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심리이야기] 여자 목수, 남자 미용사… 직업에 성별은 없어요

입력 : 2016.05.18 03:13

[성(性)과 직업]

남성의 뇌, 공간 감각 능력 발달… 여성은 언어·직관력 뛰어나
각자 잘하는 분야 다를 수 있지만 뇌는 상황 따라 변화하며 발전하죠

부모가 성 편견 없는 생각 심어줘야 아이가 스스로에 대한 신념 갖게 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여성 토끼 '주디'가 경찰관의 꿈을 이루는 내용이 등장하는 영화 '주토피아'가 지난 16일까지 관객 약 469만명을 동원하며 인기를 끌고 있대요. 영화에서 주디는 운동 능력이 떨어지는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다는 편견에 맞서, 수석으로 경찰학교를 졸업해 최초의 토끼 경찰관이 된답니다.
[심리이야기] 여자 목수, 남자 미용사… 직업에 성별은 없어요
/그래픽=정서용
여러분은 '여자가 잘하는 일과 남자가 잘하는 일이 따로 있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학자들은 '남자와 여자의 생김새가 다르듯이 남녀가 각기 잘하는 영역도 당연히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계속 연구 대상으로 삼아 왔어요. 전통적으로 공간 감각이 필요한 목수, 재단사, 버스 기사 등은 주로 남자 직업,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한 교사나 간호사는 주로 여자가 잘하는 직업이라는 거예요. 하지만 최근에는 남자 요리사, 남자 미용사, 남자 간호사 그리고 여자 군인, 여의사, 여자 운전기사 등 남자 직업과 여자 직업의 경계가 점차 없어지고 있지요. 이런 현상은 우리의 뇌와 관련이 있답니다.

남자 뇌 공간 감각, 여자 뇌 언어·직관 능력 좋아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는 생각은 사실 일리가 있어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라지니 버마 교수 연구팀은 남성과 여성의 뇌의 연결성을 연구해 차이를 발견했어요. 남성의 뇌는 앞부분과 뒷부분의 연결이 강했어요. 뇌의 뒤쪽은 지각 인식을, 뇌의 앞쪽은 행동을 담당하기 때문에 뇌의 앞뒤 연결이 강한 남성은 수학적 사고와 관련이 있는 공간 감각 능력이 뛰어나고 운동 통제를 잘하는 거예요.

우리 뇌는 회백질과 백질로 나뉠 수 있어요.
우리 뇌는 회백질과 백질로 나뉠 수 있어요. 회색 부분인 회백질의 양이 많아지거나 흰색 부분인 백질의 색이 뚜렷해지면 뇌 기능도 좋아질 수 있어요. 뇌는 살아가면서 변화할 수 있답니다. /BSIP AFP
여성은 뇌의 왼쪽 부분과 오른쪽 부분 간의 연결이 강했어요. 좌뇌는 논리적인 사고, 우뇌는 직관적인 사고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뇌 속 좌우 연결이 잘된 여성은 언어 능력과 직관력(直觀力·대상을 직접적으로 날카롭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요. '여자의 날카로운 직감'이라는 말이 뇌 구조상 일리가 있는 거예요. 또한 여성의 뇌는 남성보다 몸 전체에서 오는 신호를 잘 간파해요.

타인에게 공감을 해야 하는 순간 남자 뇌와 여자 뇌가 보이는 반응도 달라요. 우리 뇌는 타인의 감정 패턴을 읽은 뒤,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켜 상대방이 어떤 마음인지 우리가느낄 수 있도록 한다고 해요. 뇌 속에서 공감을 느끼는 부위는 여성에게 더 발달되어 있어서, 여성의 뇌는 상대방의 감정을 계속 같이 느껴요. 그러나 남성의 뇌는 타인의 감정을 잠시 느낀 후 바로 다른 뇌의 영역을 이용해서 문제 해결책을 생각하지요.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를 수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러나 현대 사회에는 남자 직업, 여자 직업을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답니다. 이것 또한 인간의 뇌와 관련 있어요.

뇌는 적성에 맞게 찰흙처럼 발전 가능

사람의 뇌는 환경에 알맞게 변화하고 발달해요. 이것을 바로 뇌의 가소성(brain plasticity)이라고 불러요. 뇌가 플라스틱이나 찰흙처럼 변형이 가능하다는 뜻이지요. 이전에는 학자들이 뇌의 부위마다 각각 담당하는 기능이 있고, 뇌가 잘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어요. 그러나 최근에는 여러 연구를 통해 상황에 따라 뇌가 변할 수 있다고 밝혀지고 있어요. 실제로 우리 뇌의 회백질 (gray matter·뇌에서 신경세포가 모여 있어 회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학습이나 훈련 등에 따라 증가한다고 해요. 일부 능력을 잃은 뇌가 환경 변화에 굉장히 잘 적응한다는 연구도 있어요. 3세 때 시력을 잃은 남자아이 '벤'은 아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도록 뇌 훈련을 받았어요. 그 결과 벤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도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닐 수 있게 되었대요.

이렇게 뇌세포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요. 어린 시절부터 유연하게 발달해온 우리들의 뇌는 인생 내내 닥쳐오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과정이 남자 뇌와 여자 뇌의 차이보다도 더 중요해요. 우리 뇌는 변화하기 때문에 남자도 여성적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고, 여자도 남성적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답니다.

특히 최근에 태어난 아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어린 시기부터 디지털 기기에 적응한 세대)'라고 불리며 뇌의 가소성이 이전 세대보다도 더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디지털 세대에게는 성별에 따른 직업 구분이 더욱 의미가 없어졌다고 할 수 있지요.

자녀의 진로 결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사고방식과 행동이에요. 특히나 부모가 가진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아이들의 진로에 영향을 줘요. 부모가 성 편견 없는 생각을 가지고 성 편견 없는 언어를 사용하면, 아이들의 자기 효능감(self-effica cy·자기 자신이 그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신념)이 올라갈 수 있답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