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종교 이야기] 세상으로부터 존경 받는 법, 아버지 붓다에게서 깨닫다

입력 : 2016.05.18 03:13

최초의 동자승 라훌라

지난 14일은 부처님오신날이었어요. 많은 사람이 절을 방문해 빛깔 고운 연등을 보며 소원을 빌었지요. 절에 가면 어린 스님인 동자승들도 만날 수 있어요. 불교 신자들은 동자승들에게도 '스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공손히 합장을 한답니다. 어린 스님들의 순진하고 밝은 모습을 보면 누구나 활짝 웃게 돼요. 어른들도 맑고 깨끗했던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순수한 마음을 '천진난만한 부처님의 마음'이라고 부른답니다. 동자승의 맑은 마음을 보며 부처님의 뜻을 본받아야겠지요.

동자승을 보면 '라훌라'라는 스님이 떠올라요. 라훌라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아들로, 부처님이 수행을 위해 성 밖으로 나가기 전 싯다르타 왕자로 불린 시절 낳은 자식이에요. 싯다르타 왕자는 평소 수행자로 살아갈 생각을 품고 지냈기 때문에 아들 라훌라가 태어나자마자 성을 나오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라훌라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셈이지요. 라훌라는 어머니인 야소다라 왕자비와 할아버지인 슛도다나 왕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아버지가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한다는 소식을 늘 듣고 자랐어요.

어린 라훌라가 부처가 되어 돌아온 아버지에게 재산을 물려달라고 조르는 모습이에요.
어린 라훌라가 부처가 되어 돌아온 아버지에게 재산을 물려달라고 조르는 모습이에요. /위키피디아
라훌라가 일곱 살이 되었을 즈음, 아버지인 붓다가 성으로 돌아왔어요. 다시 가정생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고국의 모든 사람에게 깨달음을 전하고자 제자들을 거느리고 잠깐 들른 것이었어요. 그때 어머니 야소다라 왕자비는 라훌라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라훌라야, 아버지에게 가서 재산을 물려 달라고 하렴." 인도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일정한 시기에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원칙이었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은 자신이 바로 그 집안의 후계자임을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었지요. 어머니가 일러주신 대로 라훌라는 아버지 붓다에게 달려가서 재산을 물려달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붓다는 세상 사람들이 열심히 모으는 금이나 은 같은 종류의 재산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붓다는 빈털터리 성자였거든요.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세상의 여느 아버지들과 붓다의 생각이 좀 달랐기 때문이에요. 붓다는 돈이나 호화로운 저택 같은 것보다 더 멋진 것을 물려줄 참이었어요.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세상의 존경을 받는 법을 일러주는 것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재산이라고 생각했지요.

붓다는 '같이 갈 곳이 있다'는 의미로 어린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고, 라훌라는 아버지의 손가락 하나를 꼭 움켜잡고 따라갔어요. 붓다가 향한 곳은 절이었어요. 붓다는 절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제자 사리불에게 라훌라의 머리를 깎게 했어요. 이렇게 해서 라훌라는 불교 역사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스님이 되었지요.

라훌라가 스님이 되자 할아버지 슛도다나 왕은 아들에 이어 사랑하는 손자까지 가족들 곁을 떠났다는 슬픔을 이길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들인 붓다를 찾아와 이렇게 요청했어요. "이제부터 어린아이들은 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출가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오." 붓다는 이를 받아들여 규칙으로 삼았어요. 라훌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출가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스님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대요. 하지만 이내 아버지 붓다와 제자 사리불 스님의 극진한 가르침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가장 완벽하게 소리 없이 잘해 내는 스님'이라고 칭찬받게 되었어요. 그리고 번뇌에서 벗어난 높은 경지인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까지도 올랐지요. 불교계 최초의 동자승인 라훌라 스님에게는 이런 사연이 숨어 있답니다.

이미령 불교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