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의학이야기] 외모 흉하다는 이유로… 환자들, 감금·차별당했대요

입력 : 2016.05.25 03:12

[한센병]

원인균, 피부·눈·얼굴 망가뜨리고 신경 마비시켜 감각 못 느끼게 해
전파력 약하고 쉽게 죽는 균이지만 강제 불임수술 당하고 매 맞기도

우리나라 남해는 굽이진 해안선에 많은 섬이 어우러져 경치가 아름다운 바다예요. 남해의 많은 섬 가운데 섬 모양이 사슴을 닮아 소록도(小鹿島)라는 예쁜 이름이 붙은 섬이 있어요. 그런데 이 소록도라는 섬에는 아주 슬픈 역사가 있답니다.

1916년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를 강점한 일제 조선총독부는 이 섬에 '자혜의원'이라는 병원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전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데려다 강제 수용했지요. 한센병 환자 수천 명이 단지 이 병을 앓는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이나 다름없는 병원에 갇혀야 했어요. 당시 한센병 환자들은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소록도에 있는 병원에서 나올 수 없었어요.

[의학이야기] 외모 흉하다는 이유로… 환자들, 감금·차별당했대요
/그래픽=안병현
올해는 소록도에 병원이 개원한 지 100주년을 맞은 해예요. 현재는 국립소록도병원의 모든 한센병 환자가 자유롭게 육지로 왕래할 수 있답니다. 도대체 한센병이 어떤 병이기에 예전에는 한센병 환자들이 마치 죄수처럼 평생을 갇혀 살아야 했을까요? 병에 걸렸다고 해서 사람들을 차별해도 되는 것일까요?

손·발가락·피부 망가졌어요

1873년 노르웨이 의학자 한센(A. Hans- en)이 한센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이 병의 이름이 한센병이 됐지요. 한센병을 뜻하는 다른 병명인 '나병(癩病)'이나 '문둥병'은 환자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어서 잘 쓰지 않아요. 한자 '나(癩·나병 나)'는 두꺼비처럼 거친 피부를 뜻한대요.

지난 17일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한 한센병 환자와 황교안 국무총리가 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어요.
지난 17일 국립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한 한센병 환자와 황교안 국무총리가 손을 맞잡고 대화하고 있어요. /연합뉴스
한센병을 일으키는 세균은 쉽게 확산되지 않는 아주 약한 균으로 알려져 있어요. 사람들은 한센병이 전염될 것이라고 공포에 떨지만, 수십 년 동안 한센병 환자와 생활해도 이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대요. 그런데도 한센병 환자들은 사회적으로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았어요. 한센병에 걸리면 말초신경이 마비되고 피부와 눈이 망가져 외모가 흉해지기 때문이에요. 이 균은 신경을 마비시키므로 환자들이 뜨겁고 찬 것을 잘 느끼지 못하게 돼요. 쉽게 화상이나 동상을 입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떨어져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한센병 환자들은 옛날부터 마을이나 도시에서 떨어진 외딴곳에 살았고, 크고 작은 차별을 받았어요. 중세 시대 서양에서는 한센병 환자들이 외출할 때 방울을 갖고 다니도록 했어요. 다른 주민들이 방울 소리를 듣고 한센병 환자들을 피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어요. 오래전 우리나라에서도 한센병 환자들은 부당한 차별을 당하며 살았지요.

1900년대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선교사들은 한센병 환자들이 광주, 대구, 여수, 나주 영산포 등에 소규모로 지낼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러다 1916년 조선총독부가 소록도에 병원을 세워 한센병 환자들을 대규모로 한곳에 모아 관리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불행히도 식민지 시대에는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시킬 뿐 치료해서 사회로 돌려보내는 조치는 없었어요. 이 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은 강제 불임 수술을 당하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했어요. 인권유린을 일상적으로 당한 거예요.

소록도의 비참함 알리려… 일본인 원장 암살한 이춘상

총독부에서는 일본인 원장을 소록도에 부임시켰어요. 그중 스오 마사스에(周防正季) 원장은 환자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어요. 환자들의 손발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병세가 악화되자 절망해 물에 뛰어든 사람도 있었대요. 스오 원장은 환자들에게 노역을 시켜 번 돈으로 3m가 넘는 자신의 동상을 세웠어요. 그러고 매달 정기적으로 자기 동상에 참배를 하라고 명령을 내렸죠.

어느 날 이춘상이라는 환자가 참지 못하고 스오 원장을 암살했어요. 그동안 환자들이 받았던 학대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결과였지요. 이춘상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이렇게 증언했어요. "스오 원장을 죽인 것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의로운 분노 때문이었다. 확장 공사를 비롯해 각종 사업에 동료 환자들이 혹독하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중략) 이 기회에 소록도의 비참한 생활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앞으로 고쳐지길 바랐던 것이다."

광복 이후에는 인권유린이 줄어들었어요. 그러나 1980년대 이전까지 소록도 환자들의 육지 왕래는 자유롭지 않았어요. 병에 걸린 고통보다, 그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받는 사회적인 차별이 환자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거지요. 이제 우리 주변에서 한센병은 보기 어려워요. 그러나 사람들이 여전히 차별과 편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질병들은 많이 있어요.

물론 확산력이 뛰어난 감염병의 경우 대규모 확산을 막기 위해 병이 나을 때까지 환자를 격리하는 것도 필요해요. 작년 메르스 때는 의심 환자들이 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14일간 집에서 자가 격리를 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한센병의 경우 전염력이 굉장히 약한 질병이랍니다. 한센병 환자를 죽을 때까지 강제로 섬에 격리하고 차별했던 슬픈 소록도의 역사가 더욱 비극적인 이유지요.

여인석 연세대 의대 교수(의사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