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나쁜 균 죽이려다 사람들 건강 잃게 됐어요

입력 : 2016.05.03 03:09

[가습기 살균제]

각종 세척제에 쓰이는 'PHMG'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하면 물방울에 녹은 뒤 몸속에 들어와 폐 손상시키고 생명도 위험해져
베이킹 소다·식초, 물에 희석해 세척제 만들어서 사용해봐요

영국계 생활용품 제조사 옥시레킷벤키저(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속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인산염 성분이 폐 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지난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동물을 대상으로 한 흡입 실험 결과 밝혀졌어요.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사망으로 공식 인정받은 143명 중 옥시 제품 피해자는 103명이나 돼요. 피해자 중에는 폐가 약한 어린이들도 많았어요. 최근 옥시에 대한 검찰 수사와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 등이 진행되면서, 옥시 제품 원료인 PHMG가 어떻게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대체 뭐가 문제였길래 현대인들의 건강한 실내 생활을 위해 만든 '가습기 살균제'가 독이 된 걸까요?

독성 물방울로 폐 손상… 사전 검사 없었대요

옥시 살균제 재료 'PHMG'는 염기성 물질인 구아닌을 분해하면 나오는 물질로 살균 효과가 있어 물티슈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기 위해 합성해 써왔어요.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로 쓴 PHMG가 심각한 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PHMG 사용은 금지됐어요. 가습기 물방울에 섞인 살균제 PHMG는 허파꽈리(허파로 들어간 기관지의 끝에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는 자루)와 연결된 미세 기도(small airway)에 쌓여 폐 조직을 상하게 하지요.

[재미있는 과학] 나쁜 균 죽이려다 사람들 건강 잃게 됐어요
/그래픽=안병현
최근 많이 팔리는 초음파 가습기는 초음파로 진동을 일으켜 물을 미세한 입자로 쪼개 공기 중에 뿌리는 방식으로 작동해요. 예전에 쓰던 가열식 가습기는 물을 끓여서 증기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전기 소비가 큰 데다 가습 성능도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대신 초음파 가습기는 물을 끓이지 않아 자칫 관리를 잘못하면 우리 몸에 해로운 세균을 내뿜는 '세균 분무기'가 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어요. 매번 가습기를 깨끗하게 씻고 충분히 말려 다시 쓴다면 굳이 살균제가 필요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겠죠. 그래서 위험성이 밝혀지기 전까지 많은 사람이 청결과 편의를 위해 옥시 가습기용 살균제를 물에 풀어 썼던 거예요.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가 PHMG의 흡입 독성 실험을 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독성 가습기 살균제를 시판했다는 거예요. 수많은 사람이 옥시가 충분한 검사를 했을 것이라고 믿고 제품을 구매했어요. 피해가 가벼울 때는 호흡 곤란에 그쳤지만, 폐 손상과 사망 등 평생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얻은 사람도 적지 않아요. 그러니 항상 화학약품을 개발할 때, 좀 더 많은 검사와 신중한 연구를 거쳐야만 해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공식 사과 기자회견이 열린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5년 만에 사과한 아타 울라시드 샤프달(맨 왼쪽)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에게 피해자 가족이 항의하고 있어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공식 사과 기자회견이 열린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5년 만에 사과한 아타 울라시드 샤프달(맨 왼쪽)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에게 피해자 가족이 항의하고 있어요. /뉴시스
그렇다면 화학약품 대신 천연 물질로 살균하면 안심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천연 물질이 많이 들어간 약품일지라도 독성이 있을 수 있어요. 흡입 때 독성을 가지는 PHMG처럼 사용 방법에 따라 독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우리 몸에 유해한지 아닌지를 사전에 충분히 검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죠. 더불어 몸에 해로운 균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막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에요. 오염 물질이 생기지 않도록 주변 환경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 등이지요.

생활 속 어디에나 세균 있어요

그렇다면 '살균(殺菌)'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생활하는 곳에는 어디에나 수많은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등 미생물이 있어요.

이 미생물들을 약품이나 높은 열로 죽여, 균이 없는 무균(無菌) 상태로 만드는 것을 살균이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 주변의 모든 균은 해로울까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수많은 균과 공생(共生) 관계로 살아가고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장내 세균이에요.

우리 장 안에는 세균·곰팡이·원생동물 등 다양한 미생물이 사는데, 그 수가 사람 총세포 수의 10배인 약 100조개나 돼요. 장내 세균은 우리 몸속에서 면역 작용, 소화 과정을 도와줘요. 게다가 서로 끊임없는 단계별 상호작용을 통해 알레르기·비만·당뇨병 등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죠.

그래도 우리 몸에 해로운 세균의 번식은 막는 게 좋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오염 물질을 보면, 값싼 에탄올을 묻힌 천으로 닦거나, 주방에서 쓰는 베이킹 소다와 식초를 물에 섞어 뿌려보세요. 찌든 때도 없어지고, 세균도 말끔히 없어질 거예요.

이희나 정발중 교사·EBS 화학 강사 |