하연이는 지난 현충일 서울 광화문 도심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다녀왔어요. 장래 희망이 역사학자인 하연이는 역사박물관을 아주 좋아해요.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꼈던 역사적 사건 기념물들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거든요. 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의 지나온 역사를 보여줄 뿐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미래의 나침반 역할을 하지요. 정치·경제 선진국에 유독 박물관이 많은 이유는 박물관을 통해서 배울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다면 북한에도 역사박물관이 있을까요? 평양 시내 김일성 광장에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이 있어요. 이곳에는 고조선 때부터 고구려·신라·백제 삼국 시대, 고려와 조선 시대 역사, 그리고 현대사를 다뤄요. 그런데 북한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선 특이하게도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소개하지 않는답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 역시 고려를 배반하고 나라를 찬탈한 나쁜 왕으로 평가해요. 탈북자들에 따르면 "이런 박물관 현실 탓에 북한 학생들은 모든 조선 왕을 '인민을 착취하고 억압한 봉건시대 왕들' 정도로만 알고 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의 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김유신 장군에 대해서는 당나라를 등에 업은 매국노로 표현하고 있지요.

북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 위치한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문구가 쓰여 있어요.
북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 위치한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문구가 쓰여 있어요. /Getty Images/이매진스
평양에 사는 북한 학생이라면 의무적으로 방문해야만 하는 조선혁명역사박물관도 있어요. 이곳은 김일성 일가에 대한 역사를 날조하여 북한 주민들에게 세뇌교육을 시키는 장소로, 전시실만 90실이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지어져 있답니다. 그런데 김일성 우상화가 너무 심하다 보니 북한 어린이들도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많다고 해요. 예를 들어 '배움의 천 리 길'이란 김일성이 12세 때인 1923년 3월 "조국을 알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시 살고 있던 만주 팔도구에서 고향인 평양 만경대까지 혼자 걸어왔다는 길로 거리가 1000리(약 393㎞)에 달한대요. 우리나라에서 12세 어린이가 혼자 천 리 길을 걸었다면 부모가 처벌받을 일이었겠죠? 북한에서는 지도자를 우상화하기 위해 김정은이 세 살 때 총을 쏘았고 다섯 살 때 한자로 시를 썼고, 말을 타고 달렸다는 이야기를 꾸며내지요. 북한 각지에는 김일성 일가를 신격화하는 수많은 박물관, 기념 장소가 있답니다.

지도자 개인에 대한 우상화는 과거 사회주의 체제 국가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동유럽의 루마니아는 북한과 비슷한 개인숭배와 개인 우상화를 시도했던 나라예요. 루마니아의 대통령이었던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일성 개인을 우상화하는 일사불란한 사회체제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해요. 그래서 루마니아로 돌아오자마자 북한의 역사박물관을 흉내 낸 루마니아 혁명역사박물관, 북한의 인민대회당을 흉내 낸 루마니아 인민궁전을 건설하라고 지시했어요.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 국민이 굶주리는 상황에서도 건물을 거대하고 화려하게 짓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그는 수십 차례에 걸쳐 인민궁전을 고쳐 지으라고 지시했어요. 결국 차우셰스쿠는 인민궁전이 완공되기 전 국민의 손에 의해 처형되고 말았지요.

하루빨리 북한에서 지도자의 개인 우상화와 독재 정치가 사라져야 해요. 북한 어린이들도 재미있는 박물관에 마음껏 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김지영·대한민국 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