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활주로 위 숫자·알파벳, 비행기 이착륙 도와요

입력 : 2016.05.17 03:10

[공항 활주로]
비행기, 맞바람 맞으며 이착륙… 떠오를 힘 얻고, 착륙 속도 줄여

동서남북 360도 방위표 기준
150도는 15, 330도는 33으로 표시… 오른쪽은 R, 왼쪽은 L로 나타내요

최근 국내 공항 활주로에서 대형 충돌 사고를 아슬아슬하게 피한 가슴 철렁한 순간이 여러 건 있었습니다. 공항 관제탑과 비행기 조종사는 이륙하기 전까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런데 규칙을 깜박 착각하면 마치 교차로에서 신호를 거꾸로 읽은 자동차들만큼이나 위험천만한 일들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세하게 알아볼게요.

활주로는 양방향 주행 가능, 활주로 끝 숫자의 비밀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길을 '활주로'라고 부릅니다. 비행기는 이륙하기 전, '비행기의 주차장'이라고 부르는 계류장에 머물다 '유도로'라는 통로를 따라 활주로까지 이동합니다. 비행기 조종사는 비행하는 전 과정에서 관제탑의 지시를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관제탑이 잘못된 지시를 내리거나, 조종사가 관제탑의 지시를 어기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지난 1977년 스페인 테네리페에서는 여객기 두 대가 활주로 상에서 정면 충돌하는 바람에 583명이 숨지는 참사가 빚어지기도 했어요.

비행기는 활주로에서 양방향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향해 활주로 위를 달리게 됩니다. 이륙할 때는 앞에서 불어오는 맞바람을 맞아야 하늘로 떠오르는 양력(揚力)을 얻을 수 있고, 착륙할 때도 맞바람을 맞으며 활주로로 접근해야 속도를 줄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활주로 설명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예를 들어 볼까요? 인천공항 활주로의 경우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활주로가 이어져 있습니다.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는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활주로 위를 달리게 되고, 반대로 남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는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활주로 위를 달리도록 설계된 것이지요.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처럼 활주로에도 표지판이 있답니다. 활주로 양쪽 끝에는 이륙과 착륙 방향을 나타내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지요. 인천공항에 있는 3개의 활주로 가운데 여객 터미널 옆에 있는 첫째 활주로의 경우 북서쪽 끝에는 '15R', 남동쪽 끝에는 '33L'이라는 암호 같은 글씨가 쓰여 있어요. 여기서 숫자는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착륙할 때의 방위각을 10으로 나눈 값이랍니다. 북쪽이 36(360도), 남쪽이 18(180도)로 표시됩니다. 즉 '15'는 전체 360도 중 남동쪽 방향을 가리키는 150도 방향을, '33'은 북서쪽으로 향하는 330도 방향을 나타낸 것이죠. R과 L은 각각 활주로가 놓인 위치를 말합니다. 활주로가 평행하게 있을 경우, 비행기가 진행하는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Right)에 활주로가 있으면 'R', 왼쪽(Left)에 있으면 'L'로 표시하는 것이죠. 그러니 15R이라는 표지는 비행기 조종사에게 '오른쪽 활주로의 남동쪽 150도 방향으로 진행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지요. 최근 인천공항에서 있었던 아찔한 순간은 조종사가 이 두 가지를 헷갈려 15R에 맞춰서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 옆 유도로를 통해 북쪽 방향으로 이동했어야 했는데, 남단으로 진입하려다 먼저 이륙하려던 다른 비행기와 충돌할 뻔했던 것이지요.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서면 이륙할 때까지 불과 60~90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짧은 시간에 시속 300㎞ 가까운 속도를 내기 때문에 신호가 어긋나면 큰 사고가 벌어질 수 있는 거죠.

활주로는 얼마나 길까요?

우리나라 공항에 있는 활주로의 길이는 다 다릅니다. 짧은 것은 1200m, 길게는 4000m나 되지요. 인천공항 1·2번 활주로는 3750m, 3번 활주로는 길이가 4000m입니다. 승객이 500~600명까지 탈 수 있는 A380 비행기의 경우, 최소 140~150노트(시속 250~270㎞)의 속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약 2600m 길이의 활주로가 요구되고, 크고 무거운 화물기는 이륙 길이가 길어 약 3000m 길이의 활주로가 있어야 합니다. 활주로의 너비는 45m 또는 60m로 공항 시설에 따라 다릅니다.

활주로 주변에 있는 잔디밭 구역은 '착륙대'라고 불러요. 혹시 이·착륙 중에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는 경우에도 충격을 완화해줄 수 있도록 잔디를 깐 것이죠. 물론 이곳에는 비행기에 충격을 줄 수 있는 물체는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답니다. 활주로는 얼핏 보면 일반 도로처럼 보입니다. 얼마 전 청주공항에서 길을 잃은 민간인 차량이 활주로인지도 모른 채 활주로를 달리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어요. 활주로는 일반 도로처럼 콘크리트·아스팔트로 만들지만 대신 무거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충격을 견딜 만큼 단단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참고로 자동차는 후진할 수 있지만 비행기는 스스로 후진할 수 없답니다. 그래서 처음 비행기가 계류장에서 빠져나올 때는 견인차가 비행기의 앞에 붙어서 뒤부터 나올 수 있게 밀어줘요.






감수=김필연 인천국제공항공사 운항계획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