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철학이야기] 무턱대고 뛰어들기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입력 : 2016.05.12 03:11

[주희의 '격물치지(格物致知)']

주희 "의욕 앞서면 나쁜 결과 초래, 세상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보다 올바른 마음과 행동 위해 공부해야

여러분은 앎과 실천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훌륭한 지식을 많이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반대로 섣불리 경거망동(輕擧妄動·경솔하여 생각 없이 행동함)하는 것보다 먼저 알고 나서 행동해야 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무턱대고 뛰어들지 않는 신중함도 필요

19세기 후반에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을 최초로 통일한 비스마르크라는 정치인이 있었어요. 그가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사냥을 갔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친구가 늪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어요. 마침 사냥에 사용할 총을 가지고 있어서 친구에게 내밀어 붙잡고 나오도록 하려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총이 닿지 않았지요. 주위엔 친구를 도와줄 밧줄도 없었고요. 여러분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어요?

[철학이야기] 무턱대고 뛰어들기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그림=정서용
비스마르크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갑자기 총구를 친구에게 겨눴어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했어요. "자네가 늪에 빠지게 되면 숨이 막히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차라리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네. 내가 자네를 이 총으로 쏴 죽여서 고통을 줄여주겠네."

가뜩이나 늪에서 빠져나오려고 허우적대느라 힘이 빠질 대로 빠져 있던 친구는 믿었던 비스마르크가 자기를 죽이려 하자 엄청난 분노를 느꼈어요.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총구를 피하면서 결국 늪에서 빠져나왔지요. 그리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눴던 비스마르크에게 앙갚음을 하려 달려들었어요. 그때 비스마르크는 침착하게 얘기했어요. "내가 만약 자네를 쏘려 하지 않았다면 자네는 결국 늪에 빠져 죽어서 시체도 찾지 못했을 것이네. 내가 총구로 겨눈 것은 자네가 아니라 사실은 포기하려 하는 자네의 나약함이었다네."

만약 비스마르크가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모르고 무턱대고 친구를 돕기 위해 늪에 뛰어들었다면 아마 두 사람 모두 죽고 말았을 거예요. 비스마르크는 사람이 아주 심한 분노를 느끼면 복수심에 불타 평소에 보이지 못하던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스마르크는 행동보다 아는 것이 더 먼저라고 생각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어요.

주희는 앎을 실천보다 중시했어요

성리학 창시자인 중국의 철학자 주희(1130~1200)도 행동에 나서기 전 먼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는 어떤 행동이 슬기로운 행동인지 미리 공부해서, 실수가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러분은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라는 유명한 문장을 들어봤을 거예요. 중국 고전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이에요. 먼저 자신의 몸을 닦고(수신), 집안을 질서 있게 만든 후(제가), 나라를 잘 다스리면(치국), 온 세상을 평화롭게 할 수 있다(평천하)는 뜻이지요. 그런데 원래 이 표현은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라는 훨씬 긴 문장으로 되어 있답니다. 과연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몸을 닦기 전(수신) 해야 할 일이 '격물' '치지' '성의' '정심' 무려 네 가지나 더 있다는 의미지요. 주희가 생각하는 '격물'이란, '이 세상의 이치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뜻해요. '치지'란 그런 공부를 통해 '완벽하게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을 뜻하고요. 주희는 열심히 이 세상의 이치를 공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어요.

주희는 세상의 이치를 완벽히 이해하면, 그다음 단계로 진실한 뜻을 품게 되고(성의) 마음을 바르게(정심) 할 수 있다고 보았지요. 주희의 생각에 따르면 우선 공부를 해야, 지혜와 바른 마음을 갖게 되어서, 그다음 단계인 실천을 할 자격을 비로소 얻게 된다는 거예요. 주희는 이 중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격물'과 '치지'를 무엇보다 강조했어요. 격물치지를 못하는 관리가 나랏일을 하거나 평화로운 세상을 도모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주희는 실천보다 앎을 중시했던 철학자였어요.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행동부터 하게 되면 오히려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염려했어요. 그래서 주희는 평생토록 맹렬하게 공부하고 또 공부했어요.

심지어 주희는 죽기 하루 전날에도 책을 썼어요. 자신이 좋아했던 사서오경 중 하나인'대학'의 원문을 고치고 자신만의 체계로 풀어 쓰는 작업을 했지요. 지금 우리가 읽는 '대학'은 주희가 풀어쓴 해석본이랍니다. 주희가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후대 학자들은 유학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고요.

주희가 말하는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만을 뜻하지 않아요. 주희가 생각한 진정한 공부란 '참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슬기로운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었답니다. 행동에 나서기 전에 먼저 어떤 행동이 슬기로운 행동인지 넓은 시야로 고민하고 공부해보아요.

이런 고민과 공부를 미리 해놓는다면 비스마르크나 주희처럼 슬기로워질 수 있을 거예요.

채석용 대전대 교수(철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