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자유 외친 '도망 노예'… 흑인이자 여성 최초로 美 지폐 속 인물 되다

입력 : 2016.05.26 03:10

흑인 인권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

지난달 미국 재무부는 20달러 지폐 인물을 기존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에서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2-1913)으로 교체하겠다고 밝혔어요. 양성평등의 가치가 널리 인정받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정작 지폐 인물에는 여성이 없다는 비판 때문이었죠. 이르면 2020년 해리엇 터브먼의 초상화가 그려진 새 20달러 지폐가 등장할 예정이에요. 해리엇 터브먼은 미국 지폐 인물 가운데 사상 첫 흑인이기도 하답니다. 과연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해리엇 터브먼은 흑인 노예 수백 명의 탈출을 도왔던 용감한 여성이랍니다. 해리엇 터브먼이 활약했던 1800년대 중반 미국, 남부 사람들과 북부 사람들은 흑인 노예 문제를 두고 서로 갈등을 겪고 있었어요. 넓은 농장이 발달한 남부의 백인 지주들은 흑인 노예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죠. 물론 흑인들의 노동력을 공짜로 부려 먹기 위해서였지요. 반면 이제 막 산업혁명을 시작한 북부의 공장에서는 임금이 싼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어요. 북부 사람들은 남부의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 북부에 있는 공장에 취직할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북부는 흑인 노예 제도가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남부와 북부의 경제구조 차이 때문에 노예제를 둘러싸고 날카로운 대립이 벌어졌던 거예요.

1887년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왼쪽 끝)이 자신의 집 앞에서 가족과 찍은 사진이에요. 아래 사진은 앞으로 새 20달러 지폐에 담길 해리엇 터브먼의 초상화를 형상화한 이미지랍니다.
1887년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왼쪽 끝)이 자신의 집 앞에서 가족과 찍은 사진이에요. 아래 사진은 앞으로 새 20달러 지폐에 담길 해리엇 터브먼의 초상화를 형상화한 이미지랍니다. /뉴욕타임스 사진 아카이브·AFP/연합뉴스
해리엇 터브먼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예였어요. 그 결과 해리엇도 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어요. 어린 시절 해리엇은 주인에게 맞아 머리를 크게 다쳤고, 그 후유증으로 어른이 되어서도 수면 장애와 두통에 시달리며 살았어요. 해리엇은 왜 노예들은 주인에게 학대받아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분노했어요.

해리엇은 남부 흑인 노예를 북부로 도망시켜주는 비밀 조직 '지하철로(Under grou nd Railroad)'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어요. 이 조직은 실제로 철도를 이용하진 않았지만, 남부 농장에서 북부 공장까지 장거리를 은밀히 다니느라 지하철로라는 별명으로 불리었어요. 이들은 도망 중인 흑인 노예를 '승객'이라고 부르며 안전한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고 일자리와 자유가 있는 북부로 이동시켰어요. 도망 노예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사람은 '차장'이라고 불렀죠.

1850년부터 해리엇도 지하철로의 차장이 되어 동료 흑인 노예들의 탈출을 돕기 시작했어요. 해리엇의 도움으로 1860년까지 19차례에 걸쳐 300명 이상의 노예가 자유를 찾았어요. 그녀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어요. 해리엇은 혹시나 주인들이 사냥개를 풀어 쫓아오지 않을까 싶어 냄새가 강한 후추를 뿌리며 도망쳤대요. 당시 흑인은 글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문맹이었던 해리엇은 지도를 읽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바느질로 글자가 없는 암호 지도를 만들어 가지고 다녔어요. 그리고 밤하늘에 빛나는 북극성, 강물의 흐름을 더듬어가며 북쪽으로 향했지요.

겨울철에는 아이들이 추위와 겁에 질려 운다는 문제가 생겼어요. 해리엇은 우는 아이들에게 진통제를 먹여서 재웠어요. 가끔 어른들도 용기를 잃어 중도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해리엇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총부리를 들이대서 위협해서라도 끝까지 탈출하게 도왔어요. 나중에는 그들도 해리엇에게 '용기를 줘서 고맙다'고 말했대요.

1861년 결국 남북전쟁이 터졌어요. 해리엇은 북군의 편에 서서 스파이 역할을 하며 '터브먼 장군'이라는 별명을 얻게 돼요. 결국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났고, 링컨 대통령이 흑인 노예를 해방했어요. 해리엇은 그 후에도 평생 여성참정권과 흑인 인권을 위해 사회 운동에 헌신했답니다.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