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심리이야기] 아이 웃음에 부모도 '활짝'… 뇌가 먼저 반응한대요

입력 : 2016.05.04 03:11

[부모·자식 간의 애착 관계]

영유아기 뇌 발달, 성인까지 이어져
애착 관계 형성 못하면 의욕 잃게 돼 쉽게 위축되고 겁도 많아져
뇌에는 '부모 뇌 네트워크' 존재
아이의 감정과 요구 헤아린 뒤 부드럽게 표현하며 돌봐야 해요

내일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8일)까지 연휴가 이어져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끼리 평소의 정을 표현할 수 있는 뜻깊은 기간이 되겠죠? 오늘은 부모와 자녀 관계가 뇌에 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과학적으로 살펴볼게요. 다른 모든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부모와 자녀 관계도 양방향으로 작용하지요.

자식 뇌 발달해 밝은 성격, 자기 조절 능력, 의지 생겨요

우리는 아기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서 자라요. 아이는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인 부모 또는 다른 돌보미와 애착(愛着) 관계를 형성하죠. 안정적 애착 관계는 아이의 뇌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바탕이 돼요. 특히 영·유아기 3세까지 뇌 발달은 아이가 일생 가지게 될 지적 능력, 감정·충동 조절에 중대한 영향을 끼쳐요. 외국 연구에 따르면 만 3세 때 자기 조절이 잘 안 되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성적도 낮고 중독에 잘 빠진다고 해요.

뇌가 한창 자랄 때 부모 또는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과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태어나서부터 청소년기까지 일어나는 '변연계'와 '전두엽'의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변연계'는 두려움, 불안, 쾌감과 의욕, 기억 등을 담당해요. '전두엽'은 생각, 감정 조절, 충동 억제를 담당하죠. 이런 부분이 잘 자라지 못하면 겁이 많고, 쉽게 위축되며, 의욕이 없거나 쉽게 화를 내고, 힘든 것을 잘 견디지 못하게 되기 쉬워요. 그래서 부모 또는 일정한 양육자와 안정적 애착 관계를 가지는 게 어린 시절엔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래야 아이가 밝은 성격으로 성장하고, 삶의 여러 과제에 의욕 있게 도전하고, 어려움이 닥쳐도 잘 이겨낸답니다.

부모 뇌 쾌감 회로, 자식 보면 반응해

의학과 기술이 발달한 최근에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어요. 엄마가 자기 아기의 웃는 얼굴을 볼 때 엄마들의 뇌를 촬영했더니, 기쁨과 의욕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쾌감 회로' 부위가 활성화됐답니다. 이 부위는 술·담배·마약 등도 이 회로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일명 '중독 회로'라고 하지요.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정서용
아이를 키우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아이가 자기를 향해 웃어주면 엄마들 뇌에서 이 부위가 활성화되면서 기쁨을 느끼고, 다시 아이를 잘 돌보고 싶은 의욕이 솟아나요. 즉 엄마들은 자기 아이의 웃음에 중독 증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평소에 여러분이 아무리 부모님 속을 썩여도, 어버이날 '엄마·아빠, 감사해요'라고 쓴 편지를 드리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 드리면 어머니·아버지가 행복감에 빠지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아이에게 기쁨 대신 불안함을 느끼는 부모도 있어요. 자기 부모와 사이가 안 좋았거나, 아동 학대를 당한 사람이죠. 이런 부모들에게 자녀 사진을 보여 주고 뇌를 촬영했더니, 쾌감 회로 대신 불안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활성화됐어요. 이들은 아이를 보고 기쁨이 아닌 불안함과 걱정을 느껴요. 그래서 심하게 잔소리하거나 간섭하고, 때로는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아이를 돌보지 않고 피하게 돼요.

아이 처지 헤아리고, 표현은 부드럽게

부모의 내리사랑은 어떻게 형성될까요? 임신한 엄마 몸에서는 '옥시토신'이라는 육아를 위한 호르몬이 많이 나와요. 이 옥시토신은 본능적으로 자기 아이를 사랑하게 만들지요. 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옥시토신이 별로 분비되지 않고, 직접 출산하지도 않는 아버지나 양부모는 어떡하냐고요? 자기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이와 애착이 강해져요. '낳은 정, 기른 정이 둘 다 있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거예요.

인간의 뇌에는 '부모 뇌 네트워크'라는 부위가 존재해요. 이것은 아이를 양육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를 말해요. 엄마들은 밤에 아기가 울면 자다가도 바로 일어나죠? 부모 뇌 네트워크의 첫째 부위인 뇌의 각성(覺醒·깨어 정신을 차림)을 담당하는 부위의 활성화와 관련이 있답니다.

둘째 부위는 아이가 왜 우는지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부분이랍니다. 부모는 이 부분을 통해 경험에 미루어보아 아이의 생각이나 느낌을 유추하지요.

셋째 부위는 부모가 아이의 울음이나 생떼에 대해 부정적 감정을 잘 조절하는 능력과 연관되어 있어요. 아무리 좋은 부모라도 아이가 수시간 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짜증이 날 수 있어요. 하지만 짜증이 난다고 아이에게 폭언하거나 때린다면 좋은 애착 관계가 형성될 수 없겠죠. 좋은 부모라면 순간의 감정을 잘 조절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쓸 수 있어야 해요. 넷째 부위는 뇌에서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 운동 영역이에요. 아이의 요구를 파악한 뒤 부모는 몸을 움직여 아이를 돌봐야 해요. 우울증에 걸린 부모들은 아이가 울어도 기운이 없어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 안정된 애착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지요.

남의 입장을 헤아리고 표현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사실 좋은 부모를 넘어 일반적인 인간관계에도 꼭 필요한 원칙들이죠. 좋은 부모들은 뇌 기능도 매우 좋은 분들이에요.

좋은 부모·자식 관계를 경험한 아이들은 자기 부모의 양육 방식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히고, 나중에 자신도 좋은 부모가 돼요. 불행하게도 자기 부모와 좋은 관계를 경험한 적이 없다면 학습을 통해 배워야만 하지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아이를 돌보며 애착을 형성하는 방법은 후천적으로 익힐 수 있기 때문에, 열린 마음과 학습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지요.



김은주·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