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장 속에 사는 미생물이 내 체질 결정한대요

입력 : 2016.06.07 03:08

[장내 미생물]

탄수화물 소화하는 '박테로이데스'… 피부병과 우울증 예방해
채식주의자 장엔 '프로보텔라' 많고 '루미노코쿠스'는 쉽게 살찌게 해

몸무게 중 1~2㎏은 장내 미생물… 유해한 균은 당뇨·설사 일으켜요

지난달 4일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비만도 전염될 수 있다'는 소식이 실렸어요. 살이 쉽게 찌도록 돕는 장내 미생물이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고, 이걸 들이마신 사람에게 비만이나 장염 등을 옮길 수도 있다는 내용이에요. 엉뚱한 내용 같지만,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아요. 올해 네이처에 '장내 미생물이 공기 중에서 포자를 형성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문이 실렸기 때문이지요.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는 약 10조 개인데, 소장과 대장에는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대요. 우리 몸무게 중 1~2㎏은 장내 미생물의 무게고요. 엄청난 양의 장내 미생물,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살펴볼까요?

장내 미생물에 따른 '장 유형' 3가지

지난 2011년 네이처에 발표된 독일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장내 미생물 유형에 따라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남들보다 쉽게 뚱뚱해지는 체질이 될 수 있다고 해요. 연구팀은 유럽인 22명과 미국인 2명, 일본인 9명의 대변에 있는 장내 미생물 유전체를 분석했어요.

[재미있는 과학] 장 속에 사는 미생물이 내 체질 결정한대요
/그래픽=안병현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유형은 어떤 종류의 세균이 많이 살고 있는지에 따라 박테로이데스와 프로보텔라, 루미노코쿠스 3가지 유형으로 분류됐다고 해요. 낯선 학명으로 되어 있어 발음하기 어렵나요? 3가지의 장내 미생물 유형 이름은 세균 종류의 이름에서 따왔어요. 예를 들어 박테로이데스 유형 사람의 장에는 박테로이데스라는 종류의 세균이 많이 산답니다. 장내 미생물 유형은 인종이나 사는 나라와는 큰 상관이 없었어요. 그러나 사람들의 식습관은 미생물 분포에 영향이 매우 컸다고 해요.

첫째 박테로이데스 유형은 탄수화물 소화의 달인으로, 필요에 따라 모든 소화효소를 척척 만들 수 있어요. 비타민 B7을 만드는 효소도 많이 생산해 피부병이나 우울증을 예방하지요. 이 박테로이데스 유형은 고기나 지방이 많은 음식을 즐기는 사람의 장에서 많이 발견됐대요.

둘째 프로보텔라 유형은 채식 위주로 식사하는 사람의 장에 많았다고 해요. 또 장에 있는 점액을 분해하는 성질인 '뮤신'과 비타민 B1을 풍부하게 만들어 각기병에 강한 장점이 있어요.

연구팀이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라고 밝힌 셋째 루미노코쿠스 유형은 식이섬유가 적은 고지방 식단을 먹는 사람의 장에서 많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루미노코쿠스 미생물들이 우리 몸의 세포가 당분을 잘 흡수하도록 돕기 때문에, 같은 양의 음식을 먹어도 박테로이데스형 장보다 루미노코쿠스형 장에서 더 많은 당분이 흡수된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에요.

면역·소화·흡수 돕고… 당뇨·암에도 영향

장 속에서는 수많은 미생물이 균형을 이루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지요. 장내 미생물 중에는 우리 몸에 이로운 균도 있고, 해로운 균도 있어요. 유익한 균들은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균을 막아내고, 음식물을 소화하고 흡수하는 데 관여하며, 비타민을 만드는 효소를 생산해요. 반면 유해한 균들은 당뇨나 암 등 각종 질병을 일으켜요. 병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사용하면 장내 미생물도 함께 죽어 면역력이 약해질 수 있어요. 최근 우리나라 윤상선 연세대 의대 교수팀은 이에 대한 연구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어요. 연구에 따르면 항생제의 공격을 받아도 특정한 유전자를 가진 대장균은 오히려 숫자가 불어난다고 해요. 그리고 면역 세포가 병을 감염시키는 세균을 공격할 때 쓰는 무기인 활성산소를 못 쓰게 방해한다는 거예요. 항생제를 먹으면 장내 세균의 균형이 깨지면서 우리 몸의 면역력이 전체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거지요. 장내 미생물이 몸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답니다. 연구팀은 "앞으로 항생제를 먹고 발생하는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연구 결과를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장내 미생물로 병 고치는 시대가 온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장내 미생물을 조절하거나 바꿀 수는 없을까요? 건강에 유리한 미생물이 많아지도록 말이에요. 건강한 사람의 대변 속 미생물을 분리한 다음, 환자들에게 부족한 미생물을 이식해서 병을 고치는 시도가 성공하고 있다고 해요. 이 치료법의 이름은 '대변 미생물 이식 시술'이에요.

지난 2013년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는 대변 미생물 이식 시술로 치명적인 설사병을 고쳤다는 연구가 실렸어요. 연구진은 환자 13명에게는 항생제 치료만 하고, 16명에게는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한 뒤 치료가 되는지 살펴보았어요. 연구진에 따르면 항생제 치료만 한 환자들은 13명 중 4명만 치료된 반면, 장내 미생물 이식을 받은 환자들은 16명 중 15명이 치료됐다고 해요. 항생제 치료보다 장내 미생물 이식을 통한 치료가 효과가 좋았다는 거지요.

최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임기 내 마지막 대규모 과학 연구 프로젝트의 주제로 우리 몸속의 미생물을 선정했어요. 우리 몸속 미생물 전체의 유전 정보 지도를 그리는 이 국가적 프로젝트에 2년간 14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대요. 이 프로젝트가 알찬 결실을 맺어 장내 미생물로 체질을 뒤바꿀 치료제를 만드는 날을 꿈꿔봅니다.

박태진 과학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