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인성 이야기] 두려움 무릅쓰고 자기 소신 떳떳하게 밝혀야 해요

입력 : 2016.06.02 03:10

용기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유럽에서는 억울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재판을 열고 사형에 처하는 '마녀사냥'이 성행했어요. 마녀사냥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수백년간 20만~50만명의 사람이 마녀 또는 마법사라는 누명을 쓰고 죽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한창 마녀사냥이 벌어지던 어떤 성에서 선량한 할머니 한 명이 잡혀왔어요. 이 할머니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억울하게 마녀로 몰린 사람이었어요. 왕이나 신하들도 할머니에게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이 할머니가 마녀가 아니라고 누구도 나서서 말하지 않고 있었어요. 어째서 사람들은 이 할머니가 아주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요? "저 할머니는 마녀가 아니다"고 말하는 순간, 자기도 마녀와 같은 편으로 몰릴 것이라 생각해 모른 척하기로 한 것이죠. 결국 할머니는 마녀라는 누명을 쓰게 됐어요. 당시 억울한 희생자가 수십만 명에 달했던 이유는 누구도 희생자들의 편을 용기 있게 들어주지 않았던 데에 있어요.

16세기 영국 왕족인 레이디 제인 그레이가 처형당하는 모습을 그린 폴 들라로슈의 19세기 유화 작품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이에요. 성공회 신자였던 제인 그레이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반대파의 제안을 받았지만 신념을 따르기 위해 거절했어요.
16세기 영국 왕족인 레이디 제인 그레이가 처형당하는 모습을 그린 폴 들라로슈의 19세기 유화 작품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이에요. 성공회 신자였던 제인 그레이는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반대파의 제안을 받았지만 신념을 따르기 위해 거절했어요. /영국 내셔널 갤러리 제공
여러분도 옳은 행동이 아닌 것을 알면서 분위기에 눌려 끌려간 경험이 있지 않나요? 사실 대다수 다른 사람이 억울한 한 사람을 마녀로 모는 상황에서 나만 '이 사람은 마녀가 아니다'고 주장하기란 결코 쉽지 않아요. 자칫하다간 많은 사람에게 배신자로 몰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모든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 있게 자기 소신을 펼치는 사람도 있어요. 지난 1970년 당시 서독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독일과 앙숙 관계에 있던 폴란드를 방문했어요. 폴란드는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나치 정권과 전쟁을 치러 당시 폴란드 국민의 5분의 1에 달하는 600만명이 독일군에 의해 희생된 나라랍니다.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전쟁 희생자 추모지에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나치의 과거사를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당시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은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어요. 이처럼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진정한 용기예요.

사실 당시 서독 내부에서는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에 가서 나치의 과거사를 반성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해요. 그럼에도 빌리 브란트가 반대를 무릅쓰고 무릎을 꿇은 까닭은 무엇일까요?

빌리 브란트는 독일이 2차 세계 대전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해야만 더 용기 있고 진실한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는 서독 국민에게 지지율이 떨어질 수 있음을 예상했음에도 용기 있게 과거사를 사과하기로 선택했어요. 바로 이 용기 덕분에 빌리 브란트는 나중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독일을 빛낸 정치가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죠.

이처럼 마녀사냥을 막아 억울한 친구를 돕고, 과거에 내가 했던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일 모두 용기가 있어야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세네카는 '용기는 그대를 별로 인도하고, 두려움은 그대를 지옥으로 인도한다'고 말했어요. 용기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훨씬 떳떳하게 소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답니다.



김진락·조선소리봄인성교육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