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인물] 아이들 위한 책 부족해… 한국 최초 아동문학 잡지 '어린이' 창간

입력 : 2016.05.23 03:11

아동문화운동가 방정환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신문은 선생님'은 조선일보에서 매일 어린이를 위해 준비한 기사가 나오는 지면이에요. 마치 이 신문은 선생님처럼 어린이들을 위해 매일매일 다양한 읽을 거리를 발굴해 소개했던 분이 계세요. 바로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아동문화운동가인 방정환(1899~1931) 선생님이지요.

일제 강점기 어린이들이 접할 수 있는 책과 노래는 학교에서 배우는 일본어 문학, 어른들이 부르는 민요밖에 없었어요.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어린이 문학이 발전해 서점 곳곳마다 어린이들을 위한 책이 넘치는데, 조선 아이들을 위한 아동문화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었지요. 방정환 선생님은 조선 아이들의 동심이 사라져간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워하다 1923년 한국 최초의 아동문학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어요. 방정환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일제 강점기 어린이들을 위한 조선어로 된 아동문학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을 거예요. 방정환 선생님은 잡지 '어린이'를 통해 수많은 동요와 동화를 소개했어요.

게다가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동요 대부분이 잡지 '어린이'를 통해서 이 세상에 나온 작품들이에요. 이원수의 '고향의 봄', 윤극영의 '설날'과 '반달', 유지영의 '고드름', 윤석중의 '오뚜기', 서덕출의 '봄편지'도 잡지 '어린이'를 통해 이 세상에 나와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어요. 당시에는 독자 어린이들이 응모한 작품들 가운데 좋은 작품을 뽑아 곡을 붙여 동요로 만들었거든요.

서울 광진구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방정환 기념 동상이에요. 방정환이 어린이의 어깨를 안아주며 동화 를 알려주는 모습이지요.
서울 광진구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방정환 기념 동상이에요. 방정환이 어린이의 어깨를 안아주며 동화 를 알려주는 모습이지요. /국가보훈처 제공

1925년에는 독자 문예 작품으로 수원에 사는 12세 소녀 최순애가 쓴 '오빠생각'이 선정됐어요.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 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최순애의 오빠는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항일 계몽 운동을 하던 청년이었어요. 논에서 우는 뜸부기와 숲에서 우는 뻐꾹새 소리를 들으며, 일제에 저항하다 젊은 나이에 희생되는 청년들을 떠올린다는 이 동시는 어린이뿐 아니라 많은 어른의 가슴을 울렸지요.

방정환 선생님이 이화여고에서 신데렐라 동화 구연을 할 때는 학생들 모두가 눈물바다가 되었고, 심지어는 감시하러 왔던 일본 순사도 감동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해요. 종로경찰서 미와 형사는 방정환 선생님에 대해 이렇게 말했대요. "방정환이란 놈, 흉측한 놈이지만 밉지 않은 데가 있어. 그놈이 일본 사람이었다면 나 같은 순사 나부랭이한테 불려 다닐 위인은 아니야. 일본 사회라면 든든히 한자리 잡을 만한 놈인데 아깝지 아까워."

방정환 선생님은 전국을 순회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강연을 하며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도 바쁘게 일하시다가 결국 과로로 쓰러지셨어요.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간호사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며 웃음을 잃지 않고 지냈지만 당시 의술은 선생님을 구하지 못했어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우리나라의 어린이 걱정뿐이셨죠. "앞으로 어린이들을 잘 부탁하네. 여보게, 밖에 검정말이 끄는 검정 마차가 와서 검정 옷을 입은 마부가 기다리니 어서 가방을 내다주게"라는 말을 남기고 마치 동화의 한 장면처럼 하늘나라로 떠나가셨답니다.

방정환 선생님의 묘비에는 '동심여선(童心如仙·어린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이라고 쓰여 있어요. 한평생 우리 아이들의 동심을 생각한 그 정신은 우리가 지금도 즐겨 부르는 동요와 즐겨 읽는 동화책 속에 녹아 있답니다.

조현재·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동양대 공공인재대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