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새싹 심은 코트로 '생명의 소중함' 표현했어요
[예술 속의 패션]
멋쟁이 몽테스키외 백작 초상화, 19세기 프랑스 상류층 문화 담겨
20세기 현대미술 '누더기 비너스'
헌 옷 더미와 여신상 대비시켜 현대인 불필요한 소비 행위 비판
의식주(衣食住·옷과 음식과 집) 중 한 가지인 옷은 인간이 생활하는 기본이 돼요. 옛날 사람들은 추위와 더위, 비바람 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자 옷을 입었어요. 옷은 직업이나 지위, 개성과 매력을 표현하는 수단도 되죠. 옷과 인간의 삶은 떼어 놓을 수 없어요. 그래서 옷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도 많답니다.
◇화려한 캐시미어 양복과, 새싹 코트 비교해볼까?
작품1은 이탈리아 출신 화가 조반니 볼디니가 그린 초상화예요. 초상화의 주인공은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사교계의 최고 멋쟁이로 유명했던 몽테스키외 백작이랍니다. 이 작품은 당시 유럽 남성들이 어떤 옷차림을 했는지 보여줄 뿐 아니라, 19세기 프랑스와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했던 '댄디즘(Dandyism·우아하고 세련된 옷차림과 교양미를 뽐내던 시대적 흐름)' 문화를 표현해 미술사적 가치가 높아요.
- ▲ 작품 1 - 조반니 볼디니, 로베르 드 몽테스키외 백작, 1897.
댄디즘을 숭배했던 몽테스키외 백작은 완벽한 신사의 품격을 갖추기 위해 상상을 초월한 옷 사치를 부렸어요. 오스트리아의 미술비평가 가브리엘레 툴러에 따르면, 몽테스키외 백작은 자신만의 멋을 유지하기 위해 매주 셔츠 약 20벌, 손수건 24개, 바지 9~10벌, 스카프 30개, 조끼와 스타킹은 12개 이상을 사용했다고 해요. 일본의 미술사학자 나카노 교코는 이 그림 속 백작의 옷차림을 이렇게 설명했어요. 백작의 양복은 최고급 캐시미어, 장갑은 산양 가죽, 왼손에 든 모자는 실크, 풀을 먹인 순백 셔츠의 소매에 단 커프스는 터키석이다. 지팡이 손잡이 부분은 푸른 빛깔의 도자기로 장식했다.
그런가 하면 옷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표현한 작품도 있어요. 작품2는 우리나라 작가 김주연의 사진 작품으로 새싹이 자라는 코트를 촬영한 것이에요. 김 작가는 배추·무 등 채소 씨앗 여러 종류를 자신의 헌 모직코트에 심은 뒤, 하루 몇 차례 정기적으로 시간 맞춰 물을 주고, 식물이 자라기 좋은 온도를 정성 들여 유지했어요. 그러나 흙이 아닌 코트에 움튼 새싹은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내 시들어 죽었어요. 그럴 때마다 작가는 씨앗을 새로 심어 다시 열심히 가꿔 싹이 나게 만들었어요. 왜 그랬을까요?
- ▲ 작품 2 - 김주연, 존재의 가벼움II, 2015. / 작품 3 - 소니아 들로네, 리우 카니발, 1928.
김 작가는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는 한편,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 자라고 죽는다는 진리를 전하고자 했어요. 씨앗이 가진 생명의 의지는 흙이 아닌 코트에서도 싹을 틔울 정도로 강해요. 그러나 싹이 제아무리 강한 생명력을 지녔더라도 결국에는 죽어 사라져요. 이것 또한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지요. 새싹 코트 작품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죽은 뒤,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새싹이 태어나는 감동적인 모습을 표현해요. 생명과 소멸은 순환하기 때문이에요.
◇기하학 무늬와 헌 옷으로 만든 현대 예술
작품3은 현대미술과 패션이 융합되는 데 영향력을 끼친 우크라이나 출신 프랑스 작가 소니아 들로네의 작품이에요. 작품 속 여성이 입고 있는 옷을 살펴보세요. 인접한 색들의 밝기나 채도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을 발견했나요? 드레스를 구성하는 초록색과 검은색은 물론이고, 밝은 핑크의 피부색과 빨간 선글라스, 검은 머리카락, 노란색 챙 넓은 모자도 극적인 대비를 이뤄요. 그래서 세련된 느낌과 긴장감을 주지요.
소니아 들로네는 남편인 로베르 들로네와 함께 20세기에 등장한 혁신적인 화풍 '오르피즘(Orphism·화려한 색채 표현을 중시하는 입체파)'을 창시했어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음악가인 오르페우스의 이름에서 따온 '오르피즘'은 그림에서 음악적인 리듬감이 느껴진답니다. 강렬한 원색의 색채 대비 효과, 기하학적인 형태가 특징이지요. 소니아는 혁신적인 화풍을 발전시키고, 이를 의상과 직물·가구 디자인에도 실험한 융합형 예술가의 시초라고 할 수 있어요.
- ▲ 작품 4 -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 누더기 비너스, 1967.
이탈리아 작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의 작품4는 하얀 대리석 비너스상이 등을 돌린 채 헌 옷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고 있는 설치작품이에요. 산더미처럼 쌓인 옷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얼마나 간절하게 아름답게 보이기 원했으면 저 많은 옷을 다 샀을까? 혹시 허영심을 채우려고, 과시하려고 너무 많이 샀다가 버려진 옷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죠? 작가는 헌 옷 더미와 미의 상징인 하얀 대리석 비너스상을 대비시켜,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물질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현대인의 불필요한 소비 행위를 꼬집었어요. 이 작품은 현대 미술 사조 중 하나인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가난한 미술'이라는 뜻으로 값싼 잡동사니를 재료로 하는 창작 예술)'를 대표해요.
최근 패션 기업들이 '웨어러블(wearable·몸에 지닐 수 있는) 전자 기기'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고 해요. 옷과 첨단 기술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면서, 옷이 한 단계 진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죠. 시대가 흐르면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옷의 모습도 달라질 거예요. 미래의 옷은 어떻게 바뀔지 상상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