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영국인의 '국민 음료' 홍차… 18세기 중국에서 들여왔어요

입력 : 2016.05.12 03:11

영국의 茶 문화

'카공족'이라는 신조어를 들어본 적 있나요? 듣기에도 생소한 이 말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줄임말이래요. 주로 대학가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과 책을 펼쳐 놓고 공부하는 학생이 많아지면서 생긴 말이지요. 이처럼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정보를 나누고, 토론의 장을 펼치는 문화의 원조는 17세기 영국에서 커피를 전문으로 판매하던 '커피하우스'라고 할 수 있어요.

커피하우스는 입장료 1페니(penny)를 내면 커피를 무제한으로 즐기면서 사회 문제를 토론하고, 무역 정보를 교환하고, 문학과 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이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었죠. 하지만 뜻밖에도 커피하우스는 남녀차별의 공간이었어요. 남자들에게만 공개된 사교의 장이었지요. 당시 여자들은 집 안에서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어요.

17세기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남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왼쪽). 19세기 영국 중산층 계급의 집 안에서 부모님과 어린이가 함께 홍차를 마시고 있어요.
17세기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남자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왼쪽). 19세기 영국 중산층 계급의 집 안에서 부모님과 어린이가 함께 홍차를 마시고 있어요. /위키피디아·Getty Images 이매진스
유럽의 물은 석회석 성분이 많이 녹아 있어 맛도 좋지 않고 오래 마시면 몸에 담석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중세 시대에는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문화가 발달했답니다. 하지만 대낮부터 사람들이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사회는 안전하지 않겠죠? 그래서 근대 유럽에서는 커피나 차를 마시는 문화가 발달한 거예요.

아시아에서 영국으로 차가 최초로 수입된 것은 17세기 초로 추정돼요. 1662년 영국 왕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가 영국 사교계에 티타임을 즐기는 문화를 유행시키면서, 영국 전역에 본격적으로 차 문화가 퍼지기 시작했어요. '악마의 유혹'이라는 별명을 가진 커피도 훌륭했지만, 영국인들은 순식간에 중국 차의 깊은 향에 빠져들었어요. 늘 흐리고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영국 날씨에 따뜻한 차는 딱이었거든요. 영국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심신을 달랬죠. 차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찻잎 500g의 가격이 남자 하인의 1년치 급여에 버금갔을 정도였다고 해요.

18세기 영국은 찻잎을 발효·건조한 홍차를 들여왔어요.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등장하면서 차의 수입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어요. 옛날에는 부자들이나 구할 수 있었던 설탕을 듬뿍 넣고, 뽀얀 우유를 첨가한 밀크티(milk tea)가 대중적인 음료가 됐죠.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대부분의 영국인은 홍차를 즐기게 되었어요. 아이들도 하인들도 찻잔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눴고, 명실상부한 국민 음료로 자리를 잡았답니다.

그러나 영국인의 홍차 사랑이 커질수록 영국과 중국의 무역 불균형 문제는 심화됐어요. 중국은 영국 물건에 도통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중국에서 차를 수입할 때 거래는 은으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국의 은이 대량으로 중국에 유입됐어요. 중국과의 무역에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뛰어들면서 차 수입은 더욱 늘었어요. 영국 입장에서는 대규모 무역 적자가 불만일 수밖에 없었죠.

그러자 영국 정부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돼요. 당시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마약인 아편을 생산해 중국 정부 몰래 중국인들에게 판매한 거죠. 이는 1839년부터 시작된 아편전쟁의 원인이 되었어요. 이처럼 홍차는 근대사의 커다란 사건 이면에 자리 잡아 있답니다.

공미라 세계사 저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