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주인공 악기가 오케스트라와 벌이는 한판 승부

입력 : 2016.05.20 03:09

[협주곡]

바로크 시대에 시작된 '협주곡'
한 명의 연주자와 오케스트라… 싸우면서도 도와가며 작품 이끌어

전체의 하이라이트인 독주 파트… 화려한 기교 뽐내며 무대 장악해요

결말이 거의 정해져 있는 뻔하디뻔한 수퍼 히어로 영화에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멋있는 영웅이 자신과 비슷한 힘을 가진 상대편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고 평화를 이끌어내는 활약담이 재밌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손에 땀을 쥐며 주인공을 응원하지요.

클래식 음악 분야에도 마치 수퍼 히어로 영화처럼 공연에 등장하는 악기들끼리 서로 대결을 치러서 청중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있어요. 바로 '협주곡(協奏曲·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면서 독주 악기의 기교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작곡한 형식의 악곡)'이에요. 보통 한 명의 주인공 독주 악기와 함께 70명에서 120명에 달하는 오케스트라가 등장해 흥미로운 한판 대결을 벌이는 연주곡을 협주곡이라고 부른답니다.

지난해 8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아르헨티나 콜론 극장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필하모닉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관객들에게 한국 클래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어요.
지난해 8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아르헨티나 콜론 극장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필하모닉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며 관객들에게 한국 클래식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어요. /해외문화홍보원 제공
협주곡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 콘체르토(Concerto)는 라틴어에서 비롯됐어요. 그런데 이 단어에는 '대립'이나 '대결'이라는 뜻과 함께 '화합'과 '조화'라는 뜻도 있다고 해요. 주인공 악기와 오케스트라는 격렬하게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이좋게 서로 도우면서 작품을 이끌어가요. 어떻게 이런 갈등과 화해가 음악에서도 나타나는지 참 신기하죠?

주인공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짜릿한 승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바로크 음악 시대부터 협주곡이 처음으로 연주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저 여러 명이 연주하는 작품 중 곡을 서로 주고받듯이 연주하기 위해 악기별로 파트가 나뉘어 있는 작품을 모두 협주곡이라고 불렀다고 해요. 순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연주하려면 일단 편이 갈라져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주인공 대(對) 오케스트라 단체' 구도를 가진 협주곡은 언제부터 등장했을까요? 약 300여 년 전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해요. 쉴 틈 없이 오페라와 발레를 공연하는 어떤 극장이 있었어요. 이곳에서는 출연자들에게 공연 중간 쉬는 시간을 주기 위해 막간에 짧은 오케스트라곡을 연주했어요. 그런데 공연을 보러온 관객들이 유독 또렷한 트럼펫 소리를 무척 좋아했다고 해요. 그래서 아예 트럼펫을 주인공 악기로 삼아 오케스트라와의 '트럼펫 협주곡'을 연주하게 된 것이죠. 트럼펫이 주인공이 되는 것을 보자 다른 악기들도 자신이 주인공인 협주곡을 연주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첼로 협주곡 등 다양한 협주곡이 생겨나게 된 것이랍니다.

트럼펫은 소리가 워낙 커서 오케스트라와 대등한 대화를 나누기에 무리가 없었어요. 하지만 당시 다른 악기들은 음량이 충분히 크지 않았어요. 그래서 옛날에는 독주를 맡은 악기 연주자 세 명 정도가 한편이 되어 팀을 만들었어요. 이 팀을 '콘체르티노'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바로크 음악 시대(1600~ 1750)에는 독주팀인 콘체르티노와 오케스트라가 때로는 경쟁하듯 때로는 대화하듯 협주곡을 이끌어갔죠.

악기들의 음량이 커지기 시작했던 18세기 초, 비발디와 바흐가 협주곡을 많이 작곡했어요. 한 사람의 주인공이 오케스트라와 대결하는 '독주 협주곡'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활약했던 18세기 후반 고전파 시대라고 할 수 있죠. 청중은 그날의 주인공인 독주자가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와 승부하는 장면을 마음 졸이며 감상하고, 대결이 극적일수록 짜릿함을 느끼며 큰 박수갈채를 보냈어요.

기교 뽐내는 독주 파트가 하이라이트

협주곡 전체에서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주인공 악기의 독주 파트예요. 이것을 '카덴차'라고 불러요. 보통 협주곡은 세 개의 악장으로 만들어지는데, 제일 긴 카덴차는 보통 1악장 끝부분에 등장해요. 지금까지 독주자와 함께 연주해 오던 오케스트라가 잠시 연주를 멈추고 주인공 악기가 혼자 역량을 발휘해 화려한 기교를 뽐내고, 무대를 장악하는 순간이에요. 카덴차는 그날 연주를 맡은 독주자가 즉흥적으로 만들기도 하고 악곡의 작곡가가 미리 써놓을 수도 있어요. 이 카덴차 연주를 잘할수록 독주자에게 보내는 청중의 박수는 커진답니다.

작곡가들은 자신이 스스로 잘 다루는 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어요. 명피아니스트였던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는 멋진 선율과 화려한 기교가 넘치는 피아노 협주곡을 썼고, 바이올린 연주를 잘했던 비발디나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협주곡 걸작을 남겼죠.

수퍼 히어로 여러 명이 팀을 이뤄 악의 무리와 싸우는 영화 '어벤져스'를 연상시키는 협주곡을 쓴 작곡가도 있어요. 베토벤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주인공으로 '삼중 협주곡'을 썼어요. 멘델스존은 피아노와 바이올린, 브람스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주인공인 협주곡들을 남겼어요. 주인공이 여러 명이니 오케스트라와의 대결도 좀 더 복잡하고 흥미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협주곡과 수퍼 히어로 영화는 공통점이 많아요. 인기 있는 주인공이 꾸준히 인기가 있듯, 협주곡 주인공 악기 중에서도 피아노·바이올린·첼로·클라리넷·플루트가 인기가 많거든요. 또 성공한 수퍼 히어로 영화는 속편이 제작되는 것처럼, 걸작 협주곡은 연주자도 만족하고 청중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무대에 올라가곤 하지요. 게다가 연주자마다 조금씩 다른 해석을 보여주기 때문에 여러 번 들어도 쉽게 지루해지지 않아요. 협주곡 음악회 포스터를 보면 지휘자의 이름과 함께 주인공 악기를 연주하는 독주자의 이름도 함께 실려 있어요. 독주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그날의 영웅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겠죠? 재미있는 영화를 감상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협주곡을 들어보세요.

김주영 피아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