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돈은 중요치 않아… 사랑 없는 결혼은 하지 않겠어요"

입력 : 2016.05.05 03:07

[오만과 편견]

신분 달랐던 '엘리자베스'와 '다시'… 서로의 차이 극복 후 사랑 이뤄
누군가를 만나 마음 나눌 때는 자신부터 알고 편견 없이 대해야
결혼제도 등 19C 영국 사회 비판도

많은 인기를 끈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시크릿 가든' 그리고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멋있지만 오만한 남자 주인공과 당당하게 할 말 다 하는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1813년 제인 오스틴이 발표한 소설 '오만과 편견'에 바탕을 두고 있답니다. 사랑을 주제로 한 많은 이야기의 기본 얼개가 200여 년 전 이미 만들어졌다니 놀랍지요?

◇오만한 남자·편견 가진 여자 엇갈리다

18~19세기 영국 시골 롱본 지방에 살던 베닛 부부에게는 다섯 딸이 있었어요. 그중 아름답고 마음씨 좋은 첫째 딸 제인, 지혜롭고 발랄한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결혼 적령기에 이르렀죠. 베닛 부인은 딸들의 신랑감을 찾기 위한 무도회를 열었어요.젊고 돈 많은 두 런던 신사, 빙리와 다시(Darcy) 역시 마침 롱본 지방에 있어 무도회에 초대됐어요. 빙리는 장녀 제인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요. 반면 다시는 엘리자베스가 춤을 함께 출 만큼 예쁘진 않다고 말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요. 엘리자베스는 이 일로 다시가 남을 무시하는 오만한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우연히 알게 된 위컴이란 장교의 거짓말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다시가 언니 제인과 빙리의 사이를 갈라놓으려 한다는 오해를 갖게 되죠. 다시는 두 번째 만남까지도 엘리자베스의 단점을 찾으려고 지켜봤지만, 이윽고 지혜롭고 발랄하며 자연스러운 매력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이미 다시에 대해 단단히 편견을 가진 상태였죠. 다시는 혼자 결혼을 결심하고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하지만, 거절당했어요. 다시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죠. 오히려 엘리자베스의 낮은 신분과 집안 때문에 망설이다 청혼한 거였거든요. 오만한 남자와 편견을 가진 여자는 그렇게 엇갈리고 말아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이병익

◇서로가 가진 단점(오만과 편견) 인정하다

나중에 다시는 엘리자베스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보냈어요. 엘리자베스는 다시에 대해 오해했던 것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죠. 다시와 엘리자베스가 이어지려던 찰나, 베닛 일가의 다섯 자매 중 막내 리디아가 장교 위컴과 사랑의 도피를 벌였어요. 당시로서는 사랑의 도피가 집안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이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더 이상 다시와 관계가 지속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슬퍼했죠. 이때 다시는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이 성사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엘리자베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해요.

"저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부모님은 저를 버릇없이 키우셨지요. 선량한 분들이셨지만 저에게 자만심을 갖도록, 그리고 우리 집안 외의 다른 사람들은 하찮게 생각하도록 기르셨지요. 사랑스러운 엘리자베스, 만약 당신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도 저는 그런 인간으로 남아 있었을 거예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엘리자베스와 다시는 이후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줄거리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어요. 처음엔 서로에 대해 호감을 느끼지 못했던 두 사람이 자신들이 가진 단점을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사랑에 이르렀다는 점이에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먼저 파악해야만 해요. 지혜롭지만 사람들의 성격을 제멋대로 판단하던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생각이 편견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죠? 오만하고 콧대 높은 부잣집 청년이었던 다시는 사려 깊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하지 않았나요?

◇당시 영국 결혼·상속 제도 비판하기도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어요. 베닛 부인은 얼핏 보면 매우 속물처럼 보여요.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딸들을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는 데 있으니까요.

돈이 많은 남자가 미혼일 경우, 그가 곧 신붓감을 찾을 거라는 예측은 누구나 하게 마련이다. 그런 남자가 이웃에 이사라도 오면, 마을 사람들은 당사자의 감정이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한 명이 그와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이 쓰인 18~19세기 영국의 사회상을 감안해 볼 필요가 있어요. 작품 곳곳에는 '한정 상속 제도'가 등장해요. 이제도는 여성은 부모의 재산을 하나도 상속받을 수 없는 관습이랍니다. 베닛가처럼 딸만 있는 집안에서는 먼 친척 가문의 남자가 재산을 상속받게 되어 있지요. 당시 여성의 경제활동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어요. 이런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결혼만이 재산과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지요. 당연히 사랑보다는 가문끼리 조건에 맞춰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고요.

그래서 '사랑 없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엘리자베스의 당당한 태도와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다시의 마음이 더 가치 있답니다. '오만과 편견'은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에요. 18~19세기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어요. 또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사랑하는 사람을 대해야 하는지 암시하고 있지요.

제인 오스틴 초상화
/위키피디아

[이 책의 저자는?]

영국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난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사랑에 빠졌던 남자와 결혼에 이르지 못한 경험을 살려 ‘첫인상’이라는 소설을 쓴 후, 이를 수정하여 1813년 ‘오만과 편견’으로 발표했어요. 이 작품은 정밀한 인물 묘사로 영국에서 매우 사랑받는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히지요. 그녀의 작품으로는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 등이 있어요.

양미연·한우리독서토론논술 선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